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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혁 Jun 04. 2021

그때 그 못난이 5화

이상하고 눈치 없는놈

"형, 안녕."

등굣길 학교 앞 문방구에서 뽑기로 뽑은 음료수를 마시고 있을 때 이상한 놈이 말을 걸어왔다. 쫙 째진 눈인데 끝이 쳐져 있어 자다가 막 일어난 얼굴이었다.

"누구냐?"

"어, 저번에 봤는데? 우리 집에 왔었잖아."

못난이의 동생이었다. 봤던 거 같긴 한데 기억에 없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둘이 닮은 거 같기도 했다.

"그래, 안녕. 일찍 왔네."

"응."

뭘 원하는 건지 앞에서 멀뚱멀뚱하게 쳐다봤다.

"음료수 마실래?"

"아니. 나도 있어."

"그래."

그리고선 또 앞에서 계속 쳐다봤다.

'뭘 어쩌라는 걸까?'

마침 같은 반 친구가 문방구에서 나오며 인사를 했기에 이상한 놈의 눈길을 피해 등교할 수 있었다.


"집에 오는 길은 때론 너무 길어~"

교실 안은 온통 패닉이었다. 1995년 끝자락, 달팽이란 노래가 엄청난 히트를 치면서 집이 멀다고 다들 하소연해댔다. 물론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남들처럼 소리 내 부르진 못해도 콧바람으로 음률을 내비치고 아무도 없는 외진 하굣길에 목이 터져라 바다로 가겠다 소리쳤다.


"패닉 좋아해?"

"응, 달팽이 너무 좋은 거 같아."

전보다 훌쩍 가까워진 못난이가 불쑥 말을 걸어왔다. 그리곤 한동안 귀에 피가 나도록 조잘거렸다. 김진표가 색소폰을 불 때 허리를 너무 꺾어서 졸도하는 줄 알았다느니, 이적이 서울대를 나왔다느니, 별 쓰잘데기 없는 얘기를 내뱉었다.

"어제 다른 큰 지현이 생일이라서 노래방 갔는데 다들 달팽이만 불렀다던데."

"맞아. 나도 어제 같이 갔었어. 다들 달팽이만 엄청 불렀어."

"너도 불렀어?"

음악 시간에 종종 선생님이 독창을 시킬 정도로 못난이는 노래를 꽤 잘 부르는 편이었다. 못난이가 달팽이를 부르는 모습이 어땠을지 잠시 생각했다.

"응, 근데 다들 같이 불러서 내 소린 들리지도 않았어."

"그렇구나."

"달팽이는 우리 엄마도 좋아해. 다른 노래는 안 듣는데 TV에서 달팽이만 나오면 부엌에서 나오셔."

달팽이 얘기만 30분은 한 거 같다. 입에 춥파춥스라도 집어넣어야 조용할 거 같았다.

"TV 보고 나면 부엌에서 달팽이 부르면서 밥하시는데 엄청 웃겨. 궁금하지?"

"응."

"그럼 우리 집 갈래?"

한 30분 정도는 더 달팽이 얘기를 해도 괜찮을 거 같다고 생각했다. 못난이네 집으로 가는 길 내내 달팽이 얘기를 할 줄은 몰랐지만.


"안녕하세요."

"어머? 승혁이 또 왔네. 어서 들어와. 감기 걸릴라."

여전히 교감 선생님 같은 모습에 주름진 자두색 치마를 입은 못난이네 엄마가 반갑게 맞아주셨다.

"과일 먹을래?"

누굴 보고 말한 건지 이미 눈과 몸은 부엌으로 향하고 있으면서 물어왔다. 대답도 못하고 어물쩡거리는 사이 이미 못난이네 엄마는 부엌으로 사라졌다.


"이거 봐봐."

"우와, 워크맨이네?"

못난이는 보물이라도 꺼내 듯 서랍에서 조심스럽게 꺼낸 워크맨을 바라보며 싱글벙글이었다. 버튼을 눌러가며 나에게 자랑했다.

