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x저작권위원회) 저작권, 전혀 관련 없는 분야는 없다.
“아… 진짜 너무 힘들다. 이 운동 동작들은 도대체 누가 만들었어요? 선생님이 만드셨어요?”
나의 PT(Personal Training) 회원들이 종종 묻곤 한다. 하지만 나도 누가 만들었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웨이트트레이닝 동작은 근-골격계의 해부학적 구조와 움직임 기능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개인의 신체적 개별성이나 운동 목표에 따라 조금씩 다를 뿐이다. 필라테스처럼 특정 개인이 만들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웨이트 트레이닝 동작의 최초 저작자를 찾으려면 인간의 근-골격계를 만든 조물주를 찾아야 한다. 물론 이러한 해부학적 구조를 최초로 발견하고 근-골격계 기능의 발달을 연구한 사람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저작권이 그 효력을 가지려면 저작자의 생존 기간 및 사후 70년까지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웨이트 트레이닝의 저작권을 개인이 주장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른 방면에서 웨이트 트레이닝의 저작권(?)을 두고 논쟁이 일어날 때가 종종 있다.
십여 년 전, 내가 아직 꼬마 트레이너일 때였다. 그때는 무조건 매번 새롭고 역동적이고, 재미있는 동작들로 구성된 PT 수업이 ‘진짜’라고 믿었던 것 같다. 사실 생활체육인들에게는 근-골격계의 해부학적 구조와 기능을 발달시키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항상 최선을 다해 PT 수업을 준비했지만 부족한 경험과 20대 초중반의 어린 치기였던 것 같다. 그런데 나만 그런 건 아니었나 보다. 하루는 나의 동기들끼리 언쟁이 났다. 가만히 들어보니 ‘내가 오전 PT 수업에서 이 동작을 했더니 오후에 쟤가 내 동작을 따라 했다 ‘, ‘내가 이 동작을 찾아서 연습해 왔는데 네가 생전 시도도 안 하다가 갑자기 회원들에게 적용했다’하는 내용이었다. 나는 워낙 내 할 일에만 몰두하는 성격이라 언쟁에 휘말리지는 않았지만 사실은 마음속으로 굉장히 뜨끔했다. 지금에야 귀엽고 우스운 이야기이지만 당시에는 ‘PT 수업 프로그램’의 저작권을 두고 벌어지는 심각한 문제였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웨이트트레이닝 동작을 두고 특정 개인의 저작권을 주장하기는 어렵다.
‘저작권’의 사전적 의미는 ‘문학, 예술, 학술에 속하는 창작물에 대하여 저작자나 그 권리 승계인이 행사하는 배타적, 독점적 권리‘이다. 운동만을 생각하며 살던 나는 저작권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고, 사실은 관심도 없었다. 그런데 2019년,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체육산업의 판도가 완전히 뒤집혔다. 이때 나는 처음으로 저작권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피트니스센터(Fitness Center)가 줄줄이 휴업하고, 동네 공원에는 사람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역설적으로 건강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면서 사람들은 운동을 찾았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홈-트레이닝(Home-Training)이 유행했다. 다양한 홈-트레이닝 영상들이 쏟아졌다. 나 역시 N사와 홈-트레이닝을 공동 운영할 기회가 생겼고, 급하게 홈-트레이닝 영상을 만들어야만 했다. 개인 회원의 프로그램을 짜는 것과는 정반대로, 다양한 사람들의 니즈를 고려해야 했고 다른 영상들과는 차별성을 분명히 해야 했다. 단순히 웨이트 트레이닝 동작이 아니라 썸네일 화면의 레이아웃, 자막, 음원까지 그러했다. 누가 누구를 따라 했네의 수준이 아니라 정말로 ‘저작권’이라는 개념을 정확하게 염두에 두고 제작해야 했다.
막상 직접 영상을 제작해 보니까 신경 써야 할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이런 것이 창작의 고통이 아닐까 하고 마치 내가 예술가라도 된 양 머리를 쥐어뜯기도 했고, 이미 만들어진 영상들과 겹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정말 애써야 했다. 모두에게 허가된 음원과 레이아웃인지 꼼꼼하게 체크해야 했으며, 허가된 것들이라 해도 내 영상과 적절하게 어우러지는지 맞춰가며 몇 번이나 수정하고 수정해서 만들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영상이라 해도 저작권과 엮이면 최소 플랫폼의 경고를 받거나 유저들에게 욕을 먹게 되는데, 심지어 나는 특정 기업과 공동 운영이었기 때문에 몇 배는 더 신경 써야 했다. 다행히 한 달 과정의 ‘홈-트레이닝’ 운영은 잘 마쳤다. 덕분에 나에게는 저작권에 대한 기본 개념이 잘 새겨졌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어떠한 창작물을 가져다가 쓸 때는 조심하고 그 창작물의 저작자를 향한 예우를 하려고 다들 노력하는 것 같다. 하지만 2차 창작물에 대한 개념은 아직 조금 부족한 것 같다. 나마저도 그랬다. 홈-트레이닝을 운영하고 나서 온라인 클래스와 온라인 PT 문의가 많았다. 문제는 내가 이미 만들어놓은 영상과 겹치지 않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요청해 왔다. 내가 만든 영상이고,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겹치지 않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또한 내 클래스와 온라인 PT 영상을 가지고 조금씩 바꾸어서 사용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었다. 웨이트 트레이닝의 저작권이 특정 개인에게는 있을 수 없다고는 하지만, 그 미묘한 선을 저작자인 내가 모를 리 없었다. 그때, 나는 2차 창작물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2차 창작물에서 가장 화두가 되는 것은 ‘패러디 물‘인 것 같다. 패러디와 표절은 한 끗 차이여서, 최초의 저작물에서 어떠한 의미가 담겨있는가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한다. 어떠한 것을 연상시키고, 유명하니까 관심을 끌기 위해 가져다가 쓰는 것은 표절이다. 패러디란 예전의 종이신문에서 만화 사설, 4컷 풍자와 같이 최초의 저작물을 약간 수정해서 쓰되, 정확히 어떠한 것을 희화, 풍자, 또는 공익적 의미를 담았을 때 인정된다고 한다. 패러디의 사전적 의미 역시 ’ 특정 작품의 소재나 작가의 문체를 흉내 내어 익살스럽게 표현하는 수법. 또는 그런 작품(출처:표준어 국어 대사전)‘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약간 변형한다고 해서, 조금 비틀었다고 해서 결코 패러디가 아니란 의미다.
나는 대단한 창작자나 예술가는 아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 모두는 다양한 SNS와 플랫폼을 통해 아주 쉽게, 때로는 나도 모르게 저작자가 될 수 있다. 단순히 게시물을 올릴 때조차도 저작권에 대한 경각심이 필요한 것 같다. 별것 아닌 개인 영상이고, 최초의 저작권을 찾을 수 없는 웨이트 트레이닝 프로그램일 뿐인데도 막상 겪어보니 기분이 참 묘했다. 기분은 나쁜데 말하기 애매하고, ‘내 거인데…’하면서도 당당히 주장하기 쉽지 않았다. 진정한 창작자나 예술가들은 분명 이런 감정이 더 클 것이다. 결국 우리 모두가 저작자라는 마음으로 저작권에 대한 경각심을 확실하게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