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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혁 Jun 10. 2021

그때 그 못난이 6화

들킨 거 같다

1996년은 기분 좋게 시작됐다. 못난이와 같은 반으로 배정됐다. 5학년 내내 짝꿍으로 지냈기에 마음 편한 못난이와 같은 반이라는 게 좋았다. 물론 새 학년 못난이의 짝꿍은 내가 아니었다. 선생님은 가나다 순으로 자리를 배정했고 못난이와 나는 멀찍이 떨어져 앉았다. 


선생님은 예뻤다. 교생 실습을 마친 것뿐 정식 선생님은 처음이라고 했다. 20대 젊은 여선생님은 학교 선생님들에게도 학생들에게도 인기가 좋았다. 거기에 의욕도 넘쳤다. 매번 일기장을 써오라고 했고 모든 아이들의 일기장을 검사하며 예쁜 글씨로 감상평을 적어 넣었다. 


'승혁이는 글씨가 자유를 찾아가는구나.'

내가 처음으로 받은 한 줄이다. 짤막하지만 확실한 의미가 담긴 감상평, 글씨 좀 잘 쓰라는 얘기였다. 하지만 그게 쉽게 바뀔 리 없었다. 내 글씨는 계속 자유를 외쳤고 그럴 때면 선생님은 감상평에 자유를 억압했다. 


한 달이 지나고 선생님은 자유를 외치는 내 글씨에 완전히 적응했고 남들은 읽지 못하는 일기를 완벽하게 읽어나갔다. 덕분에 감상평은 두줄이 됐다. 


'여전히 글씨는 자유를 찾는구나. 승혁이는 오늘 한일이 즐거웠니? 선생님은 오늘 힘들었단다.'

비밀 친구 같았다. 한 달에 한번, 두세 달에 한번 썼던 일기는 점점 늘어 일주일에 한 번, 2~3일에 한번 쓰게 됐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은 감상평을 남겨줬다. 그게 참 좋았다. 남들에게 하지 못했던 얘기를 선생님은 알고 있었고 감상평으로 넌지시 그에 대한 답을 남겼다. 


'승혁이는 좋아하는 친구가 있니?'

학교에서 있었던 일, 집에서 있었던 일, 학교 끝나고 동네에서 있었던 일 등 많은 얘기를 일기에 쓰며 선생님과 비밀 친구가 됐고 선생님은 조금씩 질문형 감상평을 남기기 시작했다.


'진영이랑 아라, 은희와 함께 윤성이네 집으로 생일 파티를 하러 같다. 윤성이네 엄마가 피자와 치킨을 내주셨고 우리는 맛있게 먹고 재밌게 놀다 돌아왔다. 언제나 웃기고 재밌는 진영이랑 아라, 은희와 함께여서 참 좋았다.'

나는 다음 일기에 감상평 대답 같은 내용으로 채운다. 그럼 선생님은 그 일기에 대한 감상평과 질문을 남기곤 했다. 


'윤성이는 참 행복했겠구나. 윤성이는 아라를 좋아한다고 짝꿍 시켜달라고 말하던데 승혁이는 짝꿍 하고 싶은 사람 없니?'

이때 알았어야 했다. 선생님은 비밀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말이다. 선생님은 나에게 윤성이의 비밀을 누설한 것이었다. 

'못난이와 5학년 내내 짝꿍을 했다. 그래서 좋았다. 우린 얘기를 많이 나누고 못난이네 엄마도 나를 좋아한다. 다음에 짝꿍이 된다면 못난이와 앉고 싶다.'


다음 날 내 자리는 옆 분단으로 옮겨갔다. 내 짝꿍인 은희가 앞에 앉은 성주때문에 칠판이 안보인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자연스럽게 은희와 나는 음악실 청소를 하게됐다. 우리가 옮긴 분단이 음악실 청소 담당이었다. 그리고 우리 분단의 조장은 못난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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