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아주머니와 함께 한 홈스테이에서의 첫 날들
프랑스에 도착하기 전, 차갑고 냉소적인 프랑스 사람들에 대한 약간의 걱정이 있었다. 본인들의 언어에 대한 자부심과 영어를 배우지 않아도 된다는 자신감이라고 할까. 프랑스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로부터 들었던 평가들이었다.
2017년 이곳에 대학원 공부를 위해 처음 도착하던 때, 아직 나의 프랑스어는 많이 부족한 상태였다. 한국에서 대학교를 다닐 시절, 여러 어학원에 등록하여 프랑스어 수업을 들어보고, 아프리카에서 근무할 당시, 프랑스 문화원에서 프랑스어 수업도 참가해 보았었다. 하지만 읽고 쓰기에는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지만 도통 말하는 데는 수줍음과 두려움이 먼저 찾아들며 많은 발전이 없었다.
그래도 나에게는 괜한 자신감이 있었다. 그동안 한국을 벗어나 약 7년이라는 시간을 다른 나라에서 생활하며 일해 본 경험으로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데 호기심이 많았다. 특히 언어를 배우는 데 수업시간 교과서로 습득하는 것보다, 그 나라의 사람들과 직접 만나고 생활하면서 부딪히며 배우는 것을 더 중요시 해왔다. 덕분에 아프리카 레소토와 보츠와나에서 근무할 당시, 영어로 공용어로 사용하는 나라들이었지만 오랜 시간 거주한 만큼 자연스럽게 현지어를 습득할 수 있었다. 이러한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장에서 부딪히며 배우자'라는 정신으로 프랑스어에 대한 많은 걱정 없이 이곳 프랑스에 도착했었다.
당장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을 빠듯한 일정으로 대학원 수업에 참가해야 했다. 다행히 학교 수업은 영어로 진행이 되었지만 세계 각지의 석학들이 모인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많은 노력이 따라야 했다. 학교 수업에 많은 시간을 뺏기지 않으면서 생활을 통해 내가 언어를 배울 수 있었던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그 첫 번째 시도는 프랑스인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는 것이었다.
파리에 도착하기 전, 한국에서 파리 홈스테이 사이트를 통해 이미 예약을 마쳤다. 오랜만에 학생의 신분으로, 그것도 낭만과 예술의 도시, 파리에서 생활할 것에 대한 설렘과 기대가 가득했다. 내가 선택했던 홈스테이 집은 학교에서 30분 이내 통학할 수 있고 파리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동네, 15구에 있는 아파트였다. 50대 초반의 아주머니가 혼자 살고 있는 곳으로 창문을 통해 파리 시내 전경이 보이는 완벽한 위치에 있었다. 8월의 무더움이 약간 남아있는 여름날, 두 손 양가 득 짐가방을 들고 홈스테이 집에 도착했다.
집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했던 것은 내 방을 찾는 것이었다. 집의 가장 안쪽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문을 열면 공동으로 사용하는 화장실과 욕실이 보였다. 하지만 방문을 열고 내 방에 들어가자 홈스테이 사이트에서 보았던 사진들과 다른 모습을 보고 놀랐다. 내 방 책상과 책장에는 온갖 소설책과 개인 장신구들이 가득 차 있었다. 분명 사진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나만의 공간을 채워나갈 수 있도록 텅 비어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홈스테이로 사용하는 2개의 방은 집주인 아주머니 딸과 아들의 방으로 나와 같은 유학생들에게 단기, 장기로 각 방을 빌려주고 있었고 그들의 짐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우선 가져온 짐을 풀고 내 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목을 채우러 공용으로 사용하는 부엌에 가서 물 한잔을 마시기로 했다. 싱크대 옆에 수돗물을 받아 둔 물병이 보였고 깨끗한 컵을 꺼내어 물을 따르고 있었다. 잔을 들고 물을 마시려는 내게 집주인 아주머니가 달려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이 물은 내 물이야. 너는 네 물을 마셔야지."
아, 분명 슈퍼에서 산 생수가 아닌 수돗물을 받아 둔 병이었는데...
당시, 머릿속에 하고 싶었던 말들을 프랑스어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짐을 풀기 위해 내 방으로 돌아가 하던 일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창문을 활짝 열고 정리를 하던 찰나, 내 방문이 바람과 함께 세찬 소리를 내며 쿵 하고 닫혔다. 이 소리를 듣지 마자 주인아주머니가 달려왔다.
