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 빌 <유회웅 X 한스 판 마넨> NO MORE, 5 TANGO'S
하필 공연 날, 머리가 심하게 지끈거렸다. 생각을 붙잡고 분석하려는 힘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감각만 열어둔 채 객석에 앉았다.
불빛이 꺼지고 무대 위 첫 박자가 울렸다. 나는 더 이상 나의 고통에 매몰되지 않고 눈앞에서 일어나는 장면에 몸을 맡기기로 했다.
<NO MORE>
퇴근 후 빌딩을 나서는 한 젊은 남자의 그림자가 보인다. 휘청거리는 발걸음, 집에 도착했을 때 그를 맞이하는 건 적막과 그림자뿐이다. 어둠은 금세 그를 사로잡고, 막연한 두려움과 잡다한 생각들이 공중에 둥둥 떠다니며 그를 휘감아 버린다. 쉽게 잠들지 못하게 하는 이 무형의 존재들을 남녀 무용수들의 군무로 형상화한 것이 특히 인상 깊었다. 과거의 상처, 현재의 힘겨움, 미래의 불안이 각각의 몸짓으로 드러나며 주인공은 밤새 꿈속에서 허우적거린다. 이때 강렬한 드럼과 날카롭게 울리는 심벌즈가 아침의 적막을 찢으며 관객의 뇌리를 흔든다. 그 소리는 불면을 끝내는 잔혹한 알람이자 동시에 잡생각을 몰아내는 단호한 종결이었다. 다시 일터로 나서야 하며 소음 속으로 몸을 던져야 하는 현대인의 절규. 그 소리는 냉정하면서도 필연적인 현실의 신호이다.
이어지는 2막 <5 TANGO'S>은 탱고의 음률에 맞춘 무용수들의 선율(線律)들로 채워졌다. 스토리보다는 춤 그 자체에 몰입하게 되는 무대였다. 안무에서 나오는 매혹적인 선들이 서로서로 연결되는 듯했다.
발레리나들의 동작은 단순히 아름다움으로만 다가오지 않는다. 매일 반복되는 스트레칭과 근력 훈련, 끊임없는 위험과 부상을 감수해야만 도달할 수 있는 경지. 다리를 들어 올리고 턴을 돌며 수없이 쪼개진 동작들을 다시 이어 붙여 하나의 흐름을 완성하는데, 그것이 아름다움이 되려면... 그 우아함은 순간의 선물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해체와 재조립, 고통과 인내의 시간이 집약된 결과물인 것이다.
요즘 무용가들은 직접 무대를 기획하고 안무를 짜며 추상적이고 비가시적인 세계를 몸의 언어로 품어내곤 한다. 그렇게 무대는 단순한 공연을 넘어 몸으로 사유하고 증언을 대변하는 공간으로 확장된다. 〈NO MORE〉와 <5 TANGO'S>는 그 공간에서 우리 모두의 불면과 불안을 춤으로 번역해 보여주었다.
공연이 끝난 뒤, 여전히 머리는 무거웠다. 그러나 무대 위에서 펼쳐진 몸의 서사는 이상하게도 그 통증을 잠시 잊게 했다. 마이크를 쥐어주면 분명 이 공연에 대해 내 자아는 할 이야기가 있을 테지만 때때로, 아니 사유란 본시 매우 피곤한 작업인 것. 굳이 다 이야기하지 않기로 했다. 이것이 ‘감각한다’의 시작이 아닐까.
생각이 멈춘 자리에 남은 울림만 간직하기.
그래서였을까, 오래도록 사람들은 음악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춤을 추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