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과 갑질사이
국가에 대한 충성은 희생을 동반한다. 또한, 충성이라는 이름으로 희생을 강요하는 건 참된 충성이 아니다.
군인 정신중 충성의 의무, 충성은 의무인가? 군인의 궁극적인 목적에 따르면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명예에 따라 국가와 국민에 충성해야 한다.
전쟁이라는 특수성에 기인하면 당연해 보이지만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현세대의 젊은 군인들은 충성심을 당연히 생각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그냥 JOB 군인인 셈이다.
개성이 강한 초급간부들과 병사, 그리고 개성을 이해 못하는 나이 든 꼰대 지휘관들의 눈치싸움은 두발정리에서 나타난다. 군인은 용모가 단정해야 한다는 구시대 발상에서 나온 두발정리는 영원한 밀당이다.
머리를 길어도 깔끔해 보이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머리만 짧고 단정하지 못한 사람도 있다.
충성과 갑질 사이
장교는 진급을 하면 각 계급별로 지휘관을 한다. 대위나 소령은 중대장, 중령은 대대장, 대령은 연대장을 한다. 초창기에 지휘관에 부임하면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낸다.
어릴 적 심시티 게임을 하듯 자신만의 마을을 만들어 나가길 원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휘관이 바뀌면 부대 분위기가 바뀐다. 마지막 지휘관으로 모셨던 연대장님은 독특한 두발정리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귓바퀴 윗 상단에 맞춰 구레나룻을 없애라"
지휘통제실 오전 회의시간 두 귀를 의심했다. 구레나룻이라고 하면 귀밑에서 턱까지 이어진 수염이라고 정의하지만 귓바퀴 윗 상단에 맞춰 구레나룻을 자르라는 말에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의구심은 하루를 가지 못했다. 연대장님부터 귓바퀴 윗 상단에 맞춰 면도기로 머리카락을 자르고 왔기 때문이다.
"왜 시키면 시킨 대로 하지 않지?"
몇몇 버티는 간부들과 병사들도 있었지만 군대 특유의 까라면 까라는 갑질 문화에 우스꽝 스런 레고머리를 하게 됐다. 지금 생각하면 황당하기도 하다. 그게 과연 단정한 모습일까? 목덜미를 잡힌 채 끌려 나온 충성심은 참된 충성심일까?
충성의 사전적 의미는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이다.
군인도 세대교체가 되고 있다. 지금은 5공화국 시대가 아니다. 국가에 대한 희생을 강요하기보단 국가가 나서서 군인들에게 충성에 응당한 물질적, 정신적 대가를 줘야 한다.
충성도 일종의 거래다. 주는 게 있어야 오는 게 있다. 또한, 충성은 하급자가 상급자에 대한 충성만 있는 게 아니다. 상급자 또한 하급자에게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을 보여야 할 때다.
"중대장은 너희에게 실망했다"
인터넷에서 많은 공감을 이끌어낸 우스개 섞인 중대장들의 단골 대사다. 웃프게도 실제로 나도 실망한다는 말을 많이 했다. 어느 시점, 저 말이 나오게 되는 분위기, 배경 등이 머릿속으로 그려진다.
정성에 대한 충성을 바라면 안 되지만 그만큼 정성을 쏟았기 때문에 실망감도 느꼈지 않았나 싶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말도 안 되는 강요와 갑질보다는 어쩌면 더 많은 실망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상대방에게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 주길 원하면 안 된다.
찰떡같이 말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출처 : 역사의 쓸모 - 최태성 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