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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떠도는 방랑자들

자유로운 영혼들의 이야기

by 야간비행


나는 스스로를 방랑자 또는 유목민이라 부른다. 긴 직장 생활을 마친 후 여행 작가라는 새로운 명함을 가슴에 품은 채, 나 홀로 3년째 세상을 떠돌고 있다. 초지를 찾아 떠나는 유목민처럼 매달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고 새로운 초지에서 자유롭게 방랑한다. 여러 나라를 떠돌다 보면 나처럼 자유를 찾아 떠도는 은퇴자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은퇴 후 홀로 세상을 떠도는 방랑자들은 지금뿐만 아니라 수천 년 전부터 있어왔다.


석가모니 탄생 전부터 인도에는, 은퇴 후 집을 떠나 수행하는 산야사(Sannyasa)가 있었다. 가업을 이루고 자식에게 물려준 이후 모든 세속적 욕망을 버리고 오직 깨달음을 위해 떠돌았다. 그들의 방랑은 고행에 가까웠지만, 그 목적은 자유와 해탈이라는 정신적 행복에 있었다. 지금도 인도의 자이나교 일부 신도는 은퇴 이후 모든 소유와 관계를 버리고 오직 영적인 완성을 위해 방랑자 생활을 하고 있다.


중국 당나라 때는 도교의 영향으로 속세의 번잡함을 떠나 방랑자로 사는 사람이 많았다. 이중 이백과 두보 같은 당대 유명한 시인도 있었으며, 후대에 이름을 떨치지는 못했지만, 많은 사람이 집을 떠나 세상을 주유하며 글을 쓰고 시를 지었다. 이들은 속세의 명예나 부를 좇기보다, 자연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는 삶을 추구했다.


수백 년 전, 우리 조상 중에도 집을 떠나 홀로 방랑했던 이들이 있었다. 단원 김홍도와 겸재 정선은 방방곡곡을 떠돌며 백성들의 삶과 아름다운 산천을 그렸다. 김삿갓은 세상을 주유하며 글을 쓰고 시를 남겼다. 이들의 방랑은 자신의 삶을 찾는 여정인 동시에 커다란 예술적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일부 한량들은 관직을 마친 후, 집을 떠나 세상을 유랑하며 시나 글을 쓰고 풍류를 즐겼다. 이처럼 과거의 예술가들 외에도, 당시의 사회적 통념에 얽매이지 않았던 한량들 역시 자신만의 방식으로 방랑을 즐겼다. 그들은 시대를 앞선 자유인이자, 진정한 방랑자들이었다.


나 또한 40년이 넘는 긴 직장생활을 마치고 새로운 삶의 무대로 나섰다. 과거 한량들이 명산대천을 찾아다니며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긴 것처럼 나는 알프스와 히말라야의 웅장함과 타클라마칸 사막의 황량함을 바라보며 술잔을 기울였으며 실크로드와 차마고도를 걸으면서 과거 사람들의 고통을 체험했다. 동남아 빈국에서 서민들의 삶을 보았고, 인도의 바라나시에서 삶과 죽음을 목도했으며 캠핑카로 유럽을 돌며 낭만을 경험했고, 박물관들을 다니며 인류의 역사를 관찰했다. 그리고 방랑 중 목도한 다양한 모습과 경험을 글로 써서 브런치에 올렸다. 고생을 즐기던 젊은 날과는 달리, 돈도 적당히 쓰면서 과거 한량들처럼 풍류도 즐겼다.


나뿐 아니라 많은 베이비부머 은퇴자들이 현대판 방랑자가 되어 집을 떠나 세상을 주유한다. 단기간의 여행이 아닌 한 곳에 장기 체류를 하고, 어떤 이는 '기후난민'처럼 시원하고 따뜻한 곳을 옮겨 다니며, 또 어떤 이는 극지와 오지를 탐험하며 자신의 한계를 실험한다. 이들의 여행은 단순한 여가가 아니라, 새로운 삶의 의미와 활력을 찾는 자기 계발의 과정이다. 이들은 은퇴 후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현대판 한량들이다. 나는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많은 은퇴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은퇴자들이 세계를 방랑하며 자유로운 삶을 즐기고 있다.


현대판 방랑자들은 유튜브, 블로그, 브런치 등을 통해 자신의 경험을 기록하고 공유하며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고 있다. 과거의 방랑자들이 오직 개인적인 기록을 남겼던 것과 달리, 지금은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삶을 당당히 세상에 알리고 소통한다.


과거와 현재의 방랑자는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차이가 있을 뿐, 그 본질은 동일하다. 과거의 방랑자들은 말이나 배를 타고 한정된 공간을 유람할 수 있었고, 붓과 종이로 그들의 기록을 남겼으며, 오직 소수의 사람에게만 공유되었다. 하지만 현대판 한량들은 비행기로 지구 반대편을 몇 시간 만에 오가고,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AI를 벗 삼아 외로움을 극복한다. 나 역시 세게를 종횡무진하며 글을 쓰고 브런치를 통해 많은 독자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고 있다.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은퇴자들의 방랑의 목적은 비슷하다. 인도의 산야사가 해탈이라는 궁극적 행복을, 당나라와 조선의 한량은 풍류라는 개인적 행복을 추구했듯, 현대의 방랑자는 삶의 마지막 장에서 오롯이 자신의 자유와 행복을 찾고자 한다. 손쉽게 종횡무진 세계를 떠도는 현대 방랑자의 삶은 과거 방랑자들은 상상하지도 못한 호사이다. 과학기술과 의학의 발전 덕분에 과거에 비해 훨씬 긴 세월 동안 건강하게 방랑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도 선배들이 꿈꾸지 못했던 행운이다.


과거의 방랑자는 정처 없이 떠돌다가 객지에서 생을 마감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수명이 짧고 의료 수준이 열악했으니 병이라도 들면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객지에서 사망했을 것이다. 현대의 방랑자들은 은퇴 후 30년 이상 생존한다. 상당 기간 방랑자의 삶을 살면서 자유를 만끽하고 이후 귀가하여 그동안의 경험과 성찰을 바탕으로 남은 생을 평온하게 보낼 수 있다.


나 역시 평생 방랑할 생각은 없다. 3~4년 후 100개국 여행, 50개 도시 한 달 살기라는 목표를 달성하면, 이후에는 기후난민의 삶을 살아가려 한다. 봄, 가을은 산야가 아름다운 한국에서, 여름, 겨울은 시원하고 따뜻한 곳으로 옮겨 다니며 하고 싶었던 취미와 공부를 시작할 계획이다. 그림 그리기와 악기 연주, 사교춤을 배우며 인생을 즐기고, 여행 중에 만난 다양한 지형과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을 탐구하며 삶의 마지막을 채워나갈 것이다.


현대판 방랑자들의 삶은 세계화된 조선 한량의 삶과 유사하다. 붓 대신 노트북을, 벗 대신 AI와 함께 하는 나의 여정은, 시대를 초월하는 자유로운 영혼들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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