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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혁 Jun 16. 2021

그때 그 못난이 11화

친구가 생일이 되면 친구네 집에서 생일 파티를 한다. 친구네 엄마가 치킨이나 피자, 잡채 등을 만들어주면 맛있게 먹으며 선물을 주고받는다. 생일 파티가 끝나고 나면 용돈을 모아 방방이를 타러 가거나 롤러스케이트, 얼음 스케이트를 타러 간다. 그게 공식이었다. 


생일을 맞이하는 친구는 자기랑 친한 친구들에게 초대장을 돌리며 많은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모은다. 수경이의 생일날 나 역시 초대장을 받았다. 저금통을 뒤져보니 만 오천 원 정도 동전이 모였다. 곧장 서점으로 달려가 오천 원짜리 책을 골랐다.


"너 선물 뭐 준비했어?"

"곰돌이 인형, 수경이 곰 좋아하니까 이거 주면 되겠지."

"나는 미니 게임기, 테트리스 두 가지 버전 있어."

"나는 다이어리. 투명 젤리 커버야."

생일날이 되자 초대장을 받은 아이들이 모여 각자 준비한 선물을 꺼내며 자랑했다. 

"승혁이 넌?"

"난 생일 파티 안가."

"왜? 초대장 못 받았어?"

"아니, 그냥 안가."

나는 가방에서 준비한 선물을 꺼내지 못했다. 다른 아이들이 준비한 선물에 비해 너무 초라한 선물, 감히 꺼낼 수 없었다. 


집에 돌아와 TV를 틀었다. 재미도 없는 야구를 또 틀어줬다. 채널을 돌려도 야구만 주구장창 나온다. TV를 보고 있던 눈이 어느새 스르륵 감겨 잠이 들었다. 

"승혁아. 승혁아!"

누군가 문을 두드리며 부르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밖을 나가보니 반 아이들이 몰려왔다. 수경이 생일 파티에 온 아이들이다. 

"뭐야?"

"뭐 하고 있어. 나와."

수경이네 집이 있는 윗동네에서 생일 파티를 하다 반 아이들이 내려와 날 찾으러 온 거다. 까치집이 된 머리를 대충 헝클이며 밖으로 나왔다. 반 아이들을 따라 수경이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밖에서 놀자."

"안에 잠깐 들어갔다오자. 피자 있어."

찜찜한 기분에 수경이네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나를 반 아이들은 끌고 가려 했다. 하지만 나는 선물도 없는데 무슨 생일파티냐며 완강히 거부했다. 수경이네 집에선 여자 아이들이 빨리 들어오라고 재촉했다. 

"됐어. 고무줄이나 해!"


"승혁아, 나도 선물 안 가져왔어. 뭐 어때 그냥 들어가자."

"됐어."

몇 번의 실랑이 끝에 나는 남자아이들과 밖에서 떠들며 공을 찼다. 그때 못난이가 기어 나와 기어코 소리를 질렀다. 

"야! 선물 없으면 뭐 어때? 이렇게 다들 들어오라고 하는데 좀 들어와라."

저리 가라는 손짓을 하며 돌려보내는데 눈치 없는 진섭이 놈이 잽싸게 못난이에게 달려가 귓속말을 건넸다. 

"얘들아. 승혁이가 자기 세 번만 더 부르면 마지못해 들어온단다."
진섭이게 귓속말을 들은 못난이는 여자 아이들이 있는 방안에 들리도록 크게 소리쳤다. 그러자 여자 아이들이 동네 시끄럽게 돌고래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이승혁! 이승혁! 이승혁!"


거의 끌려다가싶이 수경이네 집으로 들어갔다. 생일상을 보니 이미 먹을 건 다 먹었다. 

"아이고, 그놈의 새끼 고집도 세네."

수경이네 엄마가 부엌에서 피자와 잡채를 새로 가져다주시며 한마디 하셨다. 상에 음식을 내려놓으면서 가볍게 머리도 쥐어박았다. 


"빨리 먹어."

못난이가 내 앞으로 숟가락을 내밀며 재촉했다. 

"넌 잡채를 숟가락으로 먹냐? 피자를 숟가락으로 퍼먹어?"

못난이는 얼굴을 찡그리곤 숟가락을 들어 내 머리통을 갈긴 후 젓가락을 다시 건네줬다. 


"승혁아, 와줘서 고마워."

"선물이 없어서 미안해."

"아니야. 선물 없어도 돼. 와준 것만으로 고마워."

속이 다 비치는 요상한 레이스 드레스를 입은 수경이는 연신 고맙다며 생긋생긋 웃어댔다. 그럴수록 내 마음은 더 미안해졌다. 

"이거 다 먹고 우리 스케이트장 갈 건데 같이 갈 거지?"

"그래, 같이 가자. 그런데 어디로 갈려고?"

"영호가 그러는데 성남에 스케이트장 새로 생겼대. 가격도 거기가 더 싸다고 해서 거기로 가려고."


