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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아미작가
Sep 01. 2022
사랑해, 사랑해.
'미운 네 살, 미친 일곱 살'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나는 요새 들어 아이들이 더 좋다.
작고 동그란 코를 손으로 통통 튀기면 배시시 웃는 얼굴이 예쁘고,
짜증내고 떼쓸 때 미간에 잡히는 못생긴 주름이 귀엽다.
어설픈 한글로 삐뚤빼뚤 쓰는 편지와 일기도 사랑스럽고,
가끔은 정말 쓰레기처럼 보이는 창작물을 들고 와 자기가 만들었다며 자랑하는 목소리가 멋지다.
하긴, 요새뿐이겠나.
아이들이 태어난 순간부터 콩깍지가 단단히 씌었다.
잠만 자도 이쁘고, 똥 싸려고 진지해진 얼굴만 봐도 사랑스러웠는 걸.
아이가 내 뱃속에 있다는 사실을 안 이후로 나는 쭉 일편단심 민들레다.
하지만 현실은 아이들이 이뻐 죽는 내 마음과는 좀 다르다.
밥 안 먹겠다고 징징댈 때,
자기들끼리 화내고 싸울 때,
일 년도 넘게 남은 예방접종을 맞지 않겠다며 한 시간이 넘도록 울 때,
아침에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일어날 생각이 없을 때 (난 이미 지각인데...!)
속은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일쑤이고,
그 잠깐을 못 참고 내 화를 못 이겨 소리지르기도 한다.
금방 후회하고 자책할 거면서.
분명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최선이 아닌 것 같은 미안함과 불안함은 늘 나를 '못난 엄마'로 만든다.
매일 저녁 어린이집 신발장에 우리 아이들 신발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걸 볼 때,
"엄마, 사랑해. 보고 싶어."라고 적은 편지를 받을 때,
잠들기 전에 아이들이 내 품을 파고들며 "엄마랑 헤어지기 싫다."라고 할 때면 미안함을 넘어 죄책감이 든다.
내 커리어를 이어가 보겠다고 하루 12시간 넘게 회사에서 일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아이 셋, 먹고 싶은 거 먹이고 하고 싶은 거 하게 하려고 돈 버는데, 이렇게 아이들이 엄마 품 그리워하게 만들면서까지 해야 하나.
아이와 하루 종일 씨름하는 것보다 회사 나와서 일하는 게 더 편하다고 말하며 웃지만,
그래도 토깽이 같은 내 새끼들 옆에서 지지고 볶는 날들이 더 행복하다.
..... 뭣이 중헌디 진짜!
어제 딸아이를 씻기는데, 아이가 비눗물을 헹구다 말고 나를 와락 안았다.
"엄마, 너무 좋다. 엄마가 너무 좋아."
갑작스러운 고백에 마음이 뭉클했다. 옷이 다 젖는 줄도 모르고 아이를 꽉 끌어안고 뽀뽀 세례를 퍼부었다.
"엄마도 네가 너무 좋다. 정말 정말 너무 좋아."
밤에는 아이들 셋이 내 옆을 차지하겠다고 엎치락뒤치락.
결국 한 명은 울고, 한 명은 서운해하다가 한 명이 내 배 위로 올라오면서 일단락되었고,
그 후로 책을 세 권이나 읽은 후에나 뒤늦게 잠이 들었다.
읽어달라며 들고 온 책장 한 칸만큼의 책을 아쉬워하면서.
아이들의 숨소리가 바뀌는 것을 들으며 곰곰 생각해보니,
나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일곱 살 즈음이다. 그마저도 사진으로 증명되는 뜨문뜨문의 기억들.
내가 기억하는 건지, 사진을 보고 기억을 만든 건지 모르겠는 그런 장면 장면들.
분명 그때의 나도 엄마랑 이런 시간을 보냈을 텐데,
서로 물고 빨고 했을 텐데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았다.
'다 잊어버렸나 보네..' 싶을 때쯤, 언젠가
주워들은
말이 생각났다.
부모는 아이가 일곱 살 때까지의 기억을 뜯어먹고 살고, 아이는 일곱 살 이후의 기억을 욕하며 산다.
처음 들었을 때는 진짜 맞다며 웃었던 것 같은데, 이제와 생각하니 콧등이
시큰하
다.
'내 아이들은 이 시간을 잊겠구나' 싶어서.
'나는 지금 너희들로 인해 정말 정말 좋은데, 너희들은 이걸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
그래서 엄마랑 할머니가 '너 기차 처음 탔을 때 어땠냐면~'을 백 번, 천 번 말하고,
그래서 내가 '엄마는 그때 나한테 왜 그랬어?'를 수시로 곱씹나 보다.
아이들은 자라서 더 많은 걸 담고 더 많은 걸 기억하겠지.
그러기 위해 잊는 거겠지.
당연한 거고, 누구나 그러는 건데도 어쩐지 아쉽고 서운하다.
그러니 내가 더 많이 기억하고 기록해야겠다.
세 명의 아이들의 기억을 뜯어먹고 살려면, 더 열심히 쓰고 남겨야지.
그리고 앞으로 아이들이 기억할 시간들도 더 행복하게 잘 쌓아야지.
아이들이 이후의 기억을 욕하며 살지 않게 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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