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잘 지내야 나도 잘 지냅니다. '
춘천시 꿈꾸는 예술터에서 진행한 '아트렉처콘서트 오늘의 예감' <진호의 책방> 공연 후기를 담고 있습니다.
춘천의 공기
춘천의 공기는 묘하게 단정하다.
강과 산이 맞물려 만든 숨결은 늘 고요하고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그 느린 리듬 속에서 나는 내 내면의 박자를 맞추며 신경을 잠재우곤 한다.
이곳에서는 예술이 특별한 일이 아니다. 그저 살아가는 일, 숨 쉬는 일이 일상의 곁에서 예술로 자란다.
이 도시에선 ‘예술을 한다’보다 ‘예술로 산다’는 말이 더 어울린다.
꿈꾸는 예술터
‘꿈꾸는 예술터’라는 공간을 찾았다.
교육지원청이었다는 건물은 딱딱한 골조에서 벗어나 예술을 품은 또 다른 공간이 되었다. 문을 열자 복도 끝에서 쾅쾅 튀는 관악기의 숨소리가 들려왔고 현악기의 실핏줄 같은 미세한 떨림이 벽에 부딪혀 파동의 무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아이들이 연습하는 소리에는 ‘예술의 온기’가 있었다. 완성보다 과정, 화음보다 진동- 그 소리들이 쌓여 예술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동 속에서 삶은 조금씩 아름다워진다.
공연을 알리는 안내가 나오자 센터장님이 무대에 올라 짧은 인사를 전했다. 공간에 깃든 철학과 공연의 맥락을 소개하는 몇 마디를 듣고 나는 공연장의 기류를 예감했다.
공기의 질감, 건물의 골조에서 뿜어져 나오는 채취, 창문으로 스며드는 바람까지―그 모든 것이 공연의 배경음이 된다.
“예술이 배움이 되고, 문화가 미래가 되며, 일상이 예술이 된다.”
소리를 감싸 안을 공기가 넉넉히 준비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과 활의 대화
공연은 『라틴어 수업』을 모티프로 책의 문장을 낭독하고 첼로가 그 여백을 메우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첼리스트가 무대에 섰을 때, 첼로의 현이 빛을 받아 미세하게 반짝였다.
빛이 파동으로 바뀌는 찰나를 보는 일은 언제나 경이롭다. 그리고 활이 현을 스칠 때마다 생기는 마찰의 소리, 그 찰나의 마주침이 공간에 일으키는 파동을 온 감각으로 느낀다. 그건 단순히 음악이 아니라 세상과 마주 서는 인간의 몸짓에 가깝다. 눈이 마주친 그 짧은 순간에 서로의 세계가 부딪히고 순간의 흔들림이 파문으로 퍼지듯, 활이 현을 스치는 그 짧은 순간은 문장으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소리로 태어난다.
사람도 음악도 결국 닿고 흔들고 잔향을 남기며 존재의 흔적을 남긴다. 닿기 위해서는 흔들려야 하고 흔들림 속에서만 서로의 존재가 증명된다.
언어와 소리가 교차하며 만들어낸 긴 대화를 들으며 나는 처음으로 ‘듣는다는 것이 읽는 것과 같은 행위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윤슬, 흘러가는 빛
자작곡 〈윤슬〉은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던 날, 마인강을 가로지르던 다리 위에서 느낀 감응을 기록한 곡이라고 했다. ‘젊음이 이렇게 흘러가는구나’ 하는 생각에 공항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한참을 울었다고 했다. 나 또한 인생의 레일 위를 겁 없이 달리던 젊은 날을 떠올렸다.
작년 이 곡에 잠식되어 있던 내 모습을 나는 농담처럼 ‘윤슬 병’이라 부르곤 했다. 이미 지나간 청춘의 파동이지만 그 빛은 여전히 내 안 어딘가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그 곡을 들으며 나는 그때의 나를 오랜 시간 조용히 쓰다듬어 주었다. 음악은 이렇게 이미 흘러가버린 감정들이 다시 숨결을 얻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대가 잘 있으면 나도 잘 있습니다
공연의 클라이맥스는 마지막 곡 직전 낭독된 편지였다.
독일 유학 중일 때 형이 진호 님에게 책 『라틴어 수업』과 함께 보낸 편지라고 했다.
“‘Si vales bene est, ego valeo.’
그대가 잘 있으면 나도 잘 있습니다.”
어린 진호와 형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 오래된 시간의 공기와 어린 형제의 숨소리까지 느껴졌다.
그리고 반 고흐의 편지가 생각났다. 이해받지 못한 예술가를 끝까지 믿어주던 동생 테오처럼 그 편지에도 애틋함과 그리움, 자부심과 신뢰가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형은 분명 그 책을 곁에 두고 밑줄 그은 문장을 떠올리며 편지를 썼을 것이라. 나 또한 친애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쓸 때 가장 감명 깊었던 문장들을 옆에 두고 그 안의 감정을 다시 녹여내곤 한다. 가족 간 서신이 아니라 삶과 예술에 대한 하나의 서정적 산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대가 잘 있으면 나도 잘 있습니다.’
이 마지막 문장의 잔향은 지금까지도 내게 강하게 묻어있다. 예술이란 결국 누군가의 마음에서 시작된 파동이 또 다른 존재에게 가닿아 조용히 세계를 흔드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춘천, 예술이 머무는 자리
'전생애 예술교육'
'예술교육으로 경험하는 생애 감각 서식지'
브로셔에 적힌 표현이 근사해서 따로 적어놓았다.
공연장은 단순한 교육 공간이 아니라 예술적 감각이 자라나는 생태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시기의 교육 프로그램이 아니라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일상이 예술이 되는 방식을 이 도시가 보여주고 있었다. 강가의 빛과 산 능선, 골목의 냄새, 공연장에 스치는 현의 잔향까지 춘천의 사람들은 그걸 오래전부터 자연스럽게 예술적 삶을 살아온 것 같았다. 내가 그날 느낀 ‘파동’도 그 서식지의 일부였을 것이다.
독일에서는 예술교육이 누구나 접근 가능한 보편의 제도로 자리 잡았지만 우리나라의 예술교육은 여전히 특정 계층의 문화자본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춘천에서는 이미 문화자본의 공공재화가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첼리스트 홍진호가 춘천 출신이라고 했다. 춘천이라는 도시의 존재 방식이 이렇다면 그의 음악적 감수성 또한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의 연주에는 도시가 품은 리듬과 온도가 자연스럽게 배어 있었다. 그리고 춘천 또한 그의 음 악이 스며든 곳이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