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대두소이 May 10. 2020

생존이 되어버린 제 2, 제 3 외국어

헝가리어 배우기

  첫 직장에서 일할 그 시점에 융합이라는 키워드가 유행했었다. 이것은 직업에도 적용되었는데 이를 테면 의사 출신 변호사라든가 회계사 출신 ERP 개발자 등이 각광받는 경우이다. 언어도 마찬가지이다. 회사에 헝가리인과 우크라이나인이 같이 일하다 보니 헝가리어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실제 해외취업 공고를 보면 영어 기본에 현지어를 채용조건에 넣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제 제1외국어인 영어는 기본이 되었고 제2외국어도 필수가 되어가고 있다.

  얼마 전부터 헝가리어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일하면서 시간을 짬 내기가 쉽지 않아 출퇴근하는 차 안에서 반복, 반복, 또 반복해서 들으면서 익히고 있다. 옛날 같으면 종이에 쓰고 외우기를 반복했을 테지만 언어는 말하기가 주목적이므로 반복적으로 들으면서 따라 말하고 있다. 언어는 입에 붙지 않으면 말하기가 쉽지 않다.

  필리핀에서 영어 어학연수 시 언어를 어떻게 익히는지 배웠다. 실제 영어가 자연스레 늘면서 언어를 익히는 법에 자신감을 느꼈다. 필리핀 어학연수 전까지 숱하게 영어문장을 외우고 문법책을 완독해도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다가 필리핀 연수 3개월 만에 말문이 트이니 가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영어 외에 일상 회화가 가능한 수준으로 익혔던 제 2 외국어는 타직어였다. 필리핀 어학연수를 끝내고 타지키스탄에서 한국 NGO가 운영하는 고아원에 자원봉사자로 일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익히게 되었다. 지금이야 다 잊어서 제2 외국어라 말하기는 힘들다. 그리고 말레이시아 주재원 시절에는 말레이어도 기본적인 회화는 가능하도록 공부했지만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았다. 말레이시아는 영어로 생활하는데 큰 불편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헝가리는 다르다. 영화관에도 영어로 상영하는 영화가 거의 없고 영어를 쓰는 사람은 생각보다 적다. 즉 헝가리어를 모르면 불편하다. 그래서 헝가리어 공부를 시작했다.

https://www.hungarianpod101.com/?reqp=1&reqr=

  한국에서 나온 책과 영어로 헝가리어를 배울 수 있도록 콘텐츠를 제공하는 웹사이트를 이용하여 공부한다. 아직은 완전 초보 수준이지만 처음 인사말 외에는 몰랐던 언어가 이제 간단한 한 두 마디 회화는 가능해 졌다. 학생 때 처럼 두뇌 회전이 안돼서 답답하지만 반복은 완성을 만든다고 했던가... 조금씩 익혀가고 있다.

  혼자 콘텐츠만으로 언어를 익히는 것은 당연히 한계가 있다. 언어는 아는 만큼 들리고 말할 수 있으므로 모르는 문장 자체를 아무리 들어봐야 쉽게 익혀지지 않는다. 그래서 문법을 익히는 것도 필요하다.

  헝가리어를 배우기 전까지 배웠던 다른 언어들은 상대적으로 쉽게 배운 것 같다. 타직어의 경우 일대일 과외 수업을 했고 자원봉사자 시절 공부할 시간도 많았기 때문이다. 말레이어만 해도 언어에 대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시장언어이기 때문에 마음만 먹었더라면 좀 더 잘 할 수 있었으리라.

https://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7/16/2011071600191.html

  헝가리어는 알고보니 세계에서 배우기 어려운 언어 순위권에 드는 언어다. 어찌 그리 동사 변화형이 많은지 영어는 참 쉬웠다는 생각마저 든다. 어미 변화가 많은 한국어와 비견될 정도라 한다. 최근에서야 헝가리어 동사 1변화와 2변화를 조금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주세요”를 의미하는 “Kér” 라는 동사를 살펴보자. 1인칭의 경우 kérek(1변화) 이나 kérem(2변화) 으로 써야 하는데 ”사과 하나 주세요”에선 kérek을 쓰고 ”그 사과를 주세요”라고 쓸 땐 kérem을 쓴다. 각각의 경우를 모두 인이 박히도록 익혀서 자연스레 구사하도록 쓰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

  헝가리어는 우랄어족이고 한국어는 알타이어족인데 최근에 두 어족이 유사성이 있음이 밝혀져 우랄 알타이어족으로 분류하기도 한다.(출처 위키백과) 그래서 동사의 어미변화가 한국어와 유사한 점이 있다. 예를 들면 영어처럼 “할 수 있다.”는 의미의 조동사를 쓰는 것이 아닌 동사 어미에 “hat or het”를 붙여서 할 수 있다를 만든다. 그리고 어순도 한국 어순으로 쓰는 경우도 많다. 그런 부분은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영어와 달리 쓰인 그대로 발음되는 부분은 읽기 측면에서는 좋을 것 같다. 다만 알파벳과 비슷한 모음에 강세 표시 같은 기호들이 있어서 영어를 배운 입장에서 혼동되는 부분과 어미변화가 모음 종류(후설모음, 전설모음, 원순모음)에 따라 바뀌니 어미변화를 따라가기가 힘들다.

  헝가리 주재원으로서 생존을 위해 헝가리어를 공부하고 있지만 언어공부를 위한 시간을 따로 할애하기 힘든 상황에서 얼마의 기간 안에 헝가리어를 일상회화가 가능한 수준으로 익히게 될 지 모르겠다. 하지만 빗물이 바위를 뚫 듯 그리고 일만시간의 법칙처럼 매일 꾸준히 조금씩 익혀간다면 꿈에 그리던 “trilingual”은 머지 않아 실현되리라.

작가의 이전글 생존투자시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