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B와 D사이의 C
장 폴 사르트르는 인생을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라고 했다.
실존주의였던 사르트르는 본인의 선택에 있어 합리적 선택을 했을까? 1964년 그는 노벨문학상을 거부했을 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지 궁금하다.
가끔 이분법적인 사고를 생각하며 선택을 상기할 때가 있다.
지금 선택에 후회가 있는 건 아니지만 다른 선택지를 골랐을때 삶이 어떻게 굴러가고 있을지 궁금하다. 그만큼 인생에는 답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모두 놓친다라는 말처럼 살아오면서 수 없이 많은 선택이 있었다. 스스로는 현실주의자, 실존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못하겠다 싶은 것보다는 좋아하고 잘하는 걸 하려고 했다. 군인정신의 대표적인 슬로건으로 자리 잡은 "안되면 되게 하라"이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안되면 되는 걸 하면 된다.
군에서 중대장을 할 땐 어느 때 보다 선택과 집중이 중요했다.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지만, 정말 다양한 일이 쏟아진다. 업무는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 내리기도 하고, 땅에서 솟아나기도 한다.
훈련을 하고 있다가도 관심병사들을 면담해야 하고, 중간에 물자관리와 비밀관리도 확인한다. 조금 과장해서 축구 감독이 필드 플레이어를 넘어 골키퍼까지 한다고 비유할 수 있다.
4차 산업처럼 복잡한 세상에 멀티플레이 능력이 중시된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과감히 우선순위가 낮은 건 포기했다. 그때 자기 합리화를 한건 선택과 집중 논리다.
특히, 평가를 받을 때 선택과 집중을 발휘했다. 군에서는 다양한 평가요소들이 있다. 인사관리를 위한 평가도 있고, 경연대회를 위한 평가, 부대 점검을 위한 평가 등이 있다. 여러 훈련들 속에서 지휘관들은 훈련성과나 결과에 따라서 평가를 받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진급을 위한 경쟁의 연속이다.
선택과 집중을 배운건 초급간부 시절 동원사단에 있을 때 연대장님께 배웠다. 오전 회의 때만 되면 2시간씩 고함과 폭언을 일삼던 5공화국 시절의 군인 같은 연대장님이었다. 그런 연대장님도 RCT(연대 평가)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 RCT준비 첫 회의 때 모든 간부들이 긴장했지만 그 무섭던 강성 연대장님은 의외로 담담했다. 모든 걸 포기한 체념과는 다른 담담함이 묻어났다.
극악의 피라미드 구조의 군 조직 속에서 자신이 살아남은 노하우는 '선택과 집중'이라고 하셨다. 많고 많은 군 업무 속에서 2년에 한 번 있는 연대 평가를 위해서만 달려간다면 너무 이기적이지 않은가.
"수색중대장 넌 지금 자신 있는 게 뭐지?"
"사격과 체력입니다."
"다른 건 제쳐두고, 사격과 체력을 200%만큼 노력해"
그해 RCT훈련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간부 사격과 체력 그리고 행군에서 '우수' 평가를 받았다. 다른 과목은 '미흡' 평가를 받았지만 군 조직의 특성상 못하는 것보다는 잘하는 게 포장됐다.
특히, 행군 측정에서 군단 최우수 기록을 세웠다. 다음 RCT훈련 예정 부대에서 노하우를 전수받기 위해 찾아오기도 했다. 머쓱해하면서도 노하우는 선택과 집중이라고 말했다.
삶을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가장 최근 굵직한 선택은 전역 후 미래에 대한 고민이었다. 전역도 전역이지만 전역 후 삶에 대해서 많은 선택지를 놓고 끊임없이 고민했다.
나라에서 주는 녹봉을 받아본 사람은 그 맛을 쉽게 잊지 못한다.
공부를 해서 안정지향적인 나랏돈을 받는 공무원이 될 것인가. 아니면 사기업을 들어가 새로운 삶의 이정표를 갖게 될 것인가. 인생의 방향을 바꿀 베벨기어 같은 톱니바퀴는 어떤 선택이었을까.
고민과 고민 끝에 공무원 준비보단 사기업을 선택했다. 방향을 바꿀 베벨기어를 고르는 건 본인의 몫이다. 수없이 많은 선택의 연속에서 후회가 없기를, 그리고 나만의 기준을 가지고 합리적인 선택을 했기를 바라면서 매 순간 선택과 집중을 고민해본다.
풀리지 않는 삶의 난제들과 맞서기도 해야겠지만, 가끔 달아나는 것도 필요하다.
*출처 : 여행의 이유 - 김영하 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