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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혁 Jun 15. 2021

그때 그 못난이 10화

마니또

처음이란 건 상당히 무섭다. 경험도 센스도 누적되지 않았기에 무모하다. 우리네 첫사랑처럼 열정만으로 밀어붙이다 보면 어느새 본인이 무너지고 만다. 우리 담임 선생님이 그랬다. 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정식 선생님이 된 사람, 동시에 처음으로 초딩 6학년들의 담임이 된 사람이다. 열정이 가득했다. 


다른 선생님들과 달랐다. 수업 시간에 그림 카드를 만들어오고, 책상을 독특하게 배치하고, 게임을 만들어 반  분위기를 이끌려 했다. 


"자, 오늘은 한 달짜리 게임을 할 거야. 아는 사람도 있고 모르는 사람도 있을 거야. 우리가 할 게임은 마니또야."

당연히 몰랐다. 게임 방식도 몰랐고 의미도 몰랐다. 반 아이들 대부분이 그랬다. 정확히는 대부분 게임의 의미를 몰랐다. 그저 교회에서 선물 주고 형, 누나들이 잘해줬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자, 그럼 남자애들부터 나와서 이름표를 뽑아가. 절대 이름표를 보여주거나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안 돼. 들키면 한 달 동안 화장실 청소야."

반 친구들의 친목도모 및 우정 향상, 뭐 그런 걸 기대하고 게임을 운영했을 테다. 하지만 어쩌나? 이 조그만 학교에서 그런 건 딱히 의미가 없다. 더구나 6학년이다. 이미 끼리끼리 다 뭉쳐 다닐 뿐 아니라 앞집, 옆집, 뒷집까지 숟가락 개수까지 다 알고 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담임 선생님뿐이다. 


"그래서 뭘 해줘야 하는 건데?"

"글쎄, 마니또가 좋아할 만한 걸 다 해주면 되지 않나?"

"넌 뭐해줄라고?"

"하이텍 볼펜이나 주려고."

"너 마니또 지언이구나?"

어떤 선물을 주는지, 누가 어떤 걸 받았는지 금세 탄로 났다. 심지어 다른 반, 다른 학년들도 우리가 마니또 게임을 하고 있단 걸 알았다. 문방구에서 준비물도 아닌데 무언갈 사거나, 좋아하지도 않는 군것질을 사는 걸 보고 소문이 돈다. 


"아, 나는 방방이 타러 가고 싶다!"

"아, 내 마니또는 뭐하나? 나 아무것도 못 받았어."

대놓고 마니또에게 들으라며 교실에서 소리치는 아이들이 서서히 나오기 시작했다. 게임이 변질되기 시작한 것. 어쩔 수없이 선생님은 우리는 교실에 모아놓고 조곤조곤 다시 설명하며 게임을 재시작해야 했다. 


변질된 게임은 이상한 방향으로 흘렀다. 남자와 여자로 패가 갈렸다. 남자아이들 중 한 명이 마니또에게 선물을 받으면 반 남자아이들이 모두 모이며 자랑했다. 여자아이들도 마찬가지로 소리를 지르며 자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전혀 의미도 없고 내용도 없는 변질성이었다. 


"뭐야? 풍선껌이네. 이야, 누구는 초콜릿 상자에 장난감 총인데 넌 껌이네?"

등교 후 책상 서랍에 놓여있던 껌 하나, 마니또가 준 선물이다. 조용히 다시 서랍으로 집어넣으려는 찰나, 병찬이가 눈치채고 달려왔다. 


초라한 선물, 나도 마니또도 초라할 거 같아 숨기려 했는데 반 전체가 알아버렸다. 이미 다른 놈들은 마니또를 추적하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알아내지 못했다. 남자와 여자로 패가 갈리면서 서로 철저하게 비밀을 지키고 있던 탓이다. 그리고 들킬 거 같은 상황이 오면 이름표를 교환하며 마니또를 바꿔버렸다. 


한 달이란 시간은 훌쩍 지나가며 어느새 마니또 발표를 하루 남겨줬다. 그때까지 내 마니또가 나에게 준건 풍선껌이 전부였다. 기대는 사라진 지 오래였고 내 마니또가 누군지 궁금하기만 할 뿐이었다. 


'선물 주지 못해 미안해! 너의 마니또가'

실내화 주머니 안으로 작은 편지 봉투가 들어있었다. 편지 봉투를 뜯으니 꽃바구니 모양의 편지지에 짧게 마니또가 글을 남겨뒀다. 

'승혁아 안녕, 한 달 동안이라도 잘해주려고 노력했는데... 아무튼 미안해 잘 지내보자. 안녕.'

못난이다. 2년이나 옆에서 봐왔던 글씨였기에 바로 알 수 있었다. 괜히 심술이 났다. 사라졌던 기대가 지금 와서 괘씸으로 바뀌었다. 

"내 마니또는 끝날 때까지 아무것도 안 하네! 풍선껌이 다야!"

교실에서 소리 지르며 심술을 부렸다. 다른 녀석들은 그런 나를 보며 장난치고 마니또 잘못 걸렸다며 놀렸다. 나는 못난이가 미안해하도록 쉬는 시간마다 소리를 질러댔다. 

"마지막인데 오늘도 아무것도 없나? 아니겠지. 내 마니또가 뭘 준비했겠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 못난이가 달려와 내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야! 씨, 꼭 그렇게 소리를 질러야 되냐?"

"풍선껌이 뭐냐? 고작 풍선껌..."

말을 더 이어가려는데 그새를 못 참고 못난이의 주먹이 내 머리통을 노크했다. 씩씩거리며 못난이는 실내화 가방을 휘두르며 성큼성큼 걸어갔다. 

"빨리 와!!"
그날 저녁, 나는 또다시 못난이네 엄마가 해주신 돈가스를 먹게 됐다. 그게 내가 받은 마지막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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