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쉐린 3스타 모수 레스토랑의 안성재 셰프 이야기
요즘 전국민에게 가장 인기있는 TV프로그램은 아마도 ‘흑백요리사’이지 않을까 싶다. ‘흑백요리사’의 의미는 소위 유명 셰프로 이름이 알려진 이들은 ‘백’의 요리사이고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은둔 고수들은 ‘흑‘의 요리사로 이들의 맛 대결로 진검승부를 보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람은 ‘백종원’ 선생님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심사위원 ‘안성재 셰프’인데 까다로운 평가와 카리스마로 요즘 가장 핫한 인물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종종 외식업에 대해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유명 셰프가 되려면 재능과 노력도 중요하지만 해외 요리학교의 어마어마한 등록금과 졸업 후 레스토랑 개업까지 계획하고 유학을 가다보니 집안의 재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성공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예전에 지인 소개로 셰프와 소개팅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사람도 엄청난 재력가의 자제였고 해외에서 레스토랑을 개업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당시에 소개해준 지인이 팍팍 밀어줘서 소개팅 이후 한 차례 더 만났고 또 만나려고 했는데 약속 날짜가 어긋나면서 그 사람은 마냥 기다리고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 사람이 작은 선물을 준비해서 기다렸다고 지인을 통해 들었지만 크게 호감을 느끼지 못했고 그렇게 소개팅은 흐지부지 끝났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인지 나는 안성재 셰프도 금수저나 은수저 정도는 되겠다 싶었는데 가난하고 어려운 시절을 지나 지금의 자리에 오른 의외의 인물이었다.
안성재 셰프는 12살 때부터 미국에서 이민생활을 시작했고 집안이 어려워서 미국 육군에 입대해서 이라크 전쟁 파병을 다녀온 경험이 있다. 실제로 그는 탱크랑 헬리콥터 정비병이 되려고 차량정비학교를 지원했다. 어느 날 차를 타고 가는 길에 하얀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몰려 있어서 차를 세우고 보려고 갔더니 요리학교('르 꼬르동 블루'의 패서디나 캠퍼스)였다고한다. 부모님이 식당을 운영하셔서 도와드리는 정도였지 전문 셰프라는 직업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그날 안성재 셰프는 ‘이거 한 번 해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차량정비학교에 입학을 취소하고 요리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당시에 그는 24세였는데 요리를 시작하기에는 다소 늦은 나이였다. 압학하고 돈이 없어서 인근 레스토랑에서 주방 보조 일을 하면서 학업과 식당일을 병행했고 너무 힘들어서 다시 정비공으로 갈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냥 끝까지 한번 가보자’하는 마음을 가졌다고 한다. 요리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서부에서 가장 비싼 레스토랑 중에 하나였던 베벌리힐스의 스시 전문점인 '우라사와’에서 파인 다이닝의 첫 커리어를 쌓게 된다. 처음에는 오너셰프 우라사와 히로유키가 안 받아 준다고 거절했는데 계속 방문해서 월급을 안 줘도 된다고 거듭 설득해서 2년 정도 일을 하게 된다. 하루는 방문한 손님에게 식사를 내드리는데 그 손님이 안성재 셰프에게 관심을 보였고 알고보니 그 손님은 나파벨리의 ‘더 프렌치 런드리’라는 유명 레스토랑의 수셰프 ‘이동민 셰프’였다. 그에게 까다롭게 굴었던 오너셰프도 적극적으로 안성재 셰프를 추천하였고 안성재 셰프는 이동민 셰프를 따라 프랑스 요리를 하는 파인 다이닝으로 옮긴다. 당시에 그는 신용 불량자였고 돈이 없어서 포도밭에 있는 오두막에서 월세 200달러를 내고 살았는데 동물도 지나다니는 그런 숙식 환경이었다고 한다. 그는 ‘더 프렌치 런드리’에서 꼬미 셰프로 시작해서 두 달 후에 셰프 드 파티로 진급했다. 그 후에 이동민 셰프가 개업하는 레스토랑에 오픈 멤버로 합류해서 한인 최초로 미쉐린 3스타를 획득하였고 ’아지자‘라는 모로코 레스토랑의 총괄 셰프를 거쳐 자신의 레스토랑 ‘모수’를 개업한다. 그리고 모수는 ‘흑백요리사’를 본 사람이면 다 알겠지만 국내 유일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이다.
그의 여러 성공 스토리가 있지만 특별히 이 대목에서 눈길과 마음이 사로잡혔는데 안성재 셰프가 요리학교 졸업 후에 ‘우라사와’에서 일하고 싶어서 ‘돈 안줘도 좋으니 일하게만 해달라’고 재차 오너셰프를 찾아가서 설득했던 부분이었다. '우라사와'에서 일한다고 해서 성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닌데 ‘돈을 안 받고 일하겠다’는 사람을 누가 말릴 수 있을까… 그 대목에서는 아무리 괴팍한 오너셰프였어도 안성재 셰프의 간절함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을 것 같다. 24살이 될 때까지 전문 셰프가 뭔지도 몰랐던 사람이 갑자기 무언가에 홀린 듯 인생의 방향을 전환하게 되고 자신이 가고자 하는 “그 길”을 위해 모든 것을 다 포기할만큼 뜨겁게 살아온 그의 인생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 사람은 진짜 자기의 인생을 살아보았구나’ 하는 깊은 울림이 있었다.
돈, 직급, 처우. 프로의 세계에서는 너무 중요하다. 이것 때문에 자존심이 살고 죽는다. 물론 당시에 안성재 셰프는 요리학교를 이제 막 졸업한 사회생활 초년생이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첫 취업을 성공해야 한다. 첫 취업이 중요하다. 첫 직장 연봉이 얼마냐‘ 등등 이미 인생 선배들로부터 많은 조언을 들었을 것이다. 이직할 때도 마찬가지로 연봉은 얼마인지 직급은 무엇이며 누릴 수 있는 복지나 혜택들은 어떻게 되는지 잘 알아보고 결정한다. 그렇지만 안성재 셰프의 인생에서 보았듯이 물질적인 것을 초월해버리는 갈망, 그것은 DNA로 부터 오는 것인지 그 사람의 자라난 배경에서부터 오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이미 그 자체만으로도 미쉐린 3스타에 버금가는 기백을 가진 것이나 다름없다. 프로들은 안다. 정신적으로 압도하는 사람, 그 사람이 진정한 승자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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