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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eroon Oct 30. 2024

no sense

무단침입

활짝 열려있는 문이. 머리가 띵하다. 분명히 잠그고 방을 나섰다. 기억이 그렇다. 무슨 일이지! 짧게 웅얼거리며 안으로 들어선다. 텅 빈 방. 쾌쾌한 냄새, 침대 시트에 눌러 끈 담배꽁초가 시선을 끈다. 국물용 멸치같이 뒤틀린 개비 옆 누런 필터만 남은 짤막한 꽁초가 나란하다. 믿을 수 없는 장면이군. 하얀 이불에 담배를 꺼버린 광경에 허탈한 웃음이 샌다. 불타는 정물화. 그림 앞에 멈춰 서서 눈을 반쯤 눌러 뜬다. 문을 열고 침입한 관찰자가 되어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완벽한 작품을 응시한다. 사진, 사진을 한 장 찍어둘까. 위치를 기억한다. 모조리 도둑맞았을 거란 직감으로 서랍을 연다. 세 대의 카메라, 조리개가 그대로다. 무엇을 훔치고 싶었던 것인가? 몸을 축으로 두 눈을 돌린다. 360도로 돌아간다. 방안의 구석구석을 천천히 따라간다. 센서작동, 위아래 오른쪽 왼쪽 창문 벽장 침대 소파 장식장 서랍장 책상 장식장 옷장. 움직임을 반복하며 수십 개의 원을 어긋나게 겹쳐 그린다. 서랍장 손잡이에 손톱 끝을 얕게 넣어 살짝 잡아당기자마자 쏴아아 콰 아아 아아악 물이 터져 나온다. 흘러넘친다. 끊김이 없다. 범람의 부조리함, 서랍 서랍을 박차고 나오는 투명한 슬라이드. 순식간에 방은 워터파크. 물이 끝이 없다 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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