"문을 이렇게 세게 닫으면 어떡하니? 문고리를 조심히 아껴 다룰 줄 알아야지."
아, 제가 일부러 닫은 게 아니라 바람이 불면서 문이 급하게 닫힌 거예요....
아주머니의 냉정하고 차가운 말투에 더 이상 말문이 막혀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하고 학교 개학에 앞서 몇 가지 처리해야 할 업무들을 준비하고 있었다. 주인아주머니가 옆에 와서 안부를 물으며 대화를 하려고 내 옆에 앉았다. 아주머니에게 '오늘은 학교 근처에 은행에 가고 휴대폰 개설도 하고 우체국도 가야 해요.'라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역시 부족한 내 실력으로 제대로 설명이 되지 않았다. 더듬더듬 거리며 내 이야기를 듣던 아주머니는,
"너는 프랑스어도 못하는데 우리나라에는 왜 왔지? 대학원 합격은 어떻게 한 거야?"
갑자기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내가 당당하게 합격한 대학원은 수업이 오직 영어로 진행이 되고 프랑스에 막 도착한 사람으로서, 앞으로 차근차근히 언어를 배워나갈 것이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역시나 더듬더듬 단어 하나하나를 겨우 연결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프랑스 사람들에 대한 차갑고 냉소적인 반응에 대한 평가가 떠올랐다. 진짜 프랑스 사람들은 차갑구나. 다른 나라에서 홀로 유학을 온 학생에게 위로의 말은커녕, 오히려 자신감을 위축시키려는 것인지 상처를 주는 말도 잘하는구나. 그렇게 많이 놀란 가슴을 달래고 앞으로 이어나갈 이곳에서의 생활에 더 긴장이 많이 되기 시작했다.
이미 선금으로 결제한 홈스테이 집에서 아무리 불편해도 남은 기간을 지내야만 했다. 매일 아침과 저녁시간에 주인아주머니와 얼굴을 마주칠 때마다 프랑스어로 대화를 이어나가는 데 계속해서 어려움은 이어나갔다. 하지만 점점 아주머니는 나의 서툰 프랑스어를 조금씩 이해하려고 했고 나 또한 학교에서 배우는 프랑스어 수업시간 도움으로 조금씩 대화를 하는 데 발전이 보였다. 처음에 가졌던 두려움과 긴장보다는 보다 자신 있게 내 생각과 의견을 전달하는 데 노력할 수가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내게 상처를 줬던 주인아주머니는 이제 나의 일상생활 대화 파트너로 자리하고 있었다. 오늘 수업시간에 무엇을 배웠는지, 어떤 친구들을 사귀었는지, 오늘 저녁은 무슨 요리를 준비할지 등. 서로의 일상 안부를 물으며 점점 더 서로에게 가까워지게 되었다.
홈스테이 아주머니 집에는 약 한 달 반 정도의 시간을 머무르게 되었다. 운이 좋게 주인아주머니가 소유한 파리 시내 원룸형 스튜디오가 월세로 나왔고 적당한 가격과 위치가 마음에 들어 당장 계약을 하게 되었다. 나의 원래 계획은 최소 3개월에서 6개월 홈스테이를 통해 현지 생활을 배워보고 싶었는데, 조용히 개인의 공간을 가지고 싶었기에 다른 방안을 택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의 또 다른 월세방 주인으로 홈스테이 집주인 아주머니와는 그 관계를 계속해서 이어나갈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 아주머니와의 첫 만남부터 학교 공부가 끝날 때까지 1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알고 지내면서 내가 가졌던 프랑스 사람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프랑스어를 못한다고 나를 무시하고 혼낸다고만 생각하며 이곳의 사람들을 무조건 차갑고 냉소적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홈스테이 집주인 아주머니를 포함해서 다른 프랑스 사람들을 알고 지내면서 이곳만의 독특한 문화를 알게 되었다. 이곳 사람들은 어린 시절 교육부터 직설적이고, 구체적이며, 비판적인 본인만의 사고방식을 전달하는 것을 몸소 익히며 배워왔다. 그 영향으로 본인의 생각과 느낌을 직설적으로 전달하는 데 아무 두려움이 없었다. 또한 남을 배려하고자 애매하게 전달되는 표현보다 확실한 의사가 전달될 수 있는 표현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