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품격
카리스마 :
'신의 은총'이란 뜻의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말로, 사람을 끌어당기는 특별한 능력이나 자질.
군대에선 나도 지휘관이었지만 나를 지휘하는 지휘관님들도 경험했다. 소대장 때는 중대장, 중대장 때는 대대장, 연대장, 간접적으로 사단장까지 경험할 수 있었다.
내가 모셨던 지휘관님들을 감히 평가할 수 없겠지만 기억에 남는 세명의 지휘관님이 있다.
소프트 카리스마
소대장 때 새로운 중대장님이 오셨다. 중대장님은 오시자마자 생활관 출입문에 'SOCA'라는 문구를 붙이셨다. 소카가 뭔지 궁금했지만 몇 달간 중대장님은 의미를 설명해주지 않으셨다.
"그냥 붙이는 거야, 때가 되면 말해줄게"
삼겹살을 정말 좋아하셨는지, 아니면 내가 첫 만남 때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삼겹살이라 해서 그런 건지 몰라도 유난히도 중대장님과 삼겹살을 많이 먹었다. 많은 임무를 주셨지만 사적으로도 많이 공감대를 형성했다.
무엇보다 "야"라는 호칭이 이름으로 바뀌었다. 그때 삼겹살에 소주를 기울이면서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에 얼마나 많은 의미가 포함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훗날 중대장님과 마지막 삼쏘를 기울일 때 'SOCA'가 '소프트 카리스마'의 준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경험을 통해 알게 된 '소프트 카리스마'는 굳이 부가설명이 없어도 참된 의미를 알 수 있었다.
피카츄 옷을 입은 대대장님
내가 봤던 40대 유부남 형님들은 가정에 있어서는 윷가락처럼 딱 두 가지 모습만 보였다.
'가정을 사랑하거나'
'가정을 욕 하거나'
후자는 본인이 하소연한다고 생각하지만 듣는 사람은 그다지 좋은 이미지로 각인하기 어렵다. 간혹 장난식으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욕되게 하는 사람도 있는데 더 최악인것 같다.
가정을 정말 사랑하시는 대대장님은 부하들도 자식처럼 생각해주셨다. 호칭을 부를 때도 특유의 경상도 사투리가 섞인 말투로 부하들 이름을 불러주셨다. 부하의 의견을 존중하고 경청해주셨고, 참모들의 의견이 다를 때는 논리적으로 이해 시켜줬다.
대대장 이상분들은 인스타그램을 잘 하지 않지만 부하들과 소통창구로 인스타그램도 하셨다. 특유의 따뜻함이 묻어나고 럽스타그램보다 달달한 인스타그램, 어린 자녀들을 위해 피카츄 옷을 입고 가족파티를 하는 모습을 보며 많은 존경심을 갖게 됐다.
내가 만약 결혼을 하게 된다면 P 중령님처럼 피카츄 옷을 입고 행복을 그려나가고 싶다.
팝송을 부른 연대장님
연대장만 바뀌어도 연대 내 분위기가 바뀐다. 전방에서 근무할 땐 무뚝뚝하고, 무게 중심이 지하 끝에 있을 법한 무게를 잡는 연대장님을 모셨다. 지하 끝에 있는 예하 부대들은 긴장 속에 하루하루를 보냈고,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1차 중대장을 끝내고, 전역 준비를 위해 후방으로 내려왔다.
전입 첫날 빨간색 뿔테 안경을 쓰고 오신 연대장님의 첫인상은 강렬했다. 흥이 많은 연대장님을 보면서 뭔가 군인보다는 인사동 거리의 예술인을 보는 것 같았다.
부대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탓에 연대장님께서 직접 지휘를 많이 하셨다. 크리스마스 무렵 부대에선 집중 인성교육을 했다. 보통의 연대장님 교육은 지루하다. 흔히 말하는 꼰대스러운 이야기만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공감되지 않는 본인만의 잔소리 아닌 잔소리가 가득 찬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낸다.
하지만, 잘못된 생각이었다. 편견을 깬 K대령님은 무대에 앉아 기타를 들고 부하들 앞에서 'Last christmas'를 불렀다. 홍대 놀이터에서 버스킹 공연을 처음 봤을 때 같은 신선한 충격이 밀려왔다.
전역을 한 지금도 그 사람을 기억하는 건 특유의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강렬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난 무신론자지만 '신의 은총'에서 유래됐다는 카리스마의 진정한 의미를 곱씹어본다.
"최소한 신은 따뜻한 마음을 지니지 않았을까?"
진정한 리더의 품격은 사람을 진정으로 끌어당기는 카리스마를 지닌 사람이지 않을까?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행위는 상대방의 편안함과 위태함, 정체성을 확인하는 일이다.
* 출처 : 언어의 온도 - 이기주 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