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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혁 Jun 01. 2021

그때 그 못난이 2화

책상과 마음의 경계선

좁은 동네, 작은 학교에서 운명은 대수롭지 않다. 얼굴 붉히며 싸웠던 못난이가 5학년에 들어서며 같은 반이 됐다. 그것도 하필 짝꿍이 됐다. 당연히 우린 서로 말도 붙이지 않았다. 그 시절 여느 5학년에 그랬듯 책상에 줄을 긋고 철저하게 경계심을 곤두세웠다.


"이 지우개 내 거."

"다 안 넘어갔어. 가져와!"

"그럼, 넘어온 만큼만 내 거."

꼬불꼬불하게 그려진 책상 줄에 지우개가 넘어오고 실랑이 벌어졌다. 못난이가 성질을 내지만 숨쉴틈도 주지 않고 칼로 지우개를 잘라 필통에 넣었다. 못난이는 분한 건지, 마음이 아픈 건지 흔들리는 눈동자로 노려본다. 이내 두 팔을 포개고 엎드린다.


'우는 건가?'

여자애들이 그런 모습을 보일 땐 대부분 눈물을 훔친다.
"울어?"

"안 울어!"

목소리가 떨린다. 안 운다고 하는데 분명 울고 있는 거 같다. 달래줄 생각은 하지 못했다. 오히려 더 성질을 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네가 줄 넘어온 거잖아!"

못난이는 대꾸도 하지 않고 어깨만 들썩거린다. 손뼉도 마주쳐야 제 맛이라고 나도 입을 닫는다. 공허한 교실 소음만 흐른다.


"왜 울어?"

"뭐야? 우는 거야?"

여자애가 울면 다른 여자애들은 연못에 금붕어들처럼 모여든다. 어깨를 토닥이며 울지 말라고 위로하는 아이, 같이 울면서 껴안는 아이, 주변을 물리치는 아이, 나한테 레이저를 발사하는 아이까지 모두 모였다. 책상을 둘러싸고 여자아이들이 연합군을 형성하면 나는 더욱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예나 지금이나 여자들이 연합하면 남자들은 개인전도 단체전도 승산이 별로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코너에 몰려 따발총 같은 여자애들 하이톤 목소리를 듣다가 한마디 하는 것뿐이다.

"미안해. 지우개 다시 줄게."


여전히 책상엔 줄이 그어져 있고 서로 줄을 넘어오면 잔소리한다. 하지만 물건을 잘라버리거나 뺏어가는 일은 없다. 이미 마음의 경계선이 허물어져 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오히려 지우개를 빌려달라거나 책을 같이 보자고 하면서 가까워졌다. 뭐 투닥거리며 책을 내주고 츤데레처럼 지우개를 던져주는 딱 5학년의 모습으로.


경계선이 허물어져 가고 있었지만 경계를 늦출 순 없는 일.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말하지 않아도 서로 필요한 것을 내주는 짝꿍이 됐단 것이다. 필기 중 잘못 쓴 것이 있으면 스윽 지우개를 건네고, 교과서가 없으면 자연스럽게 책을 가운데로 옮겨 함께 보도록 했다. 그러면서도 수업 종이 울리면 잽싸게 일어나 나는 교실 뒤로, 못난이는 여자 반장 자리로 향했다. 각자의 무리에 속해 그제서야 마음껏 웃었다.


한번 짝꿍이 되면 적게는 두 달, 길게는 네 달 정도 함께 책상을 쓴다. 그렇게 두 달을 지나던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짝꿍을 바꿨다. 제비뽑기를 통해 자리를 배치했다. 남자아이들이 먼저 번호를 뽑아 자리에 앉았고 그 이후에 여자아이들이 번호를 뽑아 짝꿍을 이뤘다. 여기저기에서 짜증 섞인 탄성이 들려왔다. 그 나이에 아이들은 좋아도 싫은 척 싫으면 정말 싫은 척할 때니까.


"아이, 씨!"

원래 얼굴에 붉은 반점이 있었나 싶은 모습으로 못난이는 내 옆에 앉았다. 뽑아도 하필 같은 번호를 뽑아버렸다. 우린 서로 말없이 책상에 앉아있었다. 이번엔 못난이도, 나도 책상에 줄을 그으려고 하지 않았다.


"지난번이랑 짝꿍 같은 애들은 선생님이 바꿔줄게."

선생님의 말에 못난이를 덤덤하게 넘기면 대답했다.

"괜찮아요. 그냥 앉을게요."

나 역시 별 말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어쩌면 그때 나는 경계선이 완전히 허물어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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