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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혁 Jun 02. 2021

그때 그 못난이 3화

뭉개지고 망가진 필통

그 아이와 나는 많이 달랐다. 사람들이 바라보는 시선도, 기대하는 마음도, 살아가는 환경도 너무 달랐다. 현모양처가 될 아이, 착하고 공부 잘해서 나중에 크게 될 아이, 모나지 않은 성격으로 친구들과 조화롭게 관계를 유지하는 아이, 남을 빛나게 해 줄 아이, 그게 못난이를 바라보는 시선과 기대였다. 선생님은 물론이고 반 친구들도 대부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그 아이와 다르게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차가웠다. 사고뭉치, 장난꾸러기, 말썽꾸러기, 부모 없는 아이, 가난한 아이, 그게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온정보다 동정의 눈빛을 먼저 익히고, 온정의 손길 속에 숨은 연민을 두려워하는 아이였다. 눈칫밥을 먹으며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더 괴팍하고 천방지축으로 날뛰었다. 사방으로 삐져나온 스포츠머리에 늘어난 양말과 샌들, 심술 난 똥개마냥 치켜 올라간 눈매는 연민과 동정을 더 크게 만들었다.


서로 다른 우리가 연속으로 짝꿍이 되면서 선생님들은 말했다.

"난희야, 승혁이 잘 보살펴 줘."

"난희 덕분에 승혁이 철들었네. "

기분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관심을 받는다는 것, 좋은 소리를 듣는다는 것이 쑥스러웠다. 그러면서도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연민과 동정을 느꼈다. 알 수없던 그때 감정들은 못난이를 괴롭히는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언제나 틱틱거리고 쉽게 대답하는 법이 없었지만 못난이와 친해져 가는 게 나쁘지 않았다. 서로 티격태격해도 못난이는 꽤나 나를 잘 챙겨줬다. 고마웠다. 하지만 그런 마음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몰랐다. 처음 겪어보는 일은 항상 당황스러운 법이다.


고작 할 수 있는 건 선물을 주는 거였다. 못난이의 생일날, 필통을 건네줬다. 종이로 만들어져 2단 분리되는 필통이다. 예쁜 그림과 연예인 사진으로 치장돼 문방구에서 유행하는 필통이었다.

"야, 생일 축하해."

퉁명스럽게 말하며 필통을 툭 던졌다. 어린아이여서 그런지 감정을 쉽게 숨기지 못했다. 미소를 한껏 머금은 채 못난이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뭐야? 나 주는 거야?"

"싫음 말고"

괜히 심술을 부리며 책상 위에 던져놓은 필통을 내쪽으로 끌어왔다.

"줬다 뺐는 게 어딨어?"

"내 마음이지!!"

필통을 양쪽에서 붙잡고 티격태격하다가 그만 필통을 놓쳐 바닥으로 떨어졌다. 필통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모서리 부분이 뭉개지고 떨어져 나갔다.

"아, 어떡해? 망가졌잖아!"

"그러니까 왜 힘을 줘! 그냥 써. 쓰는데 문제없네."

울그락불그락하던 못난이 얼굴은 어느새 잔잔해졌다. 폭풍 속의 고요 같은 잔잔함, 이 다음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작은 파도가 일렁이며 이내 태풍이 몰아친다. 글썽이다가 펑펑 울며 팔을 포개고 책상에 또 엎드린다. 나는 또다시 연합군에게 둘러싸여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술만 씰룩거렸다. 아마 그때 내 귀는 시뻘겋게 달아올라있었을 테다.


"무슨 일이야?"

교실로 들어선 선생님이 우리 쪽을 보곤 다가와 물었다.

"승혁이랑 난희랑 싸우다 필통이 떨어져서 망가졌어요."

'짝!'

나는 그대로 교실 벽으로 나가떨어졌다. 왼쪽 뺨은 시큰거렸고 교실 벽에 부딪친 머리가 얼얼했다. 눈물이 나올 법도 한데 눈물 나오지 않았다. 익숙해진 탓일지도 모른다. 그저 고개를 떨군 채 입 다물고 있는 것이 상황을 더 나쁘지 않게 만든다는 걸 알고 있다.

"괜찮니?"

선생님은 못난이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상태를 살폈다. 못난이는 눈물과 콧물로 범벅된 얼굴에 놀람과 당황까지 더해져 있었다. 고개만 끄덕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나가 있어!"

그 말을 끝으로 나는 그날 학교가 끝날 때까지 복도에 앉아있었다. 수업시간에도, 쉬는 시간에도 계속 앉아있었다.


학교 수업이 모두 끝나고 반 아이들이 하나, 둘씩 신발장에서 실내화를 집어넣고 집으로 갔다. 괜찮냐고 물어보면서도 선생님 눈치를 보며 후다닥 도망치듯 반 아이들은 떠나갔고 나는 한참을 더 앉아있었다.

"미안해."

시간이 얼마 흘렀는지는 모른다. 마지막으로 교실에서 나온 아이는 못난이였다. 아마 오늘 일 때문에 선생님과 상담했기에 늦었을 테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승혁아 , 다음부턴 그러지 마. 경고다."

"네."

모두가 떠나고 선생님에게 불려 가 한소리 듣고 집으로 갈 수 있었다. 이미 운동장에 친구들은 아무도 없고 동네 어른들이 산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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