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대중교통의 마법
지하철을 공짜로 탈 수 있는 65세 이상을 지공거사라고 한다. 지하철 공짜 혜택은 가난해서 무료혜택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국가에 헌신한 것에 대한 보상차원이다. 지하철이 공짜라는 것은 한번 탈 때 1500원을 절약하는 것 이상의 뭔가가 있다. 지하철 무료카드를 받는 순간 지하철은 유지비가 안 드는 나의 자가용이 된다. 전에는 갈 곳을 정한 후 적절한 교통을 선택했지만 지공거사가 되는 순간 지하철로 갈 수 있는 곳만을 찾게 된다. 지하철을 활용하여 즐길 수 있는 여러 방법을 구상하게 되며 다양한 지하철의 노선만큼이나 행동반경도 늘어난다.
서울지하철은 편리성이 세계최고 수준이다. 촘촘한 철도망으로 인해 지하철만으로도 서울반경 50킬로 주요 지역을 갈 수 있다. 동쪽으로는 북한강을 따라 춘천까지, 남한강을 따라 여주까지 갈 수 있으며 서쪽으로는 영종도, 남쪽으로는 천안 온양까지, 북쪽으로는 연천까지 연결되어 있다. 지하철로 연결되는 지역은 대한민국의 핵심지역이며 경기북부의 명산들과 북한강, 남한강 그리고 온천과 바닷가까지 연결된다. 공짜 지하철을 타고 차창밖으로 수려한 경치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며 좋은 곳에 내려 트래킹을 하게 되면 건강과 힐링을 함께 얻을 수 있다. 공짜 지하철은 지공거사들이 여생을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는데 큰 도움이 된다.
프라하도 65세 이상은 대중교통이 공짜이다. 한국은 내국인에 한해서 지하철만 무료이지만 프라하에서는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도 지하철, 트램, 버스등 대중교통 3종세트 모두가 무료이다. 유럽 어느나라도 65세 이상에게 이처럼 통 큰 공짜혜택을 주지 않는다. 기껏해야 최대 50% 할인 정도이며 그것도 외국인까지 할인해 주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유럽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프라하가 지공거사의 천국이기까지 하다.
지공거사에게 프라하 대중교통은 한국지하철보다 훨씬 편리하다. 여권만 소지하면 아무 대중교통이나 그냥 타고 내리면 된다. 표를 끊거나 단말기에 카드를 댈 필요 없다. 엘리베이터 이용하듯이 문이 열리면 타고 내리고 싶은 데서 내리면 된다. 트램, 버스, 지하철 모두 노약자 자리가 표시되어 있고 대개는 비어있어서 노약자 자리에 그냥 앉으면 된다. 한국지하철은 노인들이 많아서 노약자석 앉기도 쉽지 않은데 프라하 대중교통은 노약자석이 비어있다. 한국은 평균수명이 83세이고 초고령화 사회인데 비해 체코는 평균수명 76세인 젊은 국가여서 일 것이다.
한국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공거사로 프라하 한달살이를 즐기기로 했다. 프라하 대중교통은 거미줄처럼 촘촘히 잘 짜여있다. 3가지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프라하 중심으로부터 반경 30킬로 정도 어디라도 쉽게 오갈 수 있다. 프라하 도착 2주째 까지는 무료 대중교통을 타고 도시 내 유적지와 핫플레이스를 샅샅이 뒤지며 다녔다. 수십 개 노선의 트램과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아름다운 거리와 오가는 사람들을 즐겼으며 특별한 건물이나 경치가 나타나면 잠시 내려 구경하면서 프라하 시내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2주가 지나고 나니 도시구경이 서서히 싫증이 난다. 한 달 내내 질리지 않을 것 같았는데 아무리 아름다운 경치라도 보고 또 보니 별 감흥이 없어진다. 3주째부터는 프라하 도시 외곽으로 행동반경을 넓혔다. 서울 반경 20킬로는 온통 건물로 들어차 있지만 프라하는 도심 10킬로만 벗어나면 한적한 시골풍경으로 변한다. 트램과 버스를 타고 프라하를 관통하는 블타바강 상, 하류로 1시간 정도 나가면 강과 산이 어우러지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나타난다. 강변에는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어서 강원도나 지리산 둘레길 같은 원시의 모습이 나타난다. 프라하 동쪽이나 서쪽으로는 한 시간 정도 나가면 여의도 크기만 한 광대한 공원이나 자연보호구역이 곳곳에 나타난다. 공원은 울창한 숲과 호수등이 어우러져 트래킹코스로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
작년 3월 서귀포에서 한달살이 하면서 거의 매일 올레길을 걸었다. 바닷가를 걷는 제주 올레길은 걷는 자체가 힐링이고 즐거움이다. 운동 겸 매일 코스를 바꿔 가면서 걸었다. 때로는 시외버스를 타고 먼 곳으로 가서 걸은 다음 다시 버스로 귀가하기도 했다. 매일 오전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고 오후에 올레길을 두세 시간 걷는 게 나의 제주 한달살이 일과였다. 매일매일이 신선하고 좋았다.
