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병풍의 나라>(아모레퍼시픽미술관, 2018)
APMA <조선, 병풍의 나라>展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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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글은 아모레퍼시픽미술관(APMA)에서 2018년에 개최한 <조선, 병풍의 나라>를 보고 썼던 리뷰입니다. 당시 사용하던 네이버 블로그에 메모해두었던 것을 브런치로 옮겨둡니다.
4년 전 전시이기 때문에 당시엔 눈에 띄었던 것들도 지금은 흔해지고 당연해진 게 많다는 게 재미있네요.
5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AI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했습니다. 고미술 전시에서도 실감 영상 등 디지털 미디어의 역할과 비중도 크게 확장되었고요. 아예 상설전시화된 '보이는 수장고'도 이제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형태로 자리잡았습니다. 디지털 루페로 표현한 줌카메라 기능도, 스마트폰의 기능이 어마어마하게 발전한 지금은 '이게 그리 놀라울 게 있나' 싶구요.
하지만 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는 명제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것 같습니다. 고미술 전시에서 새로운 가치를 탐색하고 창조해내는 것은 여전히 사람의 일로 남아 있어요. 그래서 전시장과 어플리케이션, 오디오가이드, 도록 등 관람객이 만나는 모든 미디어에서 기획자(큐레이터)의 존재감과 전문가의 손길을 거친 서비스가 뚜렷하게 느껴졌던 점은 지금 다시 보아도 흥미로운 지점 같습니다.
매료된 이들의 이야기가 지니는 힘이 있죠. 투박한 언어이든 세련된 언어이든, 문화재 너머에서 들려오는 사람의 이야기를 더 많이 만나고 싶은 가을입니다.
리뷰(2018)
"풍성한 머리카락을 잘 빗어가며 깨끗하게 땋아놓은 댕기머리를 보는 것 같은 전시"
1. 실험을 거친 실행들, 정돈되고 통일성 있는 디스플레이와 효율적인 가이드
2. 일정한 모듈 안에서 다양한 변화를 보여주는 병풍 유물들을 효과적으로 소개
3.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컬렉션을 새롭게 인식시키는 전시
의미를 짜내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없다. 전시에서 발견되는 여러 포인트들이, 이 전시가 충분히 숙성된 아이디어들을 ‘엮은’ 것이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예를 들어 ㅇㅇㅇㅇ병풍의 보존처리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부수되어 나온 ‘자료’들도 그런 이미지를 더욱 뚜렷하게 하는 것 중 하나이다. 전시를 위해서 시각 자료들을 새로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컬렉션 자체를 돌보고 연구하면서 자연스럽게 소재들을 모으고 자료로서 갈무리하여 전시의 맥락으로 포섭해 왔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자연스러움이 새롭게 느껴진 이유가 또 하나 있다. 많은 박물관들이 ‘개방형 수장고’를 지향하고, 몇 년 사이 고미술 전시에서도 ‘수장고식 전시’가 시도되어 오고 있다. 그러나 그런 전시들을 볼 때마다 내가 계속 고민했던 것은, 수장고식 전시에서 관람객들에게 보여지는 저 압도적인 물량에 비해 큐레이터들이 준비한 언어는 너무 적다는 것이다.
이것은 텍스트의 길고 짧음, 자세함과 간략함의 문제가 아니다. 그 각각의 유물이 얼만큼 중요하고 왜 중요한 것인지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보물창고를 개방하여 보여준다는 박진감을 뒷받침할 만한 이야깃거리는 따라붙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러면 수장고식 전시에 나온 유물들은 각각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과 ‘같은 나라에 사는 사람들’의 입지에 놓인다. 그러면 쇼케이스 한 면과도 쉬이 퉁치는 캡션, 혹은 설명 패널이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스토리텔링’이라는 마케팅 분야의 용어까지 빌리지 않아도 된다. 출품되는 유물들을 얼마나 들여다보고, 생각하고, 그 생각들을 전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함께 나누고 발전시켜오는 소통의 시간들이 있었는지 관람객들이 인식하고 이해하고 감동할 수가 없다.
전시 기획이란, 작품이 큐레이터에게 ‘내가 왜 좋아?’하고 질문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던 사람이라면 차분히 말할 수 있을 것이고, 일감 대하듯 별 생각 없이 곁에 머물렀던 사람은 어버버하겠지.
○ 전시 규모
출품작이 총 77점, 이렇게 쓰면 작은 전시 같지만,
병풍이라는 형식상, 화면으로 따지면 수백 장에 달하는 그림들을 전시한 셈이다.
○ 전시 배치
전시장 입구에서 세 방향으로 하이라이트 조망 가능.
(인트로/입구 옆 별실 같은 공간/전시장 깊숙이 위치한 자수병풍)
○ 조명: 두 겹
병풍 전체와 병풍 그림 부분에 두 겹으로 조명을 사용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림 감상에도 도움이 되지만,
병풍이라는 포맷의 구조를 명확하게 인식시키는 효과를 내는 것도 눈길이 간다.
