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동창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상혁 Feb 08. 2022

동창

1화

반짤린 녹슨 드럼통 위에 삼겹살이 지글지글 구워진다. 이따금씩 돼지 기름이 흘러내려 불길이 치솟았다. 영태는 그릴 위에 놓인 캔맥주를 무심하게 들이부으며 불길을 죽였다. 고기와 맥주는 부족하지 않다. 아이스박스 안에 한보따리 챙겨 나왔다. 

'혼자라는 건 어떤 걸로도 채워지지 않는 법이지.'

영태는 맥주는 목구녕에 쏟아붓듯 맥주는 들이키고 주변을 둘러본다. 그토록 원했던 전원생활을 얻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니스를 바른 원목 테이블과 새파란 잔디, 빨간 지붕에 하얀색 페인트칠한 주택, 멀리 보이는 지평선과 나란히 흘러가는 자동차가 풍경을 채운다. 테이블 옆에 놓인 신문을 집어든다. <천사의 얼굴, 악마의 가정> 사회면 타이틀을 보며 다시 맥주를 들이킨다. 

'A 목사는 식탁에 낮은채 과다출혈로 사망했으며 자녀 B양은 같은 식탕에서 아사한채 발견됐다. B양이 엎드려있던 식탁엔 또렷한 눈물자국이 드리워져 있었다. 배고픔의 슬픔을 참기 힘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영태는 기사를 읽다 인상을 찌푸렸다. 신문을 구겨 드럼통 불길 속에 집어 던졌다. 


"오늘은 뭐할거냐?"

마감 중인 영태의 가게로 뽈록 튀어나온 배를 들이밀 듯 준호가 들어왔다. 

"글쎄, 책이라도 볼까?"

"어울리지도 않는 짓 하고 있네."

"넌 뭐할건데?"

준호는 어깨를 살짝 들썩이며 진열 된 피규어를 집어든다. 한쪽 구석으로 피규어를 내려놓으면서 왼손으로 귓구녕을 후벼팠다. 

"딱히 할건 없지. 그나저나 최지영 기억나? 그저께 최지영 만났다."

준호는 구석에 앉아 바지가 터질 거 같은 다리를 꼬고 앉으며 담배에 불을 붙인다. 영태가 그 옆으로가 입에 문 담배를 빼앗아 피며 물었다. 

"어릴때 그 최지영?"

"어, 우리 초등학교때 최지영"

"큰 지영? 작은 지영?"

영태와 준호가 다니던 초등학교엔 쌍둥이 자매가 있었다. 언니는 최지영, 동생은 최지연으로 생김새와 이름도 비슷해 다들 큰지영 작은 지영으로 불렸다.

"큰지영."

"어디서 만났는데? 아니 어떻게 만났냐?"

"우연히 지나가다 마주쳤어. 아현동 조그만 책방에서 일한다더라."

준호가 입안으로 담배연기를 빵빵하게 모은 후 머리 위로 크게 내뱉는다. 영태도 준호를 따라 담배를 크게 들이키고 내뱉는다. 한동안 둘은 담배 연기만 내뿜었다. 담배 심지가 끝을 보여가자 영태는 주머니에서 한대 더 꺼내 입에 물고 뻐끔거린다. 

"준호야, 우리 춘천 갈래?"

"난 됐어. 지금 생활 만족해."

준호는 바지에 묻은 담배재를 툭툭 털며 일어난다. 문쪽으로 나가며 영태에게 툭 던지 듯 말했다. 

"아현동에 가봐. 최지영은 김영은 소식 알 수도 있잖아. 간다."


김영은, 영태가 어린 시절 마음에 담았던 첫사랑이다. 종종 첫사랑의 악령이 영태를 찾았지만 영태는 한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볼 수 없었다. 첫사랑을 회상하기엔 삶이 무거웠다. 영태는 중학교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전전긍긍하며 아르바이트비로 겨우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 졸업과 함께 서울로 올라와 투잡, 쓰리잡을 병행하며 돈을 모았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피큐어 가게를 열었다. 해외에서 들여오는 피큐어와 자체 제작하는 피큐어가 입소문을 타며 꽤 성공적인 삶을 이뤄냈다. 같이 서울로 올라온 준호는 회사를 다니며 아내도 얻고 딸도 낳아 만족해했다. 영태는 그 모습이 부럽기도 하면서 불안했다. 혼자인 자신은 자유롭지만 공허함을 채울 순 없었고 어린 시절 혼자가 됐던 자신이 투영돼 가족을 꾸리는게 두려웠다. 애써 감정을 밀어내며 지내왔는데  경제적 여유와 시간간 여유가 생긴 탓인지 첫사랑 이름을 다시 듣는 순간 흔들렸다. 


