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2.13. 쿠알라룸푸르 한 달 살기를 마친 후 베트남 냐짱으로 갔다. 냐짱 공항에 내려 시내 가는 버스를 탔는데 내 옆에 앳된 금발의 서양 딸내미가 앉는다. 30분쯤 창가에 펼쳐지는 냐짱의 아름다운 풍광을 보고 있는데 버스가 갑자기 급브레이크이다. 앞차를 추월하다가 운전사끼리 시비가 붙어 승객의 안전은 안중에도 없이 추월을 방해하고 급브레이크 밟고 싸움질이다.
옆자리 딸내미가 불안한 얼굴로 나에게 운전사 크레이지(미친놈) 라면서 말을 붙인다. 함께 운전사 욕을 하다 보니 동지의식이 생겼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느냐를 물으면서 대화가 시작된다. 딸내미는 조지아 수도인 트빌리시에서 왔으며 한 달간 동남아시아 여행 중이라고 한다. 쿠알라룸푸르에서 5일간 있었고 냐짱에 3일 머문 뒤 다낭을 거쳐 캄보디아로 간다고 한다.
나는 금년 10월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에서 한 달 살기를 계획하고 있어서 트빌리시에서 왔다고 하니 왠지 친밀감이 느껴졌다. 딸내미는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탄성을 질렀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화장품과 전자제품은 전부 한국산이라며 한국을 너무 좋아하고 가보고 싶다고 한다.
10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급격히 가까워졌다. 나는 몇 달 후 가게 될 트빌리시에 사는 딸내미를 만나서 친근감이 들었고 딸내미는 동경하는 한국사람이니 친근감을 느낀 것이다. 숙소가 어디냐고 물었더니 지도를 보여주는데 내숙소에서 가까운 호스텔이다. 버스 정류장에 함께 내렸다. 버스에서 내리는데 내 뒤에 앉았던 젊은 한국인 커플이 한국어로 얘기한다. “와 저 아저씨 완전 선수다. 10분도 안 돼서 어린애 꼬셔서 데리고 내린다” 이것들이... 욕을 해주려다가 참고 내렸다.
버스에서 짐을 내려보니 딸내미 짐이 엄청났다. 20Kg이 넘는 커다란 캐리어에 10Kg는 족히 되는 무거운 배낭 그리고 꽤 큰 가방까지 들고 있다. 나라면 불가능한 무게의 짐을 조그마한 딸내미가 들고 다니다니 대단하다. 내 숙소가 버스정류장 옆이어서 내 짐을 프런트에 맡기고 딸내미 캐리어를 끌고 호스텔까지 함께 갔다.
호스텔에 가보니 대학교에서 보는 젊은 풍경이다. 20대 초반의 남녀들이 커다란 배낭을 앞뒤로 매고 줄지어 체크인하고 있다. 싱싱하고 상큼한 기운이 느껴진다. 6명씩 사용하는 불편한 숙소인데도 여자가 많았다. 20대 초반정도 보이는 많은 딸내미들이 혼자 또는 두세 명이 함께 여행 중이다. 한국 여성도 몇 명 보인다. 대학시절 배낭 메고 여행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시절은 외국여행은 꿈도 꿀 수 없어서 배낭매고 국내를 돌아다녔고 지금 젊은이들은 온 세상을 휘젓고 다닌다. 젊은애들이 부럽긴 하지만 지금이라도 해외를 마음대로 다닐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딸내미에게 저녁 함께 먹을 사람 없으면 연락하라고 전화번호를 주고 왔다. 저 많은 젊은 남녀들이 서로 어울려서 놀겠지 나에게 전화하겠나 생각했는데 얼마 후 연락이 왔다. 내숙소 근처에 있는 해변 식당 겸 클럽으로 불렀다. 얼마 후 딸내미 오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옷차림이 서양 클럽에서 노는 젊은 여자애 그대로였다. 엉덩이를 겨우 가린 초미니 원피스를 입었는데 노브라에 가슴이 반쯤 보이는 옷을 입고 왔다. 얘가 꽃뱀인가? 갑자기 의심이 들었다. 늙은 나와 밥 먹자고 나오는 것도 조금 이상한데 왜 이런 옷을 입고 나왔지?? 오늘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술에 약을 탈지 모른다고 생각해서 술잔도 주시했다.
