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야간비행 Nov 22. 2024

타이베이 한달살이: 실망스러운 대만 국립 고궁박물관

이게 무슨 세계 4대 박물관 ?

    

60년대 한국과 대만은 가장 가까운 나라였다. 장개석 정부가 우리 항일독립운동을 지원했으며, 냉전시대 반공을 국시로 공산당과 대결하는 동맹관계였으며 당시 대만 총통 장개석과 박정희 대통령 두 독재자의 친분으로 두나라 관계는 몹시 좋았다. 박정희가 영구집권을 위해 대만의 총통제를 연구하다 유신이라는 묘책을 발견했다는 얘기도 있다. 두 국가의 좋은 관계는 우리가 중국과 수교를 맺은 1992년까지 지속되었다. 60, 70년대 학교에서는 장개석과 대만에 우호적인 내용을 가르쳤다. 장개석이 얼마나 영웅적으로 공산당과 싸웠는지, 부정부패를 척결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총통 장기집권 하면서 나라를 얼마나 발전시켰는지 등 칭찬 일색이었다.   

  

그중 지금도 머리에 생생히 박혀있는 것은, 장개석이 모택동에 밀려 대만으로 후퇴하면서 엄청난 보물과 유물을 가지고 갔으며 그 유물들이 국립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는 내용이다. 그 양이 엄청나서 보물들은 옮길 때 기차 수십 량이 동원되고 배 수십 척이 동원되었다는 등 전설적인 내용이 많았다. 박물관에 전시되어 6개월마다 순환 전시하는 보물을 다 보려면 60년이 걸린다고도 했다. 금으로 된 욕조와 세숫대야가 있고 돋보기로 봐야 보이는 그림도 있다는 등 유물들을 보면 입이 떡 벌어진다는 내용이었다. 초등 중등 시절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대만 박물관의 전설적인 얘기는 내 머릿속에 각인되고 상상력이 더해져서 보물섬 같은 동경의 장소가 되었다.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러 60대가 되었지만 어린 시절 머리에 각인된 대만 박물관의 환상은 그대로였다.     


대만 한달살이를 결정하고 맨 처음 떠오르는 생각도 대만 국립박물관이었다. 드디어 수십 년간 동경했던 대만 국립박물관을 구경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마음이 들떴다. 인터넷으로 박물관에 대한 정보를 살폈더니  어린 시절 들었던 내용 그대로이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영국의 대영박물관, 러시아 에르미타쥬 박물관에 이은 세계 4대 박물관이며 유물을 다 보려면 60년, 20년, 12년이 걸린다는 다양한 학설 그리고 유물을 보고 나서 감동했다는 내용 일색이다. 바티칸 박물관,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카이로 박물관 보다도 우위에 있는 세계 4번째라는 대만 국립박물관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경건한 마음으로 박물관으로 향했다. 과거에 가봤던 루브르 박물관, 대영박물관, 에르미타쥬 박물관, 바티칸 박물관, 메트로 폴리탄 박물관, 카이로 박물관 그리고 몇 달 전 가봤던 중국의 시안역사박물관, 란저우 박물관에 갔을 때의 감동을 회상하며 그것들 보다 더 대단한 유물들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가슴이 뛰었다. 하루 만에 다 보기 힘들 것이니 개관하는 시간에 맞춰 가서 폐관할 때까지 충분히 보고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하루 만에 못 보면 이삼일 더 가더라도 수십 년 동경했던 보물들을 찬찬히 모두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대만 국립고궁박물관 : 3개 층에 전시하고 있으니 전시공간이 협소함

박물관은 타이베이 시 외곽 한적한 산속에 위치하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박물관을 올라가면서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박물관이 너무 작다. 전시실이 1,2,3층으로 되어 있다고 했는데 저 작은 건물 3개 층에 어떻게 세계 4대 문명인 4천 년의 황화문명 유물전시가 가능하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황하문명에 비하면 새발의 피인 한반도 역사를 전시한 한국 국립박물관도 엄청난 규모인데 세계 4대 문명을 전시하는 박물관이 너무 작아 보인다. 지하에 또 다른 전시관이 있겠지 생각하며 박물관 안으로 들어갔다.

   

매표소로 갔는데 입장료가 자국인과 외국인이 다르다. 인도나 캄보디아에 가면 자국인과 외국인 입장료가 다르며 자국인은 저렴하게 외국인에게는 바가지 씌운다. 가난한 나라니까 이해할만하다. 박물관 유지관리비가 많이 들 텐데 가난한 서민들에게 많은 돈을 받을 수 없으니 잘 사는 외국인에게 넉넉히 받아서 박물관을 유지관리 하나 보다 생각하며 기꺼이 입장료를 지불했다. 그러나 대만은 가난한 국가가 아니다. 한때 아시아 4마리 용이라는 얘기를 들은 부자국가이다. 태국, 베트남, 중국도 현지인과 외국인에 대한 입장료가 동일한데 더 잘 산다는 대만이 왜 이러지? 외국인 이 만만한가?  실망스러웠다.     

내국인 150, 외국인 350.  외국인 입장료가 두 배이상 비쌈.  65세 이상도 내국인은 무료인데 외국인은 350.