3층까지 건물은 세월을 나타내듯 곳곳에 금이 갔고 원래 누랬던건지 하앴던 건지 알 수없을정도로 색이 바랬다. 걸을때마다 삐걱거리는 바닥에 여기저기서 아이들은 뛰고 보챘다. 

"아이들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하네요."

빼빼말라 사람좋은 미소의 김목사가 보육원장 뒤를 걸으며 말했다. 옆에 있던 그의 아내도 고개를 끄덕이며 행복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네, 다들 남들과 똑같이 동심 그대로의 모습이죠?"

"그러네요. 원장님이 아이들을 참 잘 이끌어주셨나봅니다."

"아이들은 원래 다 착해요. 전 그냥 지켜만 봤을 뿐이죠."

보육원장과 목사 부부가 들어선 방안은 단촐하다. 병원 상담실처럼 조그만 책상과 의자만 놓여있다. 그 옆으로 단발머리의 작은 여자아이가 다소곳하게 자리잡고 두눈을 말똥거린다. 

"안녕, 네가 유나구나."

목사 부인은 허리를 굽혀 유나의 눈높이에 시선을 맞췄다. 눈동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반달모양의 미소를 지은채 말이다. 

"안녕하세요."

유나는 선물이라도 받은 아이처럼 싱긋 웃으며 목사부인에게 인사를 건넸다. 어딘지 모르게 두 사람의 미소를 닮았다. 

"유쾌하고 똑똑한 아입니다. 두분과 잘 지낼 거에요."

보육원장은 유나의 옆으로 이동하며 나란히 섰다. 목사부부는 연신 입가를 올린채 유나를 바라봤다. 그렇게 유나는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 


가파른 경사에 살짝 땀이 흘러내린다. 평소에 운동을 하지 않은 탓인지 금새 지쳤다. 어느덧 해는 뉘엿뉘엿 떨어지고 영태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이런 곳에 서점이 있으면 장사는 되나?'

영태는 궁시렁 거리며 골목길을 돌아나왔다.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준호가 얘기했던 서점을 찾았다. 해는 저물고 가로등은 하나, 둘 빛을 내기 시작했지만 서점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골목길을 이곳저곳을 누비다 계단을 마주했다. 

"아, 이건 또 뭐야? 수행길이냐?"

한 눈에 봐도 200여개는 밟아야되는 계단에 인상을 찡그린다. 터벅터벅 계단을 오르며 담배를 왼손은 담배를 찾아 주머니에서 뒤적인다. 담배 한개피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며 계단을 응시하며 걷는다. 먼 발치에서 박자에 맞지 않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온다. 고개를 드니 노란색 숏컷 머리의 늘씬한 여자가 내려오고 있었다. 영태는 노란머리의 여자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노란 머리의 여자는 영태와 1~2초 정도 눈이 마주쳤고 이내 시선을 회피하며 걸음을 옮긴다. 영태는 뒤돌아 노란머리 여자를 한번 더 쳐다본다. 노란머리의 여자는 발걸음이 빨리하며 골목길로 사라졌다. 

"띠리링"

진동과 함께 벨소리가 울렸다. 준호다. 

"여보세요? 야, 서점 못찾겠다. 어디있다는 거야?"

"언덕 중간 쯤에서 골목 두번인가 지나면 있다니까 왜 못찾아? 됐고, 지금 시간이면 문 닫았겠다. 술이나 마시게 빨리와."

영태는 타들어간 담배꽁초를 계단에 떨구고 발로 비비며 짜증을 내며 돌아섰다. 


이틑날, 영태는 가게를 마치고 곧장 아현동으로 향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숨을 헐떡이며 경사를 올랐고 두어군데 골목길을 헤집고 나서야 조그만 서점을 발견한다. 붉은 벽돌로 세워진 담벼락에 파스텔톤 상점, 에디슨이 처음 발명한 거 같은 샛노란 전구로 꾸며진 입구,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통유리의 서점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동네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꾸몄는데 묘하게 눈길이 가네.'

영태는 숨을 고르듯 크게 한숨을 내쉬곤 입구로 발걸음을 옮긴다. 손잡이를 잡아 당겼으나 문은 굳게 닫혀있고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너무 늦었나?'

입구 너머 가게 안을 들여다보며 기웃거렸지만 안쪽은 모두 불이 꺼진 상태다. 혹시라도 사람은 없는지 이리저리 살펴본다. 보이는 거라곤 나란히 놓여진 머그컵과 음악 CD, 높이를 맞춘 각종 서적뿐이다. 그 흔한 명함조차 보이지 않는다. 문에도, 간판에도 연락처가 없다. 영태는 다시 한숨을 푹 내쉬고 돌아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우라질, 오늘도 꽝이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