다음날 알게 되었는데 딸내미가 가지고 있는 옷은 모두가 이런 스타일이었다. 아빠 같은 사람과 식사라서 많이 가리는 옷을 입고 나온 게 이 모양이었다. 브래지어는 평소에도 안 하지만 여행 다닐 때는 아예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고 한다.
식사 중 이런저런 얘기 중에 내 나이를 묻는다. 몇 살쯤 돼 보이냐고 했더니 자기 아빠 사진을 보여주면서 아빠와 비슷할 것 같다고 한다. 아빠가 몇 살인데? 물었더니 50이란다. 17년이나 깎아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딸내미 눈에 내가 아빠로 보이던 할아버지로 보이던 남자가 아닌 건 마찬가지이다. 굳이 할아버지라고 얘기할 건 없어서 “나이 보는 눈이 참 정확하다”라고 칭찬해 줬다.
동남아, 유럽인들은 한국인을 기본 열 살, 많게는 스무 살 어리게 본다. 한민족의 유전자가 매우 우수해서 일 것이다. 베트남이나 라오스 여자가 스무 살 이상 많은 한국남자와 결혼하는 것은 한국남자가 어려 보여서 나이차를 실감하지 못해서라고 한다. 조지아 딸내미 역시 나를 17세 어린 50세로 본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넌 몇 살이냐고 물었더니 2000년생 24세란다. 43세 차이니까 내가 좀 서둘렀으면 손녀뻘이다. 딸내미에게 앞으로 나를 아빠 친구로 생각하라고 했다. 식사 중 조지아에 있는 남사친과 영상통화 하더니 나에게 소개해줬다. 난 딸내미의 남사친과 영상통화 하면서 10월 조지아에서 만나 셋이 함께 여행하기로 했다.
냐짱에서의 일정을 물었더니 내가 가려했던 곳에 갈 계획이란다. 나는 해외 한달살이 중 5~10일은 주변 관광을 하고 나머지 대부분은 경치 좋은 카페에서 노트북과 함께 보낸다. 관광은 혼자 할 수도 있지만 가급적 동행이 생길 때 간다. 냐짱에서는 도착하자마자 딸내미와 동행이 되어 함께 관광하기로 했다.
와인을 곁들인 식사를 마치고 해변을 걸었다. 딸내미는 에너지가 넘치고 천방지축이었다. 강아지처럼 해변을 걷다가 뛰다가 조개를 줍다가 느닷없이 옷 입은 채 바다로 들어가 버린다. 나에게도 물속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겨우 말려서 발목정도 물이 차는 곳을 걸었다. 냐짱 해변은 무척 길다. 밤새 걸으려는 딸내미를 말려서 두 시간을 걷고 호스텔로 데려다주었다.
다음날 브런치를 함께 하고 주변관광을 시작했다. 먼저 대표적인 명소인 포나가르 사원으로 갔다. 포나가르 사원은 10세기경 건설된 힌두교 사원이다. 동남아 여느 힌두교 사원처럼 붉은 흙벽돌로 건축했는데 불교국가인 베트남에 특이한 유적으로 남아있다. 인도, 태국, 캄보디아 등에서 워낙 웅장한 종교 유적들을 많이 봐서 그런지 별 감흥은 없었지만 불교국가에 힌두교 사원이 천년 넘게 버티고 있는 것이 흥미롭다.
포나가르 사원을 나와 놀이공원인 빈원더스로 갔다. 놀이공원은 한국의 에버랜드와 캐리비안베이를 합쳐놓은 정도의 매우 큰 규모이다. 베트남 지방도시에 이처럼 큰 규모의 놀이공원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시설은 약간 촌스러웠지만 베트남의 수준에 비해서는 훌륭했다. 3Km가 넘는 긴 로프웨이를 타고 빈원더스에 입장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딸내미는 놀이공원 들어가자 눈이 초롱초롱 해지면서 무서운 것만 찾아서 타려고 했다. 다행히 엄청 무서워 보이는 기구가 수리 중이어서 청룡열차와 회전그네 만 두 번씩 탔다. 30년 전 에버랜드에서 청룡열차 타고 속이 메슥거려 혼났는데 또 이걸 타려니 찝찝하다. 무섭다고 안탈수도 없어서 한번 도전했다. 좋다고 소리소리 지르는 딸내미 옆에서 안전봉만 붙들고 이를 악물고 앉아있었다.