프라하 한달살이 3주째부터는 프라하 외곽의 멋진 곳을 찾아가서 몇 시간씩 걸었다. 작년 제주도 올레길을 걸었던 것과 비슷한 일과이다. 매일 오전 카페나 집에서 노트북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두시쯤 늦은 점심을 하고 그날의 날씨를 고려해 적절한 걷기 코스를 선정한다. 햇빛이 강한 날은 나무가 울창한 숲길로, 구름 낀 날은 강변으로 코스를 정하여 트램, 버스를 타고 목적지로 향한다. 20~30킬로 교외로 나간 다음 10킬로 정도 걷고 다시 버스, 트램을 타고 귀가한다
세상이 좋아져서 해외에서도 길 찾아다니기가 참 편하다. 구글지도를 검색하면 지도와 스카이뷰 그리고 로드뷰까지 나온다. 위성사진과 로드뷰를 확인하여 경로가 숲 속의 그늘인지, 돌길인지, 포장도로 인지도 알 수 있다. 프라하가 유럽이라서 그런지 구글지도가 매우 세밀하다. 숲 속의 좁은 오솔길까지 모두 표기되어 있어서 울창한 숲 속에서도 구글지도만 보면서 길을 찾을 수 있다. 구글지도에서 가고 싶은 곳을 선정한 후 경로를 클릭하면 도보, 대중교통, 택시로 구분하여 내 현 위치에서 목적지까지 경로와 시간이 나온다. 대중교통을 선정하면 버스, 트램 번호와 시간까지 표시되어 이동하기 매우 편리하다. 서울에서 대중교통 이용할 때 보다 더 쉽게 버스나 트램을 탈 수 있다.
프라하는 걸을 수 있는 코스가 다양하고 풍광이 수려하다. 프라하 둘레길을 만든다면 제주 올레길이나 서울 둘레길에 버금가는 멋진 코스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높은 산은 없지만 일이백 미터의 낮은 야산들과 호수들 그리고 국립공원들이 연결된 다양한 코스가 가능하다. 프라하 도심 10킬로 만 벗어나도 화진포 호숫가를 걷는듯한 한적한 산책길과 설악산 둘레길 같은 울창한 숲속길이 나타난다. 최근 일본 후지산 둘레길 걷는 여행상품이 있다고 하는데 프라하도 이에 못지않은 좋은 둘레길 코스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워낙 유명한 역사유적지라서 홍보를 안 하더라도 관광객이 몰려들지만 프라하 둘레길을 만들어 홍보한다면 더 많은 관광객이 올 수 있을 것이다.
프라하 첫 2주일간 카를교, 프라하성, 천문시계탑을 비롯한 역사유적지와 중세풍 건물로 가득한 구시가지를 돌아다닌 것은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3주째부터 시작한 프라하 교외 풍광 좋은 곳을 걷는 것은 한국과는 다른 모습의 자연을 걷는 것이어서 그 즐거움이 유적지에 못지않았다. 울창한 숲길과 원시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호수, 천변을 걷는 것은 가슴 뛰는 힐링이었고 걷는도중 나타나는 풍경화 같은 농가 주택들은 저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현지인 트래커들과 자전거,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는 젊은이들의 역동적인 모습을 보는 것도 즐거웠다.
한 달간 프라하 시내외를 구석구석 다니면서 즐길 수 있었던 것은 지공거사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대중교통 타기가 까다롭거나 비용이 많이 들었다면 구시가지를 맴돌면서 한 달을 보냈을 것이다. 대중교통이 공짜라는 혜택이 주어지니까 그 혜택을 어떻게 활용할까 연구를 했고, 서울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시내뿐 아니라 교외로 진출하여 아름다운 프라하의 자연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해외 한달살이를 계획하는 한국의 지공거사들에게 지공거사의 천국 프라하 한 달 살기를 추천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