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즐거움이 있는 타이베이
2024년 11.6~12.6 타이베이 한달살이를 마치고 귀국했다. 다른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며칠간은 주변관광을 하고 남은 기간은 내가 세운 루틴에 따라 하루를 보냈다. 여러 번의 해외 한달살이를 하다 보니 혼자 살아가는 루틴이 몸에 배었다. 외국에서 한달살이 하던, 한국 자기 집에서 살던지, 자연인처럼 산중에 들어가서 혼자 살아가더라도 시간 많은 퇴직자들의 루틴은 비슷하다. 모두가 먹고 자고 일하고 운동하고 노는 생활을 할 수밖에 없으며, 무엇을 먹고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운동을 하고 어떻게 노는가 만이 다를 뿐이다.
해외 한달살이 중 먹는 것은 비교적 간단하다. 나이 드니 에너지 소모가 적어서 인지 하루 세끼는 뱃속이 부담스러워 두 끼만 먹는다. 아침식사는 전날 저녁 마트에 가서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것을 사 와서 아침에 먹고 점심 겸 저녁은 맛집을 찾아 영양을 고려하여 묵직하게 먹는다. 밤에 출출하면 맥주 한 캔으로 허기를 달랜다. 아침식사를 위해 마트쇼핑을 하고 점심 겸 저녁을 위해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이 해외살이의 묘미이다. 해외살이는 현지인처럼 생활하면서 현지문화를 체험하는 여행이지만 한 달 만에 현지의 모든 문화를 체험할 수는 없다. 매일 마트에서 장보고 맛집을 찾아다니며 거리를 걷고 식당에서 현지인에 섞여서 식사하고 차 마시는 일상이 한달살이 중 경험할 수 있는 현지문화체험이다.
은퇴자들에게 중요한 문제는 건강 그리고 많은 시간을 어떻게 즐겁게 보내는가 이다. 한국에서 살던지 외국에서 한달살이를 하던지 "무엇을 하면서 지내는가" 즉 무슨 일을 하며 어떤 운동을 하며 어떻게 노는가가 핵심이다. 하루종일 일만 하거나, 운동만 하거나, 놀기만 해서는 즐거움이 지속되지 않고 금방 지치게 된다. 일하고 운동하고 노는 것을 적절히 배합해야 하루가 즐겁고 한 달이던 그 이상이던 지낼 수 있다. 일, 운동, 노는 시간을 적절히 배정해야 한다.
은퇴자에게는 일, 운동, 노는 것 모두가 취미생활의 영역이다. 생계를 위해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 사람은 돈 버는 일을 해야겠지만 해외살이를 나온 은퇴자에게는 일이 곧 취미생활이며 운동과 노는 것 역시 취미영역이다. 취미생활을 굳이 일, 운동, 노는 것으로 구분하는 이유는, 목표를 세우고 몰입을 해서 하는 취미생활은 일이며 단순히 건강과 즐거움을 위해서 하는 것은 취미생활이다. 몰입해서 뭔가 열심히 하고 성과를 얻은 다음 운동이나 노는 것은 달콤하지만 계속 운동하고 놀기만 하는 것은 곧 지겨워진다. 은퇴 후 해외 한달살이를 위해서는 목표를 세우고 몰입해서 일처럼 하는 취미 한두 개와 건강과 즐거움을 위한 취미 한두 개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하루를 즐겁게 지낼 수 있으며 한 달이던 그 이상이던 아는 사람 없는 해외에서 나 홀로 지낼 수 있다.
나 홀로 해외 한달살이 하면서 할 수 있는 취미생활은 한국에 비해 제한된다. 가장 큰 차이는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모든 것을 혼자 해야 한다는 점이다. 나는 퇴직 후 해외살이를 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퇴직 전, 혼자 할 수 있는 취미로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를 선택하고 브런치 작가에 지원하여 글쓰기를 연습했고 미술학원을 다니면서 연필화를 배웠다.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는 목표를 정하고 혼자 몰입해서 할 수 있는 좋은 취미생활이다.
