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llo sweep: 그가 쓸고 간 자리

2025 씨엘로스 클럽 살롱 음악회

by 쓰는 사람 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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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서촌의 어느 깊은 밤

서촌에 자리한 크레디아 클래식 클럽에서 첼리스트 홍진호와 재즈 피아니스트 조윤성의 ‘씨엘로스 살롱 음악회’가 열렸다.


서촌 특유의 고즈넉한 풍경을 지나 지하 공연장으로 들어서자, 좁은 공간만이 줄 수 있는 특유의 밀도가 나를 감쌌다. 바깥의 차가운 공기는 차마 스며들지 못한, 내밀하고도 따스한 클래식의 공간이었다. 음악이 차곡차곡 쌓인 그곳의 조명 아래, 관객들의 숨소리가 얇게 겹쳐졌다. 마치 밤의 냉기마저 음악을 위해 천천히 조율되고 있는 듯했다.



정작 공연이 시작되자, 나의 시선은 무대 정면이 아닌 바닥에 놓인 사소한 것들에 머물렀다. 첼로를 지탱하는 작은 고정대(Endpin)가 왜 그토록 애틋하게 보였을까. 연주자의 발치에서 아무 말 없이 악기를 지지하며 연주자의 온 무게와 거친 호흡을 묵묵히 받아내고 있는 작은 존재를 보며 ‘저 작은 친구가 이 거대한 음악을 떠받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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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이 날 정도로 귀여웠던 엔드핀



이내 내 시선은 활 털로 옮겨갔다. 춘천 공연에서는 조명에 반짝이는 현이 먼저 보였는데, 이날은 유독 활 털에 눈길이 갔다. 송진을 머금은 털들이 서로에게 가지런히 기대어 선 모습이 왠지 모르게 뭉클했다. 우리가 듣는 이 아름다운 소리가 결국 저 가녀린 털의 치열한 마찰에서 태어난다는 사실이 숭고하게까지 느껴졌다.

‘떨림을 견뎌내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마모시키는구나.’

음악이라는 거대한 세계가 사실은 이토록 작고 연약한 것들의 내어줌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에 마음이 일렁였다.


조윤성 선생님의 피아노는 언제나처럼 우리를 다른 차원의 시공간으로 이끌었다. 같은 곡이라도 선생님의 손끝을 거치면 결이 달라진다. 이날도 선생님만의 특별한 변주가 내 심장을 끝없이 두드렸다.

영화 <헤어질 결심>의 OST ‘안개’는 작년 봄, 동탄의 ‘시네마 파라디소’ 공연 이후 다시 듣기를 고대했던 곡이다. 비록 그때 나를 흥분케 했던 격정적인 리듬은 아니었지만, 서촌의 밤과 어우러지는 더없이 세련된 연주였다.

재즈는 ‘지금 이 순간’만의 선율을 빚어내고 금세 흩어진다. 건반을 누를 때마다 그 울림은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방향으로 번져나갔다.


홍진호의 보잉은 언제나 그렇듯 깊고 따뜻한 ‘쓰다듬음’ 그 자체였다. 팔이 그리는 우아한 호(弧)가 공기 중에 미세한 파동을 일으키고, 그 떨림이 현 위에 내려앉으며 따스한 온기를 불어넣는다. 마치 첼로가 인간의 몸짓을 빌려 숨을 내쉬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날 연주된 곡들은 늘 그러했듯 ‘다 좋았다.’

자작곡의 울림은 유독 깊었다. 영화 OST가 기억을 환기시키며 무대를 촘촘히 채웠다면, 자작곡은 연주자의 감정을 날것으로써 더 선명하게 전달하는 듯했다. 다른 곡들은 별도의 해석이 필요하지만 자작곡은 이미 그의 혼이 스며든 상태로 존재하기 때문일까. 감정을 증류시켜 탄생한 곡이 다시 무대 위에서 뜨겁게 데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내 심장의 진동폭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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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주변을 둘러보니, 서촌의 밤이 공연장 안으로 조용히 스며들고 있었다. 창밖은 오래된 골목 특유의 나직한 공기를 머금고 있었다, 공연장 안은 관객의 숨결과 음악의 진동이 층층이 쌓여 공간의 밀도를 점점 높여가고 있었다. 첼로의 낮은 음색과 피아노의 선율이 서로 얽히며, 어떤 순간은 영원할 듯 오래 머물렀고 또 어떤 순간은 맥없이 사라졌다.


나는 이날 화려한 클라이맥스보다 활 털이 미세하게 떨리는 장면, 그리고 첼로 고정대가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모습에 더 마음을 뺏겼다. 음악은 결국 소리 너머의 세계를 여는 일이며 그 거대한 세계는 늘 이런 사소한 결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다시 배운 시간이었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쉬이 사라지지 않는 잔 진동의 이유를, 나는 ‘스침(Sweep)’에서 찾는다. 첼로의 활이 현을 스치며 음을 빚어내듯, 그 가느다란 스위프가 내 마음의 표면도 쓸고 지나간 탓이리라. 그 스침으로 인해 오래 붙들고 있던 무거운 것들은 쓸려나가고 미처 보지 못했던 내면의 것들이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낸다. 음이 사라진 빈자리에는 오히려 더 선명해진 것들이 남았다.


Cello Sweep-

그 스침의 흔적이 남은 자리는 여전히 내 안에 남아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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