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상혁 Jun 17. 2021

그때 그 못난이 12화

청소부 밴드

음악실에 놓인 낡은 피아노, 준호는 음악실에 들어서자마자 피아노에 앉는다. 준호가 피아노에 앉아 건반을 두들겨본다. 그럼 우리는 빗자루와 대걸레를 손에 쥐고 청소 준비를 한다.


"김건모!!"

"오케이!"

우리가 듣고 싶은 노래를 얘기하면 준호는 곧바로 머리에서 악보를 꺼내 노동요로 음악실을 가득 채운다.


"난 널 믿었던 만큼 내 친구를 믿었기에~"

먼지를 풀풀 날리며 음악실 구석구석을 누빈다. 한쪽에선 대걸레스탠딩 마이크 삼아 올라가지도 않은 고음을 뽑아낸다. 그 옆에선 빗자루를 기타 삼아 머리를 앞뒤로 휘두르며 자아도취에 빠진다. 우리들의 음악실 청소는 매번 그런 모습으로 진행됐다.


"아, 왁스 발랐는데 물걸레질하면 어떡해?"

"더 닦으면 돼. 괜찮아."

청소가 끝나갈 무렵 물걸레질하는 병찬이에게 수경이가 쏘아붙였다. 병찬이는 시크하게 고개를 까닥이며 물걸레질을 이어나갔다.

"준호야. 다른 거 신나는 걸로 틀어줘."

"신나는 거 어떤 거?"

"네가 하고 싶은 거."

병찬이는 바닥에 미끄러지듯 발길질하며 음악을 갈구했다. 우리가 원하는 모든 대중가요는 준호의 머릿속에 있다. 준호는 곧바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며 음악실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정말 나를 사랑했다고~"

"나 없이는 못 살겠다고~"

음악실은 금세 노래방으로 변하며 노래를 주고받는다. 남자아이들과 여자 아이들의 목청 대결도 꽤 볼만하다. 다들 얼굴이 터질 듯 열을 올리며 소리를 질러댄다. 음악 시험 볼 땐 금붕어마냥 입만 뻥긋거리던 것들이 참 잘 논다. 한국사람은 멍석 깔아주면 못 논다는 말이 맞는 거 같다.


"넌 노래도 왜 이렇게 못 부르냐?"

"너는? 우리 동네 똥개도 너보단 잘 부르겠다. 멍멍!!"

못난이에게 심술을 부려보지만 본전도 못 찾았다.

"아니 이건 꿈일 거야. 믿을 수없어~"

말로 이길 수 없어 엉덩이로 못난이를 밀치며 쓰레받기를 부여잡고 센터로 나가 목소리를 높였다.

"야!"

내 엉덩이에 밀쳐저 두세 걸음 밀려난 못난이가 또다시 불거진 얼굴로 소리를 꽤 지른다. 그리고선 쓰레받기를 뺏어 들어 노래를 가로챈다.

"다른 여자 생긴 거라면~ 혼자 있고 싶어서라면~"

못난이 주위로 단숨에 여자아이들이 치고 들어와 걸그룹마냥 군무를 춰댄다. 누가 보면 칠판에 카메라가 10대쯤 있는 줄 알 테다.


"저건 엉텅스지."

"그렇지. 저런 영턱스라고 할 수없지. 방실이와 아이들이 더 어울리지."

음악실 한쪽에서 책상에 걸터앉은 남자아이들이 혀를 차며 고개를 휘저었다. 병찬이는 이상한 개다리춤을 추며 계속 꺽꺽댄다.

"야, 그건 추임새가 아니라 트림 아니야?"

못난이는 병찬이를 째려보며 핀잔을 준다.


"저 정돈해줘야지 강렬하지."

내가 먼저 나서서 병찬이 편을 들었다. 병찬이는 여전히 남생이 목 구녕에 이물질이 걸린 것처럼 고개를 까딱이며 꺽꺽댔다.  


"우리 이별하는 이유가~"

"끝나버린 사랑이라면~"

남녀 대통합이 이뤄지는 순간이다. 남자아이들이고 여자아이들이고 죄다 빗자루와 대걸레는 내팽개치고 몸을 흐느적거린다. 빗자루 대신 바지춤으로 바닥을 쓸어내고 대걸레 대신 엉덩이로 물기를 닦아낸다. 맨 앞에서 못난이가 양팔을 신나게 허우적거렸다. 나는 그 뒤에서 못난이를 바라보며 엇박자를 탄다. 못난이가 들썩일 때마다 내 팔에 닿는 머리카락이 온몸을 간질인다.


"와, 땀나."

"야, 아직 랩 남았어."

"패스!"

혼자 신난 병찬이의 기분은 가볍게 무시됐다. 랩 파트가 나오자 빗자루와 대걸레를 손에 들고 청소를 다시 시작했다. 머쓱한 병찬이도 대걸레를 집어 들고 청소 마무리를 준비했다.


"준호야. 이제 끝내고 가야 되니까 발라드로 부~탁해요."

지언이가 어쭙잖은 성대모사를 하며 손키스를 날렸다. 준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피아노 건반을 두드렸다. 준호의 손가락을 타고 넘어온 음이 먼지를 가라앉혔다. 분명 다른 악기도, 노래 가사도 없이 피아노 소리만 들리는데 음악실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어쩌면 나는 그때 뱅크를 좋아하게 된 걸 지도 모른다. 준호의 피아노 소리에 따라 머릿속에서 '가질 수 없는 너' 가사가 흘러갔다. 아주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말이다.


빗자루와 대걸레는 청소함에 들었다. 우리들은 모두 가방을 둘러매고 실내화 주머니를 한 손에 들고 서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음악실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준호의 피아노가 끝날 때까지 우린 계속 한자리에 서있었다.


"지금은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음에 또 만나요~"

준호의 피아노가 끝나자 병찬이가 또 이상한 개다리춤을 추면서 문밖으로 기어나갔다. 준호의 가방을 챙겨주고 우리도 음악실 문을 닫고 집으로 향한다.


"우리 집 갈래?"

"그래."

못난이는 음악실을 나서며 자기네 집으로 놀라가자고 말했다. 내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자 못난이는 씽긋 웃는 얼굴로 앞장섰다. 그리곤 실내화 가방을 한쪽으로 고쳐들며 내 손을 잡았다. 나는 말없이 못난이가 이끄는 대로 걸었다. 마음속에서 나는 이미 구령대에 서 있었다.

'얘가 내 손 잡았어!!!, 못난이가 내 손 잡았다고!!!'




 


매거진의 이전글 그때 그 못난이 11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