목표를 세우고 몰입해서 하는 나의 취미는 글쓰기이다. 글쓰기는 가장 간단하면서 돈 안 드는 좋은 취미이다. 숙소나 주변 카페에서 몰입하여 글을 쓰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간다. 여행 관련 글을 쓰다 보면 해당 국가의 역사를 공부 하게 되고 사실확인을 위해 인터넷과 유튜브를 뒤지게 되어 다양한 상식이 늘게 된다. 글 쓰다 보면 저절로 자기 성장이 이루어지는 좋은 취미이다. 게다가 쓴 글들은 브런치에 차곡차곡 쌓여서 훗날 발간할 책의 재료가 된다.
매일 4~5시간 노트북을 펴고 앉아서 글 쓰거나 인터넷, 유튜브를 하다가 늦은 점심 후 운동을 한다. 혼자 할 수 있는 운동은 걷기, 등산, 수영, 헬스이며 숙소와 주변의 상황에 따라 선택한다. 치앙마이, 쿠알라룸푸르, 냐짱에서는 숙소에 풀장과 헬스장이 있어서 수영과 헬스를 주로 했고 삿포로, 프라하, 타이베이에서는 걷기와 등산을 주로 했다. 걷기는 해외살이 중 가장 쉽고 좋은 운동이며 관광이기도 하다.
매일 15000보 걷기를 목표로 하며 지도를 보면서 걷기 좋은 장소를 물색하고 대중교통으로 이동하여 때로는 공원에서 때로는 시가지를 걸으면서 관광을 겸한다. 매일 15000보를 걷다 보면 한 달 동안 도시 구석구석을 알게 되고 저절로 관광과 현지체험이 된다. 글쓰기와 운동하는 외의 시간은 노는 시간이다. 숙소에 있을 때는 노트북으로 유튜브를 보거나 인터넷 검색을 하고 밖에서는 마사지를 받기도 하고 쇼핑센터, 관광지, 도심, 공원을 배회하면서 눈요기를 한다.
타이베이에서의 한달살이는 이와 같은 루틴에 의해서 지냈다. 호텔조식 후 노트북을 들고 레스토랑이나 카페로 가서 노트북 놀이를 하다가 두세 시쯤 밖으로 나가 점심 겸 저녁을 먹고 시내에서 시간을 보내고 밤에 귀가했다. 타이베이 시내에 산재한 공원에 가서 걷거나 주변 산을 등산하고 타이베이 외곽에 있는 온천에 다녀오기도 했다. 저녁에 숙소에 들어오면 맥주 한 캔과 함께 하루를 마무리했다.
타이베이는 크기는 서울보다 작지만 도시 형태가 서울과 비슷하다. 도시 중간으로 커다란 강이 지나가고 외곽으로는 산이 감싸고 있다. 도시 중간을 흐르는 강변에는 공원이 잘 조성되어 있으며 외곽의 산에는 산책로가 잘 되어있고 산과 산이 모두 등산로로 연결되어 있다. 도시 면적에 비해 공원이 많고 산책로가 좋으며 날씨가 온화하여 공원마다 나무가 푸르르다. 나는 점심식사 후 시내나 공원을 바꿔가며 걸으면서 도시의 구석구석을 알아갈 수 있었으며 이는 타이베이 한달살이를 즐겁게 할 수 있었던 커다란 요인이 되었다.
타이베이 남동쪽 산에 있는 은하동굴과 동굴뒤로 이어지는 등산로(은하동월령등산로)는 멋진 코스이다. 또한 등산로와 연결되는 곤돌라 탑승장에서 곤돌라를 타고 시립 동물원으로 내려가는 코스는 반나절 운동 및 관광코스로 아주 좋았다. 점심 후에 전철과 버스로 은하폭포 진입로로 간다음 2킬로 정도 걸어서 산속에 있는 은하폭포를 오르고 은하폭포 뒤로난 등산로로 한 시간쯤 걸어 마오콩 곤돌라 탑승장으로 갔다. 곤돌라는 30분 정도 계곡과 산을 오르내리며 운행되는데 타이베이 시내를 조망하는데 아주 좋았다. 곤돌라의 종착역은 시립동물원이다.
