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작과 나의 도전'이 주제라니! 재밌어 보이는 에세이 공모전이었다. 보자마자 참가해야겠다고 빠르게 결심했다. 하지만 어디 브런치에다가 올려야 할지는 한참을 고민했다.
평소였다면, 에세이는 그쪽 브런치에다가 망설임 없이 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공모전이다. 만일 수상하게 되면, 빼도 박도 못하게 본명을 공개해야 한다. 출간할 때, 이름 석 자가 들어갈 게 뻔하니까. 그렇게 되면, 나는 더 이상 익명성의 위대함에 기대지 못하게 된다. 그 비공식용 브런치에서계속 솔직하게 일상을 토로하고 싶었다. 그것도 아주 대놓고. 저렇게까지 말해도 되려나 싶을 정도로!
수상할 때 생길 일들을 미리 걱정하고 있는 스스로가 우스웠다. 거진 김칫국 한사발을 꿀꺽 드링킹하는 꼴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묘한 찜찜함은 좀체 가시지 않았다.
'수상 안 될 텐데. 아니, 그래도 혹시 모르는데...'
그렇게 글에 관한 내용 고민보다는 어느 쪽 브런치에 글을 올릴지에 대한 바보 같은 고민부터 빠졌다.
글 내용은 나답지 않게 솔직했고, 글솜씨는 초보답게 서툴렀다. 업로드 이후에는, 몇 구독자분들이 구독 취소를 누르기도 했다. 사실 그럴 만 했다. 리뷰글로 가득한 이곳에서 갑작스러운 에세이의 등장이었으니까.
부끄러움과 민망함이 스멀스멀 올라와, 이불을 발로 뻥뻥 차댔다. 대학생 때 이래로 오랜만에 해보는 이불킥이었다. 브런치 앱 알람도 살포시 꺼두었다. 혹여 지인들이 댓글을 달까 봐.
쫄보도 이런 쫄보가 없을 것이다. 새삼 익명성의 힘이 얼마나 위대했는지를 깨닫는다.
그리고 어제, 드디어 발표가 났다. 김칫국 마신 보람이 있다고 해야 하는 걸까? 믿기지도 않게 당선됐다.
EBS 메일 캡쳐본
나는 글을 좋아하지만, 잘 쓰지는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어설픈 글솜씨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아본 적은 별로 없다. 자소서 쓸 때나 스스로의 작문 실력을 저주할 뿐, 평소라면 저주할 일도 없다. 엉망진창인 문장을 쓰든, 어리숙한 전개로 진행하든, 그러려니 넘기고 마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차피 나는 글을 배운 사람이 아니니까. 서툰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잘 풀리지 않을 때 그리도 사람 속 애달프게 만드는 것들은 취업 관련 문제와 내 전공 실력뿐이었다. 그렇게 글은 나한테 있어 마냥 즐거운 존재였다. 심심할 때는 읽고, 쓰고 싶을 때 막 적고 보는. 그래서 이번 EBS 공모전 글을 쓸 때도 두서없이 이야기를 시작했고 마음 가는 대로 끝냈다.
하지만 어제 공모전에 당선되었다는 메일을 받고서는, 왠지 모를 설렘과 충족감이 마음속에서 몽글몽글 피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예전에 엄마가 했던 말이 문득 생각이 났다.
"글이 서툴러도 괜찬아. 마음 속 무언가를 건드리기만 하면 돼. 그런 글을 쓰면 되는 거야."
과연 그 글이 무언가를 건드리는 것이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성별 불명, 나이 불명, 직업 불명의 상태에 놓여야만 속마음을 겨우 써내려갔던 내가. 글 쓰는 건 그저 즐거울 뿐이라고 말하는 내가,갑작스러운 욕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건드리기 어렵다면 간질거리기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누군가가 나의 이 어설픈 글을 읽고서, 미약하게나마 마음속 파동이 울리길 바라본다고. 그런 욕심을 내본다.
새 출발이라고 말하기엔 과하고, 뜻밖의 선물이라고 하기엔 그간 쭉 김칫국을 마셨던지라 좀 우습다.
그래도 말하련다. 이번 소식이 새 출발과 뜻밖의 선물처럼 느껴진다고. 그리고 이 말도 함께 덧붙이고 싶다. 어쩐지 또 다른 '나의 시작과 나의 도전'이 새로 생긴 기분이 들어서, 기쁘고 또 감사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