"아빠가 테이프도 같이 사줬는데 8곡밖에 없어. 그런데 달팽이는 없어서 어제 라디오에서 새로 녹음했어."

눈은 워크맨에 꽂아둔 채 입을 나불거리며 이어폰을 내게 건네줬다. 귀에 이어폰을 꽂자 버튼을 눌렀다. 달팽이가 흘러나와야 될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전혀 다른 곡이 흘러나왔다. 내가 달팽이를 듣고 있는 줄 아는지 두 손으로 무릎을 감싸 쥔 채 똘망똘망하게 쳐다봤다.

"닭고기 아줌마~"

"응?"

"성진운데?"

달팽이는 아니었지만 못난이도 나도 박장대소를 하며 닭고기 아줌마를 외쳐댔다. 아마 거실에 계시던 못난이네 엄마는 과일이 상한 줄 알았을 테다.


"저녁 먹어라."

방에서 못난이와 한참을 놀다가 거실로 나갔다. 지난번처럼 진수성찬이었다. 나는 허겁지겁 숟가락을 들어 밥을 퍼먹었다. 못난이와 못난이네 엄마는 손과 눈과 입이 따로 놀았다. 눈은 TV에, 손은 밥상에, 입은 달팽이가 일등해야 한다며 숟가락이 제 갈길을 헤매고 있었다.

"어쩜, 공부도 잘하는 애들이 노래도 잘해. 저거 다 쟤들이 직접 만든 노래라며?"

못난이가 왜 그렇게 말이 많았는지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못난이네 엄마도 못난이 못지않게 조잘거렸다. 달팽이 웅변학원이라도 다닌 건가 싶었다.


"엄마, 나도 밥 줘."

현관문을 열고 누군가 들어왔다. 이상한 놈, 못난이 동생이다. 학원 다녀오는 길이라는데 날 보자마자 씨익 웃는다.

"어? 형 왔네?"

"응. 안녕 또 보네."

못난이와 못난이네 엄마는 TV와 대화하고 못난이 동생은 나와 대화를 한다. 그런데 나는 누구와 대화를 하고 있는지 몰랐다. 별로 할 말도 없고 대꾸도 없는데 어찌 그리 조잘거리는지, 못난이네 아빠가 없는 게 다행이라 생각했다. 분명 못난이네 아빠도 귀에 딱지 얹을 만큼 말이 많을 것 같았으니 말이다.


밥도 다 먹고 TV도 다 봤다. 못난이 방에서 또 과일을 먹으며 놀고 있는데 못난이 동생이 불쑥 들어왔다.

"뭐해?"

"꺼져."

같이 놀고 싶었던 거 같은데 못난이는 단칼에 내쫓았다.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생각이 통한 거 같아 기분이 좋기까지 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달팽이를 녹음하는 건 못난이와 둘이서 하고 싶었으니까.


"안녕히 계세요. 다음에 또 와도 될까요?"

"그럼 물론이지. 언제든 놀러 오렴."

못난이네 엄마한테 인사를 드리고 밖으로 나섰다. 못난이가 배웅을 나오는데 눈치 없게 이상한 놈이 따라 나온다.

"너 어디가?"

"아니."

"근데 왜 나와?"

"그냥."

그냥 나온 이상한 놈이 쫄래쫄래 자꾸 따라온다. 한 대 콱 쥐어박고 싶은데 그러지도 못하고 답답하다. 이상한 놈이 끼어있으니 못난이랑도 대화가 어색해진다.

"야, 너 가."

어색함이 싫었는지 못난이가 이상한 놈을 쫒아 보내려는데 앙탈을 부리며 버틴다. 여느 남매가 그렇듯 온갖 동물을 소환해 싸워댔다.

"나 여기서부터 뛰어갈게. 집에 가."

처음부터 이상했던 눈치 없는 놈, 나는 둘을 뒤로한 채 집으로 뛰었다. 날씨가 추워서 그랬는지 유독 그날은 집에 오는 길이 너무 길게 느껴졌던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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