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울에 불과한 저 물방울이

mmca 서울 <김창열> 회고전

by 쓰는 사람 지민


물방울에 불과한 저 물방울 앞에서 나는 오래 멈추어 서 있었다.

단순한 구체 하나로 보이지만 그 속에 얼마나 많은 비애와 애환이 응축되어 있는가. 작품과 작가의 궤적을 함께 바라보았을 때 그것은 더 이상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절체절명의 순간들을 살아낸 자의 응어리임을 알 수 있었다.


예술가의 궤적은 대개 몇 줄 기록으로 요약된다. 제주도로 내려가 경찰 생활을 했다는 것, 뉴욕에서 국제적 지원을 받았으나 주목받지 못했다는 것, 파리 외곽의 마구간을 개조해 작업을 이어갔다는 것. 그러나 그 사실들은 연대기 속 짧은 문장일 뿐 그가 견뎌야 했던 어둠과 비애의 무게는 감히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정작 그는 자신의 삶이 어디로 향하는지, 그 끝에 어떤 예술적 형상이 남게 될지 알 수 있었을까.

전시 설명은 이렇게 전한다.

“그러나 뉴욕에서의 삶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그의 앵포르멜 회화는 뉴욕에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고, 자본주의 소비사회에서 느낀 정서적 이질감은 그에게 깊은 회의와 소외감을 안겼다. 하지만 이러한 고립감은 오히려 작업의 전환을 이끌었다.”


벽면의 문장을 읽고 난 뒤, 다시 물방울을 바라보았다.

그는 한국전쟁 속에서 수많은 동창이 죽어 나간 기억을 총알에 뚫린 살갗의 구멍에 비유하며 물방울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했다. 살점을 도려낸 듯한 점들이 차가운 공기 속에서 식고 내면의 뜨거운 응어리들이 응결하여 마침내 구체가 되었다는 그의 고백은 감정의 무게가 예술로 응결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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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위협이 승화되어 예술로 표현되는 과정을 보며 말할 수 없는 숭고한 힘을 느낀다. 집착에 가까운 강박으로 오랜 세월 그려낸 그의 물방울은 살아남은 자로서 평생 지고 가야 했던 책임감과 죄책감, 그려도 그려도 다 담아내지 못하는 애도의 목소리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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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앞에서 눈물이 차오른 건 내게 처음 있는 일이었다. 오래도록 발걸음을 옮길 수 없게 했던 그 투명한 물방울은 화백의 눈물이자 나의 눈물이었다. 그의 물방울은 나를 비추는 거울 같았다. 설명은 잦아들고, 사유는 멈추었으나, 울음은 차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알게 되었다. 이것은 단순한 회화가 아니라 절체절명의 순간들을 예술로 승화시킨 자만이 남길 수 있는 숭고한 결정체라는 것을. 그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낸 자의 흔적은 물방울 하나에도 고스란히 응축되어 있었고 나는 그 앞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