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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혁 Jun 03. 2021

그때 그 못난이 4화

가진 게 없었다


필통 사건 이후 못난이와 조금 서먹해졌다. 못난이 얼굴은 이전과 다르게 주인한테 혼난 똥강아지 같았다. 풀 죽은 듯 나를 볼 때면 미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거 같이 하자."

미술 준비물을 가져오지 못한 내가 교실 앞으로 불려 나가 몇 대 맞고 들어오자 못난이는 자신의 준비물을 내밀었다. 말끝을 흘리면서 조심스럽게 말하는 못난이에게 괜히 미안해졌다. 그런데 마음과 말이 다르게 나왔다.

"됐어."


모두가 지점토로 뭔가를 만들었다. 공룡을 만들고 공주를 만들고 자동차를 만들었다. 나는 조용히 지우개 가루를 뭉치며 미술시간이 끝나기만 기다렸다.


"지연이하고 영택이 건 교실 뒤에 올려놔."

과일바구니를 만든 지연이 지점토와 공룡을 만든 영택이 지점토는 선생님이 교실 뒤 사물함 위로 올려두도록 했다. 1 분단부터 차례차례 결과물을 확인하며 선생님이 지나쳐갔다.

"난희는 망가진 필통을 다시 만들었구나?"

못난이는 지점토로 필통을 만들었다. 괘씸했다. 난 또 선생님의 눈치를 봐야 했다. 선생님은 웃으며 못난이 머를 쓰다듬곤 뒷자리 진호의 지점토를 확인했다.


특별활동 시간, 4명씩 짝을 이뤄 학급 신문을 만들게 됐다. 앞줄 두 명과 못난이, 나, 이렇게 4명이 한 조가 됐다. 머리를 맞대고 학급 신문에 무엇을 담을지 고민했다. 사실 나는 별로 관심 없었다. 같은 조에 있던 태훈이도 마찬가지였다. 못난이와 은아가 고민하고 선택, 결정을 했다.

"태훈이 넌 사진이랑 선생님 말씀받아오고 은아는 물감이랑 색종이 준비해줘. 나는 발표하고 그림 그릴게. 승혁이는 크레파스 준비해줘."

못난이는 빠르게 조원들 준비사항까지 챙겼다.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오는 특별활동 시간을 준비했다.


"뭐야? 왜 안 가져왔어?"

"깜빡했어."

돌아온 특별활동 시간, 모두 각자의 준비물을 가져왔다. 나만 빼고 말이다. 깜빡했다는 핑계를 댔지만 사실 아침까지 크레파스를 가방에 넣었다 빼기를 반복했다. 8가지 색깔의 크레파스, 그마저도 파란색과 노란색은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 나머지 크레파스도 짧고 부러진 채였다. 창피함에 그냥 선생님께 혼나는 걸 택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다음 시간에 각 조마다 완성해서 발표할 수 있도록 해. 숙제다."

다행히 혼은 나지 않았다. 조원들끼리 숙제로 학급 신문을 완성하고 다음 시간에 돌아가며 발표하는 거였다.


"우리 집 갈래? 너 아무것도 안 했으니까 나 도와줘."

"알았어."

못난이는 나를 집으로 이끌었다. 못난이는 옆동네에 산다. 외삼촌네 집 근처여서 종종 마주치곤 했었다. 그 동네 친구 집에 놀러 갈 때 보통 1시간에서 2시간을 걷는다. 개천을 따라 걷다가 물에 뛰어들어 가재를 잡고 미꾸라지를 잡으며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못난이와 걸을 때 말없이 걷기만 했다. 못난이가 앞에서 걸을 땐 핑크 드레스를 입은 가방을 쳐다봤고, 내가 앞에서 걸을 땐 실내화 주머니를 돌리며 먼 산만 바라봤다. 그때 시간이 참 빨리 흘렀던 거 같다.


"안녕하세요."

"네가 승혁이구나? 얘기 많이 들었어. 밥은 먹었니?"

