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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두소이 May 25. 2020

필회즉산 필산즉회(必會即散 必散即會)

가정예배(2가정 이상 모인) 활성화

  요즘 코로나19 이후 변화에 대한 내용들을 많이 들으면서 이 시대에 교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고민 중에 언뜻 떠오른 생각이 들어서 몇자 적어본다.


  코로나19로 인해 정부에서 공적 예배, 누군가는 성전예배라 부르는 회중예배가 금지됨에 따라 온라인예배로 대체되고 실제 나 역시 그 온라인예배를 드리곤 했다. 실제 회사 업무나 (우리 회사도 인터뷰를 화상으로 진행했다.) 학교 등도 온라인 수업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비접촉 시대에서는 교회 모임(예배를 포함한) 또한 네트워크 기술을 기반으로 화상 통화같은 방식으로 모임이 진행되는 것이 자연스럽고 그게 맞다고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정말 그러한가? 교회의 본질은 무엇일까?


  교회는 공동체이다. 그리고 그 공동체의 기본은 가정이다. 그래서 어떤 의식있는 목회자 분 중에는 이럴 때 일수록 온라인예배보단 가정예배를 직접 인도할 수 있는 제자화가 더욱 중요해졌다고 한다. 맞는 이야기겠지만 현실적으로 다가오진 않는다. 평신도 중에서 가정예배를 직접 인도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가정예배가 꼭 가족단위로만 이루어져야 하는 걸까?


  성경은 모이기를 힘쓰라고 한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10:25)

  그리고 초대교회는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행2:46)

  하지만 나는 이를 근거로 "공적 예배"는 반드시 이루어 져야 한다고 주장할 순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한국교회는 성장을 이유로 대형화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성도된 우리는 위 언급된 말씀대로 모이기를 힘쓰고 기존 한국교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지만 우리는 여기서 모임의 규모와 구조에 대해 자문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바이러스가 아니더라도 역사적으로 공적 예배가 제한된 사례는 여러 번 있다. 초대교회만 하더라도 기독교가 국교로 인정되기 전까지 박해와 핍박으로 숨어서 예배를 드렸고 그 형태는 바로 가정예배였다. 그 가정예배는 단독 가정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서너 가정이 모여 예배를 드렸을 것이며 모든 가장이 예배를 인도할 수준은 아니었을 것이다. 서너 가정 중 예배를 인도할 누군가가 있었고 그런 단위로 가정예배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런 의미로 제자화는 여전히 아니 오히려 더욱 중요해졌다. 


  아무리 비접촉시대가 다가와도 접촉을 완전히 차단할 순 없다. 접촉없이 우리의 다음 세대는 이어질 수 없을테니 말이다. 정부차원에서도 교회 뿐만 아니라 대규모 집회를 제한하는 이유는 인원이 많아지면 통제가 어렵고 나중에 문제가 되었을 때 추적이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가정예배(최소 2가정 이상 모인)라면 접촉인원도 최소화할 수 있고 관리도 가능하진 않을까? 예를 들어 외부접촉을 많이 해서 불안한 가정은 제외하고 모이는 경우는 어떨까? 여전히 회사에서는 외부 접촉을 안했다는 전제하에 같이 모여 회의도 하고 일을 하고 있다. 영리목적을 위한 일도 이러한 불안한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접촉을 유지하며 일을 하는 상황에서 그리스도인인 우리의 삶의 목적이 예배인데 예배가 온전해 질 수 있도록 가정예배(2가정 이상 모인)가 활성화하는 것은 어떨까? 이러한 가정예배가 제대로 이루어 진다면 아무리 코로나19로 접촉하는 것이 불안한 시대라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살아나진 않을까?


  코로나19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누구도 모른다. 경제 때문에 각국 나라에서는 모든 것을 예전처럼 하려고 하지만 예전과는 다를 것이다. 그렇다고 계속 봉쇄하고 움츠리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코로나19를 안고 가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온라인예배만 지속되면 안그래도 대형화된 교회에서 예배가 서비스화 되어 버린 이 시대에 예배의 본질은 사라지고 예배서비스에 익숙해져서 세상에 아무런 영향력 없이 무기력한 그리스도인이 되진 않을까?


  이러한 시대에 대형교회의 공적예배만을 고집하면 흩어질 것이고 가정예배(2가정 이상 모인)로 흩어지면 결국 하나님의 교회(비가시적 교회)는 더욱 커져가지 않을까?  한시적인 필회즉산 필산즉회(必會即散 必散即會)에서 교회의 본질대로 모이면 예배하고 흩어지면 전도하는 필회필산 필산필회(必會必散 必散必會)로 돌아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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