회전그네 역시 그네를 위아래로 흔들면서 빨리 돌려버리기 때문에 어지럽고 속이 메슥거린다. 몇 년 전 이석증으로 하늘이 빙글빙글 돌아서 혼났는데 이런 거 타도 되나 생각이 들었지만 눈 찔끔 감고 앉아 있었다. 내 팔을 잡아끌며 구석구석 찾아 다니는 조지아 딸내미를 따라다니다 보니 30년 전 에버랜드에서 내 딸내미 따라다니던 생각이 떠오른다.
베트남 구정연휴기간 이어서 어린이날 에버랜드처럼 현지인들이 무척 많았다. 온통 사람천지다. 금발의 젊은 서양아가씨가 노출 심한 튀는 복장을 하고 늙은 동양남자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이 이상한지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가 우리를 힐끔힐끔 쳐다본다. 내가 서양인이었으면 부녀 사이 인가보다 했겠지만 내가 동양인이니 얼마나 궁금했을까. 부러운듯 나를 쳐다보는 남자들의 시선과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여자들의 따가운 시선을 종일 느껴야 했다.
느지막히 숙소로 돌아오니 어제 갔던 해변클럽에서 큰 공연을 하고 있다. 구정연휴 마지막 날이라 제법 유명한 가수와 밴드를 초청해서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비싼 입장료까지 받는다. 어제와는 달리 등과 가슴이 파인 파티복장을 입은 여성들도 많다.
해변 백사장에 설치된 무대에는 젊은이들이 음악에 맞추어 몸을 흔들고 있다. 찬찬히 보니 춤실력은 모두 별로이다. 베트남은 춤추는 문화가 없었던지 젊은애들이 음악에 몸을 맞추지 못하고 모두 허수아비처럼 DJ의 동작에 맞춰서 야구장 응원하듯이 손만 흔들고 있다.
자리를 잡고 맥주를 한잔 하자마자 딸내미는 춤을 추러 무대로 나갔다. 딸내미는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 줄 알았다. 춤을 추자 서양인, 현지인 여러 명이 들러붙어 집적댄다. 조금 후 딸내미가 나에게 오더니 남자들이 귀찮게 해서 힘들다며 함께 춤추자고 한다. 애들 노는 곳에 내가 가는 게 뻘쭘했지만 딸내미에 이끌려 무대로 나갔다.
나는 젊은 시절 춤을 꽤 잘 췄다. 70년대 가장 핫했던 디스코텍 명동 마이하우스에서 통금이 끝나는 새벽 4시까지 춤을 추곤 했다. 댄스경연대회에 나가 입상하여 술을 공짜로 마시기도 했다. 3040 때도 노래방 갈 때마다 흔들어서 아재 춤 이긴 하지만 지금도 어느 정도 음악을 탈 줄 안다.
모래밭이라 동작이 좀 힘들긴 했지만 열심히 흔들었다. 딸내미도 화끈한 내 동작을 보자 신이 났는지 아까보다 더 율동이 좋아졌다. 둘이 마주 보고 신나게 음악에 맞춰 흔들었다. 허수아비처럼 끄떡거리던 현지인들이 슬며시 뒤로 물러난다. 한국이라면 노땅 춤이라 보기 역겨울 수 있겠지만 베트남에서는 아직 통하나 보다. 둘이 신나게 춤을 추니 모든 사람들이 우리 둘을 쳐다본다. 저리 방방 뛰는 젊은 서양여자와 늙은 동양남자가 도대체 무슨 조합인지 궁금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어디서 카메라맨이 오더니 우리 둘을 찍는다. 이게 베트남 어디에 나오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하여간 우리 둘을 한참 촬영했다. 과격한 율동으로 다리에 쥐가 나려고 해서 들어왔다.
