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속에 담긴 사람의 가치
파주로 중대장을 처음 나갔을 때 첫인상이 강렬했던 선배가 있었다. 전입 간 날 그 선배의 꼰대스런 질문이 아직 기억에 남아있다.
"야 인마, 우문현답이 뭐냐?"
"잘못된 질문도 요지를 파악해서 제대로 답변하는 겁니다."
"x망이네 이놈.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말이야"
그 당시 짧고도 강렬했던 줄임말은 웃어야 될지 울어야 될지 모르는 갑분싸를 만들었고, 우문현답을 모른다는 이유로 꼰대 선배의 설파를 들어야 했다.
요즘 인싸의 생활을 하기 위한 알아야 할 줄임말이 많다. 한 날 영화배우 황정민의 '갑분싸(갑자기 분위기 싸해짐)'를 '갑자기 분뇨를 싸지르다'라고 풀이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아직 이런 상황을 보고 웃는 걸 보니 완벽한 꼰대는 아닌가 보다.
줄임말이 한글을 파괴하고, 의사소통 기능을 저해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줄임말 자체가 잘못됐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센스 있는 줄임말은 오히려 가벼운 소통에 도움이 될 때도 있다.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를 우문현답이라는 말로 유희시키면서 의미를 새롭게 전달할 수도 있다. 다른 사례로 적자생존을 ‘적는 자만이 생존한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줄임말보단 욕설과 비속어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욕설
군대에 있으면서 수많은 욕설과 비속어를 들었다. '시발'은 어느새 추임새가 되었고, 많은 의미로 해석되어 사용되고 있었다. 기쁠 때도 시발, 슬플 때도 시발, 화날 때도 시발, 즐길 때도 시발이 일상화되어있었다.
마치 '시발'은 입을 열 때 입구를 열고 나오는 시발(始發)과 같았다.
고된 야근 중 중대장실 소파에서 잠든 적이 있다. 그날 부하들의 새로운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늦은 시간이라 내가 퇴근하고 없는 줄 알았던 애들은 행정반에 모여 온갖 욕설을 하면서 대화했다.
출타 종합문제로 인사병과 욕설이 섞인 대화를 오가다 결국 서로 감정이 격해져 싸움으로 번졌다. 그날 밤 면담을 하면서 싸운 이유는 욕설에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건넨 이는 진심이 아닌 무딘 칼을 주었지만 듣는 이는 상처를 입었다.
비속어
"어휴, 저 군바리 새끼들"
"군바리 새끼들은 답이 없어"
군 복무를 하면서 한편으론 친근한 낮춤말 '군바리'를 가장 많이 들었다. 의미를 모른 채 가볍게 쓰는 경우도 있지만, 군바리는 뒤에 새끼들이라는 말이 따라온다.
군바리라는 단어를 쉽게 쓰지만 현역 때는 군바리라는 말이 달갑진 않았다. 몇몇 잘못된 군인들 때문에 고생하는 장병들의 수고가 무시되는 것 같았다.
고생하는 전우들의 노고는 어떤 말로 표현해도 할 수 없었지만 반대로 노고를 무시하는 단어는 군바리 하나로 충분히 표현됐다. 번외로 '짭새'라는 표현도 비슷한 맥락을 가지고 있다.
품(品) 자는 口(입구)가 3개의 모양을 가지고 있다. 이기주 작가는 '말의 품격'에서 인(人) 품(品)의 뜻을 다음 한 줄로 정리했다.
"인간의 품격은 말을 세 번 함으로써 정해진다."
인품의 뜻을 품고 앞으로 내 가치는 입을 여는 순간 정해진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알고는 있지만 아직 난 부족하다. 오랜 버릇 때문에 가끔 비속어를 쓰고 있고, 운전대를 잡을 땐 욕설이 튀어나오는 순간도 있다. 내 인품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선 그때마다 입을 세 번 툭툭 쳐 고치려 노력해야 되지 않을까?
구화지문 설참신도(口禍之門 舌斬身刀)
: 입은 재앙을 드나드는 문이요, 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