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ieroon Oct 22. 2024

사려思慮가

a luxury bow

한 뼘 지름 찌그러진 냄비 안에서 막 끓여진 어교가 뭉근하게 식어간다. 대나무竹와 물소의 뿔角, 어교의 향이 뒤섞인 미묘한 공기에 아득해지는 이곳은 장인의 궁방房이다. 휘어놓은 대나무 표면에 궁장弓匠이 사련칼로 사련을 치신다. 홈谷을 따라 민어 부레풀이 깊이 스며들어 활체에 단단한 탄성을 줄 것이다. 장인의 각궁은 오로지 맨 손으로 만들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겪는다. 단순하고 지루한 시간을 기다리고 그리는 일을 참아낸다. 하루를 살며 자신의 견고함을 쌓아가는 상태狀態를 몰두한다. 역사적으로 전투와 수렵을 위한 무기인 동시에 심신의 수련을 위해 활용된. 사람도 활과 같다.


한편에 낡은 궁창이 묵묵하게 앉아있다. 긴 호흡으로 다져진 거무튀튀한 윤기가 난다. 다양한 성격의 활弓들을 수천만 번 휘어지게 하고 곧게 펴주기도 하며 유연한 물성으로 단련시켜 주었으리라. 궁장의 손으로부터 태어나는 활들은 생명체로써의 활活성이 제대로라 해궁解弓하여 다루고 길들이는 일이 까탈스럽기로 유명하다. 그의 거칠고 딱딱한 손가락들이 각자의 할 일을 맡아 말없이 움직인다.


연궁軟弓이다! 나는 네 번의 계절을 기다려 궁장으로부터 사려思慮있는 활을 받았다. 그가 좀처럼 제작하지 않는다는 연한 활을 긴 기다림 끝에 만나게 된 것이다. 그동안 내 속谷에 들어차는 상념을 비워내려고 했다. 적합한 궁체를 찾아 몸을 움직이며 빈 활로 밀고 당기는 연습을 했다. 이미 누군가 정해놓은 이론 또는 사람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 따위로부터는 최대한 멀어졌다. 오롯이 온몸과 정신을 가다듬어 활을 내는 맛과 멋스러운 순간에만 집중했다. 세상에 아름다움이란 것이 있다면, 이제는 심신의 훈련을 통한 자기만족의 미美와 끊임없이 밀당하게 되는 그런 것이 아닐까?

작가의 이전글 응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