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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혁 Jun 10. 2021

그때 그 못난이 7화

소풍은 내 마음에도 봄으로 채워졌다

4월이 시작되며 교실은 시끄러워졌다.

"승혁아, 너도 할래?"

"난 됐어. 관심 없어."

"그래? 알겠어. 근데 넌 뭐 싸올 거야?"


봄소풍에 대한 기대로 벌써부터 장기자랑은 어떤 걸 할지, 도시락은 뭘 싸올지 대화가 오고 갔다. 보물 찾기는 누구와 편을 먹고 찾아서 나눌지 별 쓸데없는 얘기까지 진지하게 이뤄졌다. 김전일이나 코난 만화가 유행하면서 다들 정신이 나갔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봄소풍을 기대하고 있다. 학교 뒤에 있는 삼익산은 다람쥐와 꿩이 정말 많다. 커다란 바위도 많아서 술래잡기할 때도 숨을 곳이 많다. 그곳에선 언제나 즐겁다. 이번 봄소풍도 참 재미있을 거 같다. 나도 가고 싶다.'

모두가 떠나는 봄 소풍에 나는 갈 수없었다. 차마 집에 소풍비를 얘기할 수 없었다.


이모와 이모부는 요즘 돈 때문에 많이 싸웠다.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되는 현실, 어쩌면 나는 1996년 남들보단 조금은 일찍 세상을 알게 됐는지 모른다. 봄소풍에 마음이 한껏 부풀어 소풍비를 달라고 할 수 없었던 그 심정을 스스로 이해했으니 말이다.


'함께 가자. 꼭!!!'

선생님은 정말 짧게 감상평을 남겼다. 짧은 감상평을 끝으로 나와 선생님 사이에서 소풍 얘기는 더 이상 오가지 않았다.


교실 청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승혁아, 소풍비 없어도 되니까 이번 봄소풍에 함께하자."

"아니에요. 괜찮아요."


기쁨과 슬픔이 함께하는 말을 나는 그때 이해했다. 소풍에 대한 기대로 기쁨의 감정이 차올랐고, 또다시 동정과 연민에 슬픔이 짓눌렀다. 슬픔이 조금 더 컸었는지 대답은 거절이었다.


선생님과 얘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애써 합리화했다.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소풍, 이모는 바쁘다. 도시락을 싸려면 새벽에 일어나야 하는데 그건 너무 힘든 일이다. 소풍을 안 가면 나도 학교를 안 가도 되니 집에서 놀 수 있다며 주문을 외웠다.


"이번 봄 소풍은 우리 반 모두 참여하기로 했으니 다들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도록."

며칠 뒤 선생님은 대뜸 아이들에게 전원 참석 통지를 했다. 쉬는 시간 아이들이 나에게 모두 몰려왔다.


"승혁아, 너도 가는 거야? 그럼 나랑 보물찾기 편하자."

"장기자랑은 안 할 거야?"

이미 반 아이들에게 나는 못 간다고 얘기를 했었는데 갑작스럽게 참석하는 걸로 변했고, 모두가 곁에 다가와 조잘거렸다.

"아니야. 난 소풍 안가. 선생님한테 얘기했는데 까먹었나 봐."

"아, 진짜? 같이 가면 좋을 텐데..."


선생님은 다시 날 불렀다. 이미 선생님은 소풍비를 냈다고. 다른 아이들도 내가 소풍에 함께 갔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고 말이다. 나는 말없이 서있었다.

"그럼, 같이 가는 거다. 알겠지? 응? 승혁아, 알겠지?"

나는 그저 고개를 몇 번 끄덕였다.


소풍날은 모두가 발걸음은 가볍고 가방은 무겁게 걸었다. 대체 뭘 집어넣고 왔는지 다들 가방이 터질 거 같았다.


"이거 먹을래?"

평소에도 돼지라고 놀림받던 윤성이는 그새를 못 참고 가방에서 탄산음료를 꺼냈다.

"아니야. 이따가 먹을게."


10분 여를 걸어 소풍 장소에 도착했고 선생님들 지휘 아래 요상한 게임들과 수건 돌리기 등으로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 나도 언제 그랬냐는 듯 신나게 웃고 떠들며 침을 흘렸다.


"자, 그럼 이제 다들 엄마가 맛있게 싸준 도시락 먹고 오후엔 보물찾기 할게요. 깜짝 놀랄 보물이 있을 거예요."

다들 환호와 박수를 보내며 도시락을 꺼냈다. 나는 가방에서 땅콩버터 빵과 우유를 꺼내 입에 물었다.


"이거 먹어."

"응?"

"승혁아, 이거 먹어."

"응? 괜찮아."


반 아이들이 하나, 둘씩 먹을 걸 건넸다. 아라는 바나나를, 영택이는 소시지를, 윤성이는 탄산음료를 내게 줬다. 어느새 반에서 내 도시락이 가장 푸짐해졌다. 매번 있었던 일이다. 우리 학교에 나와 진희는 엄마가 없다. 그런 우리를 위해서 4학년 때 선생님은 반 아이들의 반찬을 하나씩 나눠주도록 했었다. 그게 지금까지 이어졌고 반 아이들의 엄마도 알고 있기에 우리가 먹을 걸 더 싸주곤 했다.


"고마워. 모여서 다 같이 먹자."

반 아이들을 불러 모아 다 같이 도시락을 꺼내 먹기로 했다. 그 자리에 슬며시 못난이가 꼈다. 못난이는 3단으로 된 도시락을 꺼냈다. 1단에는 김밥이 있었고 2단에는 소시지와 치킨이, 3단에는 돈가스가 꽉 차있었다.


"우와, 이거 뭐야? 대단하다. 너네 엄마 끝내준다."

지금으로 치면 아이유 3단 고음만큼이나 임팩트 있었던 도시락에 다들 술렁였다. 못난이는 자랑스러운 듯 부끄러운 듯 또 붉게 얼굴이 타오르며 몸을 베베 꼬았다.


"그리고 이거."

못난이는 가방에서 똑같은 도시락을 하나 더 꺼냈다. 그리곤 내 앞으로 밀어 놨다.

"엄마가 너 주래."

모든 시선이 이번엔 나에게 몰렸다.  그리고 그날 나는 세상이 떠나갈 듯 펑펑 울었다. 이번엔 기쁨이 조금 더 컸던 거 같다. 먹을 걸 나눠주는 것도, 도시락을 나눠주는 것도 슬펐지만 이상하게 기쁜 마음이 한켠에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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