현지인들의 애매한 시선을 뒤로하고 바닷가를 걷다가 딸내미를 호스텔에 데려다주었다. 호스텔 앞 노상카페에 젊은 여행자들이 많이 앉아 있다. 갑자기 딸내미가 나를 껴안더니 내 볼에 뽀뽀를 한다. 호스텔에 함께 거주하는 자기 또래 젊은애들 앞에서 나에게 이러는 게 무척 당황스럽다. 나를 진짜 아빠처럼 생각하는 건지. 딸이 아빠에게 저녁인사로 볼뽀뽀 하는 거는 이상한 일은 아니다.
호스텔에는 젊은 여행자들이 많은데 그들과 만나 놀고 친구되면 좋은데 왜 나하고 놀고 있냐고 물었다. 딸내미는 여행중 만난 남자 두 명과 사귀었는데 둘 모두 도망가 버렸단다. 그래서 여행중에는 젊은애들과 친구 안 한다고 한다. 자기가 보낸 메시지에 답을 안 하는 왓츠앱(카톡 비슷)을 보여주면서 왜 남자들은 사귀자고 했으면서 답도 안 하냐고 묻는다. 나는 손녀 같은 딸내미가 뭘 해도 이뻐 보이지만 워낙 천방지축이라 또래 남자가 감당하기에는 부담스러울 듯했다. 하지만 딸내미의 사기를 위해서 “저런 나쁜 놈들” 하고 욕을 해줬다. 또래 남자들에게 연달아 상처받고 난 후 차일 걱정 없는 푸근한 아빠 같은 사람이 좋아졌나 보다.
딸내미는 다음날 11시 체크아웃이고 밤 9시 기차로 다낭으로 이동한다. 체크아웃 후 짐은 내 방에 두고 해변에서 수영하기로 했다.
자고 일어나니 어젯밤 모래 위 과격한 율동으로 장딴지가 팍팍하다. 딸내미 체크아웃 후 내 방에 짐을 놓고 해변 비치파라솔에 자리를 잡았다. 딸내미가 비치파라솔에서 옷을 벗더니 비키니로 갈아입는다. 나는 옷 속에 수영복을 입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무 가림막이 없는 파라솔 내 옆에서 허리에 수건을 두르고 비키니를 입는다. 많이 해본 솜씨인지 노출 시간을 최소화하면서 잘 갈아입었다. 주변에 사람들도 제법 있었는데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수영 후에도 마찬가지다. 비치파라솔 아래에서 젖은 수영복을 벗고 옷을 입는다. 옆에 있는 나를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히려 몸에 묻은 모래를 나보고 털어달라고 한다. 나 혼자 민망했다. 수영하다가 쉬다가 모래성을 만들다 한나절을 보내고 숙소로 왔다. 딸내미가 내 방에서 샤워를 하고 나오는데... 가슴 보이는 것은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30여년전 미국파견 근무할 때 아파트 옆집에 덴마크 30대 중반 부부가 살았다. 가까워져서 함께 식사했는데 부인이 미국인들은 참 메너가 없다고 불평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부인이 아파트 수영장에서 가슴을 드러내 놓고 수영을 하고 있었는데 수영장에 있던 남자들이 자기 가슴만 쳐다보고 있어서 불쾌했단다. 덴마크에서는 가슴 드러내놓고 수영하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한다.
당시 플로리다로 여행을 갔다가 비슷한 경험을 했다. 해변에 앉아 있는데 북유럽에서 온듯한 가족이 백사장에서 수영복을 갈아입고 있었다. 아빠와 엄마는 수건을 허리에 두르고 수영복을 갈아입는데 고교생 정도 보이는 딸은 가리지도 않고 사람들 앞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내 앞에서 적나라한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문화 차이가 이리 크다. 조지아도 덴마크처럼 개방적인 듯하다. 해변에서 여러 사람 앞에서 옷을 갈아입어버리고 남에게 가슴을 보이는 것 정도는 대수롭지 않은 듯했다. 그래서 노브라에 가슴 파인 옷을 입고 다니나 보다. 그런 걸 보고 이상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이상한지도 모른다.