성남에 새로 생겼다는 스케이트장은 우리가 생각한 것과 많이 달랐다. 넓은 공원에 임시로 펜스를 둘러 만든 스케이트장, 심지어 잠실에서 타던 스케이트도 아니었다. 잠실에서 타던 스케이트는 피겨 선수들이 신는 것처럼 발목을 잡아줘 누구나 쉽게 탈 수 있었는데 성남 스케이트는 스피드 스케이트 선수들이 타는 것처럼 생겨 발목을 잡아주지 못했다. 당연히 우리는 제대로 서있기도 힘들었다. 


"최영호, 이게 뭐야?"

"나도 이런 줄 몰랐어. 친척형한테 새로 생겼다고만 들었지."

"그래도 수경이 생일인데 즐겁게 타자. 타다 보면 익숙해지겠지."

몇몇 아이들이 영호를 타박하더니 이내 의지를 불태우며 스케이트에 적응해나갔다. 평소보다 많이 구르고 넘어지고 다쳤다. 


"나 좀 잡아줘."

"야야야, 나 잡지 마. 나도 못 타."

못난이가 엉덩이를 쭉 뺀 자세로 엉거주춤하게 내쪽으로 흘러왔다. 나도 엉거주춤한 자세로 못난이의 손을 뿌리치며 다리를 움직였다. 결과는 둘 다 내동댕이. 


"야, 좀 잡아주면 안 되냐?"

"나도 못 타는데 뭘 잡아줘."

"쟤네 봐봐. 쟤네는 잘 타잖아. 넌 남자애가 왜 못타."

다른 남자애들은 적응이 다됐는지 어느 정도 앞으로 나아갔다. 여자아이들도 하나, 둘씩 적응해 나가며 스케이트장을 휙휙 돌았다. 


"야, 어떻게 좀 해봐."

"나도 안된다니까!"

남아 있는 건 못난이와 나, 우리 둘만 마이너리그에서 허우적거렸다. 못난이가 내 앞으로 가면 내가 허우적거리다 못난이를 잡고 넘어졌다. 내가 앞에서 가고 있으면 못난이가 나를 붙잡고 넘어졌다. 


"내가 도와줄까?"

허우적거리고 있는 나에게 수경이가 손을 내밀었다. 수경이 손을 잡고 가까스로 몸을 세웠다. 

"발바닥에 힘을 주고 움직여봐. 그럼 잘 안 넘어져."

"땡큐, 손 놓지 마."

그래 봐야 얼마 못가 다시 얼음 바닥과 싸움이 붙었다. 

"발을 들지 말고 두발 다 붙인 다음에 스윽하고 밀어야 돼."

"그게 잘 안돼. 내가 혼자 해볼게. 너 먼저 가."

수경이는 친절하게 알려줬지만 내 몸은 쉽게 따라가질 못했다. 생일인데 괜히 나 때문에 제대로 놀지도 못하는 것 같아. 틱틱거리며 수경이를 먼저 보내고 혼자만의 싸움을 이어갔다. 


"못해먹겠다."

혼자만의 싸움에서 패배한 내 옆으로 못난이가 다가와 앉았다. 못난이도 패배했다. 

"다행이다."

"뭐가?"

"나만 등신인 건 아니라서."


의자에 나란히 앉아 다른 아이들이 스케이트 타는 걸 부러워하며 몸뚱아리 신세한탄을 나눴다. 

"아까 수경이네 집에 일찍 좀 들어오지 그랬어?"

"선물도 없이 어떻게 그래."

"뭐 어때? 그리고 책 샀었잖아."

"알고 있었어?"

"너 빼고 다 알고 있었어."

민망함과 창피함이 교차하며 입을 다물었다. 부끄러웠다. 목욕탕에 처음 갔던 날 만큼이나 창피했다. 하필이면 우리가 앉은 벤치 뒤에 가로등은 왜 이렇게 꼿꼿한지... 붉은색 가로등이 아니었다면 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걸 들켰을 테다. 


"수경이가 너 좋아해."

"나를? 왜?"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냥 좋은 거겠지."

적막함이 어색했는지 못난이는 수경이의 비밀을 내게 발설했다. 좋아하는 사람을 누군가에게 공유하는 것, 그건 여자 아이들의 우정 확인 같은 거였다. 그들만의 비밀이었고 그들만의 수줍은 고백이었다. 그 비밀이 조금 전 내게 들어온 거다. 

"내가 말했다고 하지 마. 들키지도 마. 절대 비밀이야."

"알겠어. 말 안 할게."

"아니야, 내가 미쳤었나 봐. 니 놈의 새끼가 주둥이를 가만히 둘리가 없는데 괜히 말했어."

"걱정 마. 말 안 할게. 나 입 무거워."

못난이는 개똥이라도 주워 먹은 표정으로 쳐다봤다. 

"네가? 내일이면 전교생이 다 알 거 같은데? 안 되겠어. 너도 하나 꺼내."

못난이는 내게도 비밀 누설을 강요했다. 

"병찬이가 미소 좋아해."

못난이의 오른손이 내 뒤통수를 갈겼다. 

"장난하냐? 전교생이 다 아는 게 비밀이야? 응? 그게 비밀이야? 제대로 말해."

꽤나 얼얼하게 얻어맞은 뒤통수를 어루만지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너 좋아해."

"누가?"

"내가."

"응? 누구라고?"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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