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으로 감각하기

SOLLI MANIAQUE — 2025 모스틀리 첼로 인 서울

by 쓰는 사람 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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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일정의 둘째 밤, 네 명의 바이올리니스트와 한 명의 첼리스트가 협연자로 순환하며 여섯 곡을 이어 갔다. 조합이 바뀔 때마다 공기의 농도가 달라졌다. ‘비발디’ 하면 ‘사계’ 정도 알고 있던 내게도 연주곡들이 전혀 생경하지 않을 정도로 계절의 기척을 품은 듯 생동했다. 음형 사이사이에 로코코의 섬세함이 정교하게 박혀 있는 듯, 화려한 장식 뒤에 숨은 진득한 음체(音體가) 귀를 붙잡았다.

현의 향기는 쉽게 휘발되지 않았다. 잔향은 공기를 타고 높이 퍼졌다가 오래 머물렀다. 한 곡, 또 한 곡—연주자들의 음에 대한 애정과 서로를 향한 경의가 음악의 안쪽을 단단히 채웠다.

프로그램

A. Vivaldi L’Olimpiade Overture

A. Vivaldi Concerto in G minor for 2 Violins, Op.3 No.2

A. Vivaldi Violin Concerto Op.9 No.5, RV 358

A. Vivaldi Mogul Concerto in D, RV208

F. M. Sardelli Cello Concerto in G minor

E. F. Dall’Abaco Concerto à più strumenti, Op.5 No.6 in D major


출연진

Violin: 김다미, 김재원, 윤동환, 정진희, 권예은

Viola: 신경식, 김규현

Cello: 홍채원, 임재성, 채태웅

Contrabass: 유이삭

Harpsichord: 아렌트 흐로스펠트

Theorbo: 윤현종



늘 감각을 언어로 옮기려 애쓰지만 늘 충분하지 않음을 알고 있다. 아무리 그물코가 촘촘해도 그 감흥들은 빠져나가곤 한다. 내 언어의 해상도가 낮아서이기도 하지만 감각 그 자체가 언어와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감각으로만 반응하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생소하기도 두렵기도 했다.

마지막 곡, 김다미 바이올리니스트가 협연자로 무대에 올랐다. 후반부로 갈수록 다른 악기들은 숨을 죽이고, 오직 바이올린의 선율만이 홀을 가득 채웠다. 그 선율이 무대를 환히 비추자 객석의 호흡은 거의 멈춰버렸다. 무대 가까이에서 현의 떨림을 함께 마주한 연주자들이 경의 어린 눈빛을 주고받으며 미소 지을 때, 음악의 언어가 닿을 수 없는 차원이 열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감각을 감각으로만 받아들이는 일이 왜 필요한지, 그때 비로소 스스로에게 답이 생겼다. 언어로 포획되지 않는 순간, 언어가 닿기 전 감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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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모습을 보며 친구와 동료,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란 결국 관현악단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 다른 울림통을 지니고 있으나, 서로의 음색을 경탄하며 더 깊고 넓게 울려 퍼지도록 북돋아주는 것. 자기 소리를 신뢰할 때만 가능한 합주.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내 안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은 결코 자기중심적 욕망이 아니다. 오히려 타인의 선율을 듣기 위한 전제이고 조율의 출발점이다.

오케스트라는 그렇게 꾸려지고, 삶이라는 음악은 비로소 울려 퍼진다.

덧붙여, 합주를 방해하는 태도에 대해서는 분명히 말하고 싶다. 소리의 크기를 겨루며 타인의 선율을 덮어쓰려는 마음, 템포를 독단으로 끌고 가는 습관, 악장이 지시한 쉼을 무시하고 자신의 패시지로 빈틈을 메우는 충동—이와 함께라면 음악은 소란으로 남는다. 우리는 서로의 타이밍을 기다릴 수 있어야 하고 가끔은 한 음을 뺄 용기도 있어야 한다. 그렇게 비워진 자리에서 우리의 음악은 비로소 합이 된다.

그날 무대 위에서 울리던 현의 떨림은 내 안에서도 여전히 파문을 그리며, 잔향처럼 길게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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