시립동물원은 아시아 최대라고 한다. 내가 지금까지 본 동물원 중에 가장 잘 만들어진 듯하다. 여의도 절반정도 되는 넓은 숲 속에 동물을 배치하여 흡사 사파리에 들어온듯한 느낌을 준다. 동물원 이라기보다 숲 속의 일부에 동물이 놀고 있는 듯이 보이도록 잘 설계되어 있다. 금년 7월에 세계 4대 동물원이라고 하는 프라하 동물원에 갔었는데 타이베이 동물원이 프라하 동물원 보다 더 볼거리가 많고 자연친화적으로 잘 조성되어 있다. 동물원 우리 주변에는 갖가지 희귀 식물을 심어 식물원의 역할도 겸하고 있다. 동물원 우리를 도는 길 자체가 어떤 산책로 보다도 훌륭한 힐링 코스이다. 은하동굴에서 곤돌라 그리고 동물원으로 이어지는 코스의 아름다움과 자연과 어우러지는 동물원의 분위기에 취해서 한달살이 하는 동안 그 코스를 여러 번 다녀왔다.
타이베이 근교의 베이터우 온천도 한달살이 중 좋은 휴식처였다. 숙소에서 전철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온천지대이며 호텔, 리조트뿐만 아니라 노천온천도 즐길 수가 있다. 노천 온천은 두 시간 운영에 30분 휴식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어 시간에 맞춰 입장하면 한두 시간 온천욕 후 나와야 한다. 대만의 6070이 대부분이고 간혹 젊은 관광객이 멋모르고 들어오면 대만 노인들의 시선을 받는다. 내 나이도 만만치 않은데 거기에 들어서니 젊은 축에 들 정도이다. 온도별 탕이 있어서 적당한 탕에 들어가 앉아 있으면 된다. 타이베이 생활 중 답답할 때면 이곳에 와서 대만 노인들의 틈에 않아 뜨뜻한 온천에 몸을 담그고 피로를 풀곤 했다.
한 달간의 대만 타이베이 생활은 즐겁고 좋았다. 이전에 한달살이 했던 프라하, 냐짱 등에 비해서는 못했지만 그래도 나름 좋았다. 타이베이 한달살이를 즐겁게 보낼 수 있었던 것은 걷기 좋은 공원이 많아서 공원을 돌아가면서 걸을 수 있었고 등산코스와 온천이 있어서 가끔 기분전환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타이베이에 유독 샤부샤부 집에 많았다. 현지 음식은 입에 잘 맞지 않았으나 샤부샤부 식당을 이곳저곳 찾아다니면서 영양보충을 할 수 있었다.
대만의 타이베이는 한국에서 가까운 도시이다. 비행거리가 두 시간 반 정도이고 항공권도 일본 정도로 저렴하다. 한국사람들에게도 호의적이어서 쉽게 오가기 좋은 국가이다. 아열대 기후로 겨울에도 춥지 않아 겨울철 추위를 피하기 위한 장소로 적격이다. 좋은 공원들과 주변 산들이 있어서 걷기와 등산에도 좋고 물가도 저렴한 편이어서 한달살이에도 괜찮은 나라이다. 그러나 인구밀도가 높아서 인지 숙박비가 유럽 수준으로 비싸고 음식이 한국사람 입맛에 잘 맞지 않는 듯하다. 처음 타이베이에 도착할 당시 우중충한 도시 모습에 실망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타이베이의 좋은 점이 드러나기 시작해서 좋은 감정으로 한달살이를 마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