전시품을 보니 더 실망이다. 아니 이 정도가 세계 4대 박물관이라고? 1층에는 귀금속 위주로 전시되고 2층은 고서적, 고미술품, 도자기가 전시되어 있으며 3층에는 고대 유물 위주로 전시되어 있다. 전시물은 300년이 채 안된 청나라(1644~1912) 유물이 대부분이며 4천 년에 걸친 중국 역사의 유물은 빈약하다. 장개석 군대가 본토를 탈출하면서 청나라 왕실의 보물 중 가볍고 작은 것만 챙겨 온 모양이다. 급히 도망 나오려다 보니 크고 무거운 것은 두고 작고 가벼운 것만 가지고 나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모든 게 조그맣다. 당시 중국의 유물들이 커다란 백화점 수준이라면 장개석 군은 백화점 내 금은방에 있는 귀금속만 챙겨 나온 정도이다. 


청나라의 진귀한 장신구와 세공품이 많긴 하지만 박물관으로는 미흡하다. 대표유물이 청나라 때 옥으로 만든 브라보콘 크기의 배추와 삼겹살 모양의 장식품이다. 루브르 박물관은 BC150년의 밀로의 비너스상, 대영박물관은 BC200년경의 로제타석, 카이로박물관은 BC1300년경 투탕카멘 황금마스크, 중국 란저우 박물관은 BC 200년경 달리는 마상(馬像)이 대표유물이다. 2천년이 넘는 오랜 과거에 만든 예술품인데 지금도 감동을 주는 대단한 역사적인 유물이다. 박물관은 역사적 유물이나 예술품을 전시하는 곳이라서 오래된 것일수록 가치가 높은 것인데 150년 된 청나라 예술품이 대표유물이라는 건 박물관의 수준이 그 정도라는 것이다.  

대만 박물관 대표유물 : 브라보콘 크기의 옥으로 만든 배추 형상(1900년 즈음 제품, 광서제 후궁이 혼수로 가져왔다고 함)
루브르 박물관, 카이로 박물관 대표 유물(밀로의 비너스, 투탕카멘 가면)

그런데 왜 바티칸 박물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카이로 박물관을 뛰어넘는 세계 4대 박물관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명칭이 붙었을까? 좋게 생각한다면 소장품 숫자 때문인 듯하다. 작고 가벼운 것만 가져오다 보니 숫자는 많았을 것 같다. 손톱만 한 크기의 세공품부터 간장 종지 크기의 많은 도자기들 그리고 사치에 찌들고 부패했던 청나라 궁중 아낙네들의 수많은 장신구와 예물들을 긁어모아서 가져오다 보니 숫자는 많았을 수도 있을 것 같다. 2층에는 고서적과 미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전문가가 보기에 대단한 고서적과 고미술품 일수도 있겠으나 돈 많이 내고 입장한 외국인이 보기에는 황하문명의 위대함을 보여줄 수 있는 특별한 가치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몇 달 전 갔던 중국의 시안 역사박물관이나 란저우 박물관은 대만 박물관과는 비교도 안 되는 엄청난 소장품에도 아무런 말이 없는데 왜 별것도 없는 대만 박물관은 세계 몇 등이라는 얘기가 나왔을까? 그리고 왜 한국인들은 대만 박물관을 보면서 감탄해할까 생각해 봤다.      

청나라 황실 보석들: 동전크기에서 담뱃갑 크기. 박물관에 시계 수십 개가 진열된 것도 좀 어색하다.

대만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중국에서 대만으로 야반도주한 장개석 군으로서는 우리가 비록 모택동에게 패하여 도망쳤지만 “청나라의 보물을 다 가지고 있으니 우리가 청나라를 계승한 중국의 주인이다“ 라는 주장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장개석 군이 대만으로 도망온 1949년에는 그랬을 수도 있다. 아편전쟁과 청일전쟁으로 나라가 곤두박질 치기 전인 19세기 중반만 해도 청나라가 세계 최강국 수준이었으며 황실의 사치가 극에 다른 시기였다. 1층 특별 전시실에는 서태후와 후궁들이 차고 다녔다는 호화스러운 귀걸이, 목걸이, 팔찌, 반지, 브로치 등 여성의 장신구와 장식품들은 지금의 명품 장신구 보다도 화려하고 아름 다워 감탄이 나온다. 이런 대단한 청나라 황실 보물창고를 통째로 털어 대만으로 가져왔으니 대만박물관이 세계 4대 박물관이라는 말이 당시로는 틀린 말은 아니었을 수 있다. 

청나라 황실의 장신구, 장식품들

그러나 이후 70년간 고고학과 유적발굴 기술이 발전하여 중국대륙에서는 병마용갱을 비롯한 수많은 발굴이 이루어졌다. 1940년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새로운 유물이 출토되어 중국의 박물관을 채웠고 대만은 당시 들고 온 유물이 전부라서 지금은 비교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다만 청나라 왕실의 진귀한 보석을 소장하고 있으므로 청나라 왕실 보석 박물관이라는 소박한 명칭을 붙인다면 거부감이 없을 듯하다.   

1974년 발견된 병마용갱
중국 시안박물관에 있는 병마용갱 유물

하루종일 봐도 시간이 부족할 줄 알았던 대만 국립박물관은 1,2,3층 한 바퀴 도는데 두 시간이면 충분했다. 내가 설렁설렁 봐서가 아니다. 전에 갔던 박물관은 하루종일 봐도 못 봐서 한번 더 간 적도 있다. 볼거리가 그만큼 적어서 이다.  대만 박물관 유물에 감동했다고 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다른 박물관을 보지 못하고 안내원이 하는 얘기를 그대로 믿어서 일 것이다. 대만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청나라 귀금속과 장식품은 볼만하다. 그러나 세계 4대 박물관이라느니 다 보는데 60년이 걸린다는 얘기는 중국 무협소설만큼이나 뻥이다.     

작가의 이전글 대만 타이베이 한달살이를 시작하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