나는 몇 년간 세계를 돌아다닐 예정이다. 외국에서 지낼 때는 그 나라의 문화 그리고 내가 만나는 사람의 문화에 내 기준을 맞춰야 한다. 지난주에 있었던 말레이시아는 회교국가라서 여자들이 평상복에 히잡을 쓰고 수영을 했다. 여자들 사진 찍으면 안된다고 해서 신기한 보습을 보기만 했다. 수영을 하다가 물속에 히잡쓴 여자를 만나면 멀리 돌아갔다. 말레이시아의 폐쇄적인 문화에 맞춘것이다. 지금 냐짱에서는 조지아 딸내미의 개방적인 문화에 적응하고 있다.
저녁을 함께 먹고 기차역에 데려다주었다. 캐리어가 무거워서 기차 안에 까지 들어다 주었다. 차 출발 전 딸내미는 나를 껴안고 얼굴을 비볐다. 우리는 인스타그램과 왓츠앱으로 소식을 주고받기로 했고 금년 10월 조지아에서 딸내미 남사친과 함께 셋이 여행하기로 했다.
집에 들어와 맥주 한잔 하면서 벼락처럼 지나간 3일간을 회상했다.
불교인들의 궁극적인 수행의 목적은 깨달음이다. 깨달은 사람 중 부처 보다 한 단계 낮은 수준이 아라한이다. 아라한이 되면 절세미인이 알몸으로 앞을 왔다 갔다 해도 전혀 마음이 흔들리는 않는 경지라고 한다. 내가 드디어 딸내미의 저런 모습에서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아라한의 경지에 도달했구나 생각했다.
지금 한달살이 다섯 번째이다. 그동안의 네 번도 관광동행자가 있었다. 나보다 연상인 6070 여성도 있었고 어린 2030 여성도 있었다. 여행지에서의 만남은 오로지 우연이며 우연한 만남은 나이와 무관하다. 버스 운전사가 난폭운전 하지 않았다면 딸래미와 대화도 없이 서로 갈길을 갔을 것이다. 왜 남자와 동행하지 않고 여성과만 동행하느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나이 든 남자는 기존 친구와는 함께 여행이 가능하지만 여행지에서 만난 이와는 함께 여행하기 어렵다. 내 브런치글 “왜 여행지에는 60대 여성이 많을까”에 설명했다.
딸내미와 3일간의 경험은 나에게 특별했다. 나는 여행 관련 글을 쓰기 때문에 여행 중의 모든 경험은 나의 글감이며 새로운 경험을 할 때마다 글의 소재가 된다. 이번의 젊은이 체험은 쉽게 할 수 없는 귀중한 경험이었다. 67세의 나이에 놀이공원에서 소리소리 지르는 딸내미와 함께 청룡열차를 타고 해변 클럽에서 춤을 추고 함께 바다수영을 하는 등 영화에서나 보던 것들을 해본 것은 참 특이한 경험이었다.
3일간 함께 지내는 동안 밥은 사줬지만 선물하나도 못 챙겨준 게 미안했다. 떠나는 기차역에서 지갑에 있던 베트남돈을 줬더니 안 받는다. 10월 조지아 올 때 한국화장품 선물 받고 싶다고 한다. 캐리어 가득 한국화장품 가져가기로 했다.
냐짱은 관광지가 아니고 휴양지이다. 이곳에서의 한달살이 콘셉트는 휴양이다. 딸내미와 3일간의 관광으로 이제 더 이상 가볼 만한 곳도 없다. 내 루틴을 만들어 즐겁고 보람 있는 한 달을 보내야 한다.
낮에는 경치 좋은 곳에서 노트북과 놀고, 해가 지면 바닷가를 걷거나 수영하고, 배가 출출하면 맛있고 저렴한 베트남 식사를 즐기고, 몸이 찌뿌둥하면 마사지를 받으면서 이번 한달살이 콘셉트인 천국체험을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