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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간비행 Feb 08. 2024

그냥 꼰대처럼 쓰기로 했습니다.

브런치에는 거룩한 글만

    

내 브런치 글을 읽은 지인 몇 명이 꼰대 같은 글만 쓰지 말고 재미있는 글을 써보라고 주문했다. 허긴 “언제 죽는 게 좋을까”라는 글이나 쓰고 있으니 꼰대라 해도 할 말은 없다. 친구의 주문도 있고 해서 꼰대스럽지 않은 신박한 재미있는 글을 한번 써보고 싶었다.


뭐가 재미있을까 생각해 보니 치앙마이에서 오일마사지받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당시의 찌릿한 경험을 쓰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한국에서 세신사로부터 때를 밀은 것과 치앙마이에서 맛사지사에게 오일 마사지받은 것을 비교하면서 “타이 마사지와 한국 때밀이”란 제목으로 글을 썼다.      


재미있게 써야겠다는 생각이 앞선 나머지 홀딱 벗고 때 밀 때와 마사지받을 때의 느낌을 사실적으로 비교했다. 배꼽 아래에서 일어난 일들까지 자세히 쓰고 보니 수위가 높고 야했다. 브런치에 이런 글을 올려도 되나? 망설이다가 주변에 물어보기로 했다.     

먼저 남자친구, 동창들 단톡방에 글을 올리고 의견을 구했다. 모두가 재밌다고 낄낄거린다. 이 글을 올리면 브런치에 조회수 대박 나겠다는 친구도 있었다. 남자들끼리는 재밌지만 여자들이 보면 불편할 것 같으니 브런치에는 올리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하는 친구도 있었다.     


여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했다. 내가 알고 있는 5060 지인 몇 명에게 상황설명을 하면서 내 글을 보냈다. 몇 명은 재미있다고 낄낄거리면서 빨리 브런치에 올리라고 한다. 몇 명은 자기가 성희롱을 당한 듯이 불쾌하다면서 글 조목조목 지적하며 나를 나무랐다. 완전 상반되는 반응을 보니 재미도 있고 궁금해졌다. 어떤 여성이 이런 글을 재미있어하고 어떤 여성들이 불쾌해하는지 좀 더 알아보고 싶어졌다.   

   

동호회와 직장 그리고 이런저런 이유로 알게 된 여성들 25명에게 카톡을 보냈다. 상황을 설명하면서 내 글을 대중이 보는 브런치에 올려도 괜찮겠는지 의견을 구했다. 그중에는 203040 여성도 몇 명 있었다. 직장생활을 함께 했거나 동호회에서 여러 번 봤던 여성들 이어서 각각의 성향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나이와 성향에 따라 나의 수위 높은 글에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했다.      


여성 총 25명 중 10명은 아주 재미있어하면서 브런치에 글을 올리라고 했다. 브런치 독자 중 글을 읽고 불쾌한 사람도 있겠지만 그게 뭐 대수냐 하는 의견이다. 8명은 자기는 재미있게 읽었는데 브런치에는 올리지 말라고 했다. 내 글에 불쾌해할 사람이 있을 것 같다는 우려 때문이다. 나머지 7명은 내 글 자체를 혐오스러워했다. 내 인격이 의심스럽다며 힐난하는 여성도 있었다. 앞으로 나를 보면 홀딱 벗고 누워 마사지받고 있는 모습이 떠오를 것 같다는 여성도 있었다.     


내 예상과는 달리 꽤 보수적인 여성이 의외로 재미있어하고 아주 개방적인 여성이 내 글을 혐오스러워하기도 했다. 야한 글 좋아하는 게 보수, 개방적인 것과 별로 일치하지 않았다. 성격이 부드럽고 여성스러운 여인이 내 글을 재미있어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개성 강한 여성이 내 글을 좋아하기도 했다. 나이도 별 상관이 없었다. 5060 여성들은 나는 괜찮은데 젊은 여성들이 불편해할 것 같다고 했는데 오히려 2030 여성들이 이글이 뭐가 문제냐고 반문하는가 하면 70 다된 여성이 내 글을 극혐 하기도 했다.     

 

모르는 사람이 쓴 글을 읽었다면 성향에 따라 선호가 갈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 글을 읽은 모든 여성이 나를 알고 있어서 나에 대한 선입견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나에 대한 호감도가 높은 여성은 내 글에 호의적이고, 나에 대한 호감도가 낮은 여성은 비판적이었을 것이다. 성격이 부드러운 여성은 남에게 부정적인 표현을 잘 못하기 때문에 내 글이 못마땅하더라도 나는 괜찮은데 다른 사람이 싫어할지 모른다며 부드럽게 얘기한 듯하다.      


의견을 종합한 결과, 남자는 모두 내 글을 재미있어했으며 브런치에는 올리지 말라고 한 친구가 일부 있었다. 여성은 내 글에 대한 선호가 반반이었고 글을 브런치에 올리는 것에는 반대가 많았다. 나에 대한 선입견을 감안하더라도 남녀 종합 70% 정도가 수위 높은 내 글을 브런치에 올리는 것에 반대하지 않았다.   

  

나는 수위 높은 글을 조금 순화시켜서 브런치에 올리기로 했다. 꼰대스럽지 않은 글도 하나 써야 한다는 강박과 제법 시간 들여 쓴 글을 휴지통에 버리기가 아까웠으며 70%가 재미있어하는 글을 30%가 걱정되어 올리지 못한 것은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정치나 종교 관련 글은 50% 이상이 싫어할 텐데도 거리낌 없이 올라오고 다른 분야에서도 남이 싫어할만한 내용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여행 관련 글을 쓰면서 매번 거룩한 얘기만 쓰는 것도 꼰대스러운 일이라서 가끔은 가볍고 싼 티 나는 글도 올리고 싶었다.       


수위를 조금 낮춘 다음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전 마지막으로 아들, 딸에게 글을 보내서 의견을 물었다. 딸이 대답했다. “아빠!! 모양 빠지게 왜 이런 글을 쓰세요?” 아들이 대답했다 “다른 사람들은 재미있어할지 몰라도 저는 아버지의 은밀한 곳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 무척 거북합니다.”     


브런치에 올리려던 글을 바로 접었다. 내 나이 되면 자식말이 가장 무겁다. 그냥 내 나이에 맞게 꼰대처럼 거룩하게 글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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