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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혁 Jul 26. 2021

멈추지 않은 기차, 남양주 능내역

간이역에서 보통역으로, 보통역에서 다시 간이역으로, 끝내 폐역으로 생을 마감한 기차역이 능내역이다. 인스타나 페이스북 등 SNS에서는 핫한 포토스팟으로 각광받는다. 매번 능내역 옆길을 달려 지나갔지만 한 번도 들러본 적 없었다. 관심이 없던 것도 있지만 그곳에 능내역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 그만큼 외져있다. 내비게이션(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다산로 566-5)이 없다면 쉽게 찾지도 못했을 테다. 


능내역은 1956년부터 2008년까지 운영됐다. 현재는 관광 차원에서 찾아오는 손님들과 자전거 라이더들의 거점으로 활용되고 있다. 응답하라 6070에 나올법한 분위기와 옛스러움이 운치 있다. 영화 세트장 같은 분위기 탓에 많은 이들이 찾는 걸지로 모르겠다. 


허름하게 자리 잡은 나무 의자, 찬 바람에 삐걱삐걱 음산한 소리를 낼 것만 같은 나무 문, 당장 전하지 못한 편지를 담고 싶어지는 우체통, 색 바랜 기와장이 새삼 새롭다. 어릴 적 할머니 댁으로 가던 길에 쉽게 볼 수 있었던 풍경인데 말이다. 이제는 정말 옛 것이 됐다. 


조그만 간이역, 그곳은 꽤나 많은 기억을 담아둔 곳 같다. 통학열차를 기다리며 곁눈질하는 남학생과 여학생의 순간들, 통닭 한 마리 사들고 돌아올 아버지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기나김, 친구들과 모여 숨바꼭질하다 기차 소리에 한마음 한뜻으로 도망치던 찰나, 철길 따라 걸으며 시시껄렁하게 나누었던 대화의 장면들이 스쳐간다. 그들과 아무런 연도, 같은 공간과 같은 시간을 보내지 않았지만 어쩐지 그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역 안은 조촐하다. 이곳에선 오손도손 할 수밖에 없다. 좁디좁은 역사 안, 북적이는 건 거친 숨소리와 아지메들의 신세한탄 정도가 아니었을까? 


이곳을 거쳐간 사람들의 순간들이 꿰어져 있다. 옛날이 그리워 옛 모습을 연출해 찍어놓은 사진들도 종종 눈에 들어온다. 그들은 기차를 멈추게 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 같다. 


매표소는 어두컴컴하게 빛을 바랬고 군데군데 거미줄이 뒤엉켜 제 기능을 상실했단 걸 알린다. 체감적으로 느껴지는 아련함이 느껴진다. 사진 속 웃고 있는 이들 덕분에 슬며시 미소 지으며 근현대사의 시대상을 엿본 것만 같다. 


역 앞으로 버려진 열차가 한대 서있다. 한때는 칙칙폭폭 소리는 내며 중앙선을 달리던 열차였으나 이곳에 버려져 쓸쓸히 세월을 견뎌야 했다. 화실을 운영하던 분이 능내리 주민들과 손을 맞잡고 화려한 카페로 부활시켰다. 코로나 때문인지 문은 굳게 닫혀있다. 


기차 카페 옆은 옛 철길과 자전거 길이 늘어서 있다. 능내역은 4대강 국토종주 거점이라 라이더들이 이곳에서 도장을 찍어간다. 깃발 꽂듯 인증 도장을 찍어가는 것. 전문 라이더가 아니어도 자전거 대여소에서 자전거를 빌려 산책길에 오를 수 있다. 능내역에서 아름다운 사진을 찍고 난 후 자전거를 타고 물의 정원이나 팔당댐을 둘러보는 게 데이트 코스 중 하나다. 


능내역의 명물 중 하나로 '능내'라는 고양이가 있었다. 능내리 주민들은 물론이고 이곳을 지나치는 자전거 라이더들에게도 사랑을 듬뿍 받아왔던 녀석, 지금은 무지개다리를 건너 만날 수 없지만 능내역엔 또 다른 녀석이 사랑을 갈구하고 있다. 


연인이나 가족과 추억 가득한 사진을 남기고 싶을 때, 시원한 강줄기를 따라 자전거 산책이 하고 싶을 때, 남양주 능내역을 찾아보자. 그곳의 기차는 아직 멈추지 않고 달리고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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