이 직장을 계속 다녀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오늘도 오전 내내 그랬다. 급한 보고서 수정을 마치고 주어진 1시간 남짓의 여유. 이번주에 처리해야 할 업무를 뒤적거리다가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회사는 학교가 아니라고 했다. 무언가를 배우고 익히는 것보다 성과에 방점이 찍힌 조직이고, 내가 하는 일이 모두 월급에 포함되어 있으니 군말 말고 받아 든 일은 해내라고 배웠다. 그런데도 나는 성과보다 성장에 목마르고, 월급보다 과정에 진심이다. 그렇다면 나는 회사에 맞지 않는 사람인 걸까.
좋은 일 한 가지를 하려면 싫은 일 아홉가지는 참아야 한다고 그러던데.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도 그렇다면 하물며 입에 풀칠하는 일은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지는 않을 텐데.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이유에서 회사를 다닌다면, 돈이 좋아 회사에 남기로 했다면 나머지 싫은 이유는 참아야 하는 것일까? 하루에 10시간 이상을 보내는 이곳에서의 생활이 '생계'말고는 내게 어떤 의미도 없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생계가 가장 급하니 일하기 싫은 이유 999 개 따위는 참아내야 하는 것일까. 혼란하다 혼란해.
평소에는 회사에서 답답한 마음이 올라오면 억누르기 바빴다. 싫어지면 안 되니까. 그만둘 수 없으니까.
어떻게든 회사를 좋아해 보려고 이곳의 장점 100가지를 쥐어 짜내보기도 하고 똥 싸면서도 월급을 받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냐고 정신승리해보기도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회사에 다니고 있는 나'는 좋아지지가 않는다.
불쑥불쑥 올라오는 마음. "즐거운 일을 하고 싶다"
곧바로 판단의 생각들이 따라온다. '즐거움도 일이 되면 힘들대.', '워라밸이 나쁘면 일도 즐겁지 않을 걸?', '네가 하고 싶어 하는 일에도 어려움은 있을 텐데 이겨낼 수 있겠어?', '돈은 벌 수 있고?'
그래서 올라오는 족족 무시하고 외면했던 마음. "이런 일, 싫다"
어설픈 판단의 도돌이표 안에서 하루가 돌고 돈다.
"좋아하는 일 하면서 살고 싶어."
"뭘 좋아하는데?"
"비누도 만들고 향수도 만들고. 글도 쓰고 책도 읽고."
"시간이 남아도 안 하면서. 좋아한다는 건 말이야, 어떻게든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하고 싶어 지거든. 진짜 좋아하는 거 맞아?"
어느 날의 남편과의 대화. 집중해서 향과 글을 좇을 짬이 나질 않는다고 항변만 하고 마는 나는 결국 그 일을 좋아하지 않는 걸까. 막상 이것들이 나의 일이 되면 나는 또 이 일이 싫어지는 이유를 아홉가지나 만들게 될까.
좀 더 현실적이 되어보기로 해본다. 회사를 계속 다닐 수 있게 하는 진짜 이유 한 가지를 찾고-아마도 돈이겠지만-, 그것을 위해 나머지 9개의 싫은 점을 견딜 수 있는지 가늠해보려 한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도 마찬가지. 좋아하는 것이 일이 되면 좋은 점과 참고 견뎌야 할 9가지를 찾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일이 하고 싶은 건지 마음 깊이 물어보려 한다. 그럼 답이 얼추 나오지 않을까.
그전에 오늘은 나를 좀 안아줘야지. 싫다고 생각하면서도 하루를 버텨냈으니.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진행 중이니. 박수도 쳐줘야지. 내가 고생한 걸 나는 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