○ 쇼케이스: 근접 설치
쇼케이스의 경우,10cm 거리에서 화면을 감상할 수 있게 작품을 바짝 당겨 배치.
다양한 스케일의 병풍 작품들을 실감 나게 감상할 수 있다.
병풍 표면의 질감까지 선명하게 보이고, 앱에서 제공되는 카메라 기능이 이를 배가.
질감이 곧 품질을 말하는 고미술 작품의 특성을 관람객들이 체험적으로 인식하게 되는 효과.
○ 타이포그라피 디자인
홈페이지에서 가장 먼저 공개된 “Beyond Folding Screens” 타이포그라피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첫째, 고미술 전시의 이미지를 깨뜨리는, 완전한 알파벳 타이틀이라는 점.
둘째, 병풍 작품 이미지를 일절 배제한 점.
셋째, 3개 단어로 이루어진 타이틀을 반복한 타이포그라피가 시각적으로 3개의 직사각형이 횡으로 배열된 것처럼 보이면서, 수직으로 긴 병풍 폭이 펼쳐진 모습을 연상시키는 점. 이로써 메인 작품 이미지 없이도, ‘병풍’이라는 이미지를 직관적으로구현해냈다.
○ 어플리케이션: 디지털 루페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조화, 라는 레토릭이 진부해진 이유는 그것이 매번 실패하기 때문인데... 그게 현실에서 구현될 수 있음을 목격하는 기분이 꽤 짜릿하다. 미술관에서 제공하는 앱을 이용하면, 루페를 사용하는 것처럼 그림이 그려진 비단의 짜임새까지 선명하게 관찰할 수 있다. 소위 말하는 '전문가의 눈'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시도라는 생각이 든다.
일반인들도, 스마트폰만 있으면, 비단의 조직까지, 맨눈으로는 보기 힘든 작은 디테일(병아리, 농사그림의 옷 채색 흔적 등) 요소들을 선명하게 관찰할 수 있다. 고가의 루페를 소지하지 않아도 된다. '이런 그림은 이런 곳을 봐야지'하는 스케마가 없어도 된다. 아무 제한이 없다. 전시장에 배치된 낯선 디바이스가 아니라, 내 손에 익은 내 폰카로 자유롭게 그림을 확대해서 보고 촬영할 수 있다. 심지어 이 같은 감상방식은 쇼케이스에 손대서는 안된다는 미술 전시의 가장 기본적인 금기도 과감하게 무너뜨린다.
"그런데 이렇게 줌카메라로 그림을 보다 보면 관람객들의 손이나 핸드폰이 유리 표면에 닿아서 지저분해지지 않을까요?"
"작품도 아니고 유리에 닿는 건데요, 뭐. 관람객은 마음껏, 마음껏 보시기만 하면 되죠. 유리는 우리가(직원들이) 계속 닦으면 그만이죠.(디렉터)"
○ 오디오 가이드: 큐레이터의 육성
전시 오디오 가이드는 대개 유명인이나 전문 성우, 아니면 TTS를 활용하는데, 이 전시에 참여한 미술관 큐레이터와, 미술관 아카이브 담당자가 직접 작품 설명을 녹음했다.
학생 시절에 도슨트 아르바이트도 해보았고, 나중에는 도슨트를 교육하는 일도 해보았다. 그러나 결국은 관람객들이 정말로X2 원하는 것은 '큐레이터'에게 직접 듣는 것이라는 것을 절감할 때가 더 많았다. 그런데 내가 듣고 싶은 때 아무 때나, 다른 관람객들과 우르르 몰려다니지 않아도, 큐레이터의 '목소리'로 해설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참 재미있는 일이다. TTS의 활용성이나 전문 성우나 아나운서의 완벽한 발성과 발음 이상이 주는 무언가.
○ 텍스트 링크 기능: 전문가의 친절
간략한 작품 설명과 더불어서, 텍스트 링크를 클릭하면 관련 기사를 바로 이용할 수 있다. 이 텍스트 링크는 전문가의 지식과 시간 없이는 만들 수 없는 친절한 서비스다.
전문적인 정보일수록, 키워드 위주의 해시태그는 검색에 도움이 안 된다. 관람객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정보로 바로 ‘꽂아’주는 이 링크는, 정보 검색에 소모되는 시간을 절약해주고, 효율적으로 작품의 외연으로 관람객들의 이해를 확장시켜 준다.
키워드를 검색했을 때 쏟아지는 정보들에서 옥석을 가려낼 수 있는 전문지식을 갖춘 사람이, 시간을 들여 데이터를 선별하여 제공한다. 그리고 그 시간과 수고를 관람객들의 편의를 위해 제공하고자 하는 ‘친절함kindness’이 없이는 발상도 실현도 어렵다는 것을 나는 문화재 정보 데이터베이스를 다루는 일을 해온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하여, 이것은 동시대 큐레이터들이 관람객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큐레이팅의 영역을 다시 되돌아보게 하는 요소였다. 큐레이터가 전시장 안의 작품들뿐만 아니라, 그 ‘밖’으로도 ‘가이드’를 해준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