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 리우, <종이 동물원>
나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울고 있는 내 모습에서 시작한다. 기억 속의 나는 엄마와 아빠가 아무리 달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
잠시 후, 엄마는 꼬깃꼬깃 접은 종이 덩어리를 입에 대고 풍선처럼 숨을 불어넣었다.
“칸, 라오후.(봐, 호랑이야.)” (...)
나는 엄마의 피조물로 손을 뻗었다. 그것은 꼬리를 움찔거리다가 내 손가락을 향해 신나게 덤벼들었다. (...)
그때는 몰랐지만, 엄마의 종이접기는 특별했다. 엄마가 숨을 불어넣으면 종이는 엄마의 숨을 나누어 받았고, 엄마의 생명을 얻어서 움직였다. 그건 엄마의 마법이었다.(p.13-14)
신부로 팔려 가려고 자기 사진을 카탈로그에 싣다니, 뭐 그런 여자가 다 있어? (...) 경멸의 맛은 달콤했다, 와인처럼.(p.15)
“이거 엄청 비싼 인형이란 말야! 이젠 가게에서 팔지도 않는다고! 네 아빠가 네 엄마를 사 올 때 낸 돈보다 더 줘야 할지도 몰라!”(p.20)
“내가 ‘사랑(love)’이라고 말할 때, 난 그 말을 여기서 느껴요.” 엄마는 손가락으로 입술을 가리켰다. “하지만 ‘아이[愛]’라고 말하면, 여기서 느껴요.” 엄마는 가슴에 손을 얹었다.(p.23)
(...) 그래서 너한테 편지를 쓰기로 했어. 내가 너한테 만들어 준 종이 동물들 안에, 네가 그렇게 좋아했던 그 애들 몸속에 편지를 쓸 거야.
내 숨이 멎으면 그 아이들도 움직이지 않을 거야. 하지만 내가 온 마음을 담아 편지를 쓰면, 이 종이에 나의 일부를 조금이라도 남길 수 있을 거야. (...) 네가 혹시 내 생각을 떠올리면, 넌 내가 남긴 일부를 되살릴 수도 있을 거야. 내가 너한테 만들어준 동물들이 다시 뛰고 달리고 덤비면, 어쩌면 네가 이 편지를 읽을 수도 있겠지.(p.30)
우리는 남에게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려 애쓰며 평생을 보낸다. 그것이 기억의 본질이다. 그렇게 우리는 이 무감하고 우연적인 우주를 견디며 살아간다. 그러한 습관에 ‘이야기 짓기의 오류’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해서 그것이 진실의 일면에 닿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야기는 속에 있는 은유를 좀 더 선명하게 구현할 뿐이다.(p.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