동네 아줌마들의 빠짝 말려 올라간 파마와 다르게, 말린 듯 말리지 않은 듯 반쯤 올라간 파마머리로 못난이네 엄마가 나를 반겼다. 부드러운 눈매와 가냘픈 턱선에서 인자함이 느껴졌지만 붉은색 뿔테 안경이 위협적이었다. 다른 학교 교감 선생님은 아닐까 생각했다.


못난이네 엄마가 음식을 하는 동안 우린 학급 신문을 만들었다. 정확히는 못난이가 만들었다. 내가 한 건 못난이가 떠들 때 고개를 끄덕이는 일이었다.

"위쪽엔 색종이를 오려서 붙이고 파란색이랑 빨간색 장미를 그려 넣을 거야."

"응."

"우리 소풍 갔을 때 찍었던 사진이랑 그 밑에 글을 넣어서 재미있게 만들 거고 동그랗게 선생님 사진이랑 훈화 말씀 넣으면 될 거 같아."

혼자서 색종이를 오리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붙이며 쉬지 않고 조잘댔다. 엎드려서 장미꽃을 그릴 때 발은 왜 그렇게 격렬하게 흔들어대는지 의문이었다. 고무줄 놀이를 연습하는 건가 싶었다.


"돈까스 좋아하니? 아줌마가 돈까스 했는데 맛있게 먹었으면 좋겠네."

못난이네 엄마가 돈까스를 한가득 올린 밥상을 들고 오셨다.

"아싸, 나 돈까스 먹고 싶었는데."

못난이는 또 얼굴이 붉그락해졌다. 화가 날 때나 뭘 먹을 때나 흥분하면 얼굴이 붉어지는 거 같다.


"잘 먹겠습니다."

나는 숟가락을 들고 밥을 먼저 퍼먹었다. 계란을 두른 소시지가 너무 먹고 싶어서였다. 허겁지겁 밥과 소시지를 먹고 있는 사이 못난이네 엄마는 떡볶이도 가져오셨다.

"배 많이 고팠구나? 이것도 먹어보렴. 입에 맞을지 모르겠네."

떡볶이를 내려놓으면서 못난이 옆에 자리를 잡곤 나를 빤히 쳐다봤다.

목례를 하곤 곧바로 떡볶이를 찍어 입으로 가져갔다.

"아씨, 매워."

나도 모르게 입에서 거친 말이 튀어나왔다.

"죄송합니다."

"아니야. 아줌마가 너무 맵게 했나 보네. 물 마시면서 먹어."

의외로 웃으며 물을 건네줬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난희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 우리 난희랑 5학년 내내 짝꿍이라며?"

"네."

"난희가 승혁이 참 착하고 좋은 친구라고 얘기 많이 했어. 가끔 울게 만들 때도 있지만 계속 친하게 지내고 싶다고."

"...."

"난희랑 계속 친구 해줄 수 있지?"

"네."

내가 당황한 모습이었는지 못난이네 엄마는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옆에서 못난이도 울그락불그락한 얼굴로 웃었다.


"돈까스 안 좋아하니?"

돈까스에 손대지 않는 나를 보며 못난이네 엄마가 물었다.

"배가 불러서요."

배가 부르진 않았다. 돈까스를 먹어본 적이 없어서 먹고 싶었지만 참았다. 못난이가 먹는 걸 보며 따라 하려 했지만 자신이 없었다. 칼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어떻게 잘라야 할지 겁났다. 결국 돈까스는 한 입도 먹지 못했다.


"그럼, 학급 신문마저 만들고 놀다가 천천히 가렴."

상을 치우고 과일을 내준 후 못난이네 엄마는 거실에서 TV를 봤다. 못난이와 나는 과일을 먹으며 꽤 많은 얘기를 나눴다. 주로 못난이나 엄마 흉보는 얘기였다.


창밖으로 어둑해질 무렵 못난이네 집에서 나와 집으로 행했다. 외삼촌네 다녀올 땐 몰랐는데 개천 길이 꽤 길었다. 실내화 가방을 돌리며 풀벌레를 쫒았고 붉은 가로등 밑을 지날 때면 전력질주로 뛰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집에 돌아오는 길은 오래 걸린 거 같다.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뛰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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