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운몽이 된 어릴 적 꿈
학창 시절 장래희망은 공무원이었다. 옆 친구는 선생님, 친한 친구는 경찰이 장래희망이었다. 30대가 된 사회초년생들은 꿈을 이뤘을까? 내 또래들은 IMF시기 부모님을 보면서 안정지향적인 직업을 갖는 장래희망이 많았다. 얇고 길게 가는 게 내 또래 세대의 꿈이었다.
처음 군인이 되었을 땐 평생 군인을 할 줄 알았다. 초급간부 땐 내가 최소 연대장은 할 줄 알았다. 30년 군생활을 하고 편하게 연금 받으면서 여생을 보내야지라는 생각이었다. 굴곡 없는 단순한 인생그래프를 그렸다. 하지만 그래프는 시작부터 잘못됐었다는 걸 알지 못했다.
생각보다 직업군인, 특히 장교는 불안정한 직업이다. 극피라미드 구조속에서 진급에 대한 경쟁과 세렝게티와 같은 먹이사슬 속에서 살아남기는 쉽지 않다. 진급을 위해서는 남들보다 더 야근해야 되고, 남들보다 성과를 창출해야 한다. 진급을 위한 핵심 직책으로 가기 위해서 발판도 중요하다.
저녁이 있는 삶과 가정을 일부 포기한 채 진급만 바라보고 뛰어야 한다. 그러다 진급이 안되면 뒤늦게 사회라는 정글에 뛰어들어야 한다.
일정기간 군 복무를 하면 사회적응 교육을 시켜준다. 허울뿐이긴 하지만 전직지원 교육을 국방부 차원에서 시켜준다. 작년 전직 교육원에서 교육을 받을 때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90%가 넘는 인원이 전부 공무원, 군무원, 경찰, 소방관을 준비하는 게 아닌가!
나랏돈을 받아본 사람은 그 맛을 안다는 말로 합리화시키면서 전부 교육은 미뤄둔 채 시험공부를 했다.
생각의 차이긴 하지만 공무원이 최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100세 인생에서 5가지 직업에 종사해 보는 게 목표다. 인생 그래프 끝자락에 하고픈 소소한 꿈도 있다.
지금 내 꿈은 바닷가에 집 짓고 매일 일출이나 일몰을 보는 것이다. 어릴 적 판사가 되겠다는 헛된 꿈보다 현실적이고 행복한 꿈이다.
군 복무를 하면서 생긴 행복에 대한 고찰이 전역 후 삶을 정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공무원을 준비하면서, 그렇다고 내가 공무원을 하게 되면 행복할까?
OAC을 받을 당시 교관님은 진급만 되면 가족도 행복할 거라고 했다. 군단장이 될 거라는 교관님의 생각은 아직도 유효할까?
행복엔 크기를 잴 수 없지만 사소한 행복들이 쌓여 큰 행복이 된다고 생각한다. 소확행을 꿈꾸고자 하는 세대들은 하나의 큰 행복을 위해 불행을 감수하지 않는다.
저녁(전역)이 있는 삶을 위해 전역을 했다. 미생의 삶을 살고 있는 지금 저녁이 있는 삶이 완벽히 보장된 건 아니지만 군대에 있을 때보다는 비교적 소소한 행복을 찾을 수 있고 저녁이 있는 삶을 지내고 있다.
한국사 공부를 할 때 최태성 강사의 인강을 들은 적이 있다.
"꿈은 동사로 꾸세요."
선생님, 군인, 경찰, 판사, 검사, 의사 등 어릴 적 꿈은 무조건 명사였다. 직업을 갖게 된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렇다고 실패 감도 느끼지 않았고, 허탈감도 없었고, 그저 그런 꿈이 지나갔구나 생각됐다.
"꿈이 꼭 필요한가요?"
꼰대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요즘 세대의 발상이다. 현실성 없는 꿈을 갖고 있어서 무얼 하나, 현실성 없는 꿈은 그저 헛된 구운몽이 될 뿐이다. 명사적인 꿈이 없다고 해서 도전정신이 없는 것도 아니고, 목표가 없는 것도 아니다. 진정으로 하고자 하는 행복한 꿈을 꿀 때 행복의 정의를 내릴 수 있지 않을까?
나중에 커서 무엇이 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나는 "행복"이라고 썼다.
그러자 사람들은 내가 질문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말했고,
나는 그들에게 "당신들이 인생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되받아 쳤다. - 존레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