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ya Apr 15. 2020

파리에서의 첫 출근

프랑스에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지난 9개월의 프리랜서의 삶 후, 첫 직장이 생겼다. 


2년 전, 이곳에서 대학원에 다닐 시절, 딱 10살 어린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고 경쟁했었다. 그리고 공부를 마치고 사회에 나와 취직을 하는 과정에서도 어린 친구들과 경쟁을 해야만 했다. 20대의 어린 이들에게 내 나이는 회사 내 선배이자 매니저급이 될 텐데 난 어쩌면 이들보다 한창 어린 직급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그래도 내게는 새로운 출발에 대한 의미가 더 컸다. 내가 하고 싶은 분야의 일에 스스로에게 떳떳하며 자신 있게 받아들이고 싶었던 것은 다른 것들이었다.


' 한국 문화를 벗어난 환경에서 새로운 도전을 해 보고 싶었다.'

'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섞인 곳에서 일원이 되어 일을 해 보고 싶었다.'

' 내가 가진 외국어 능력과 소통능력을 활용하고 싶었다.'

' 지난 아프리카에서의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계속 국제기구의 일을 배워나가고 싶었다.'

' 누군가에게 내 직업이 도움이 되는 일이기를 바랐다.'


이렇게 가슴속 내가 가지고 있던 시작에 대한 의미를 다시 새기고 첫 출근을 준비해 보았다.


Paris @Juyapics 2017


여유롭게 출근하는 사람들의 모습,


지난 1월 16일 목요일 첫 출근을 준비하였다. 오전 9시 30분에서 10시 사이에 도착하라는 메시지를 받고 지난밤 10시부터 일찍 잠에 들었다. 사무실이 위치한 파리 시내에서 약 1시간의 출퇴근 시간이 소요되는 외곽지역에 살고 있기에 아침 출근길을 여유롭게 준비하고 싶었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9시 30분경 사무실에 도착했다. 나를 반겨주는 직원은 한 명이 전부, 텅 빈 사무실이었다. 크리스마스와 새해 연휴를 포함해 아직 휴가 중인 직원들이 많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10시가 넘으니 몇몇 직원들이 출근하기 시작했다. 오전 10시가 넘어 여유롭게 출근하는 직원들의 모습을 보며 정확한 출근시간이 몇 시인지 궁금해졌다. 이곳은 지각이라는 개념이 없는 것일까?


출근길, 회사 입구에서부터 출근 도장을 찍고 정확하게 지각을 점검하는 일반적인 회사의 모습이 떠올랐다. 엄격한 직장구조가 올바른 모범은 아니지만 한국에서나, 지난 아프리카에서나 규율이 갖춰진 방식에서 일해 오던 모습이 내게는 익숙했다. 하지만 이곳 프랑스에서의 출근 모습은 달랐다. 지각이라는 개념보다는 스스로가 정해둔 자유로운 출, 퇴근 시간을 지키는 모습이었다. 그 자율성이 내게는 신기하며 새로웠다. 분명 개개인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추구하는 모습이 직장 내 업무의 효율을 높이는 것이라고 글을 통해 많이 접해 왔는데, 막상 내게 그 환경이 주어지니 신기했던 것이다. 


10시가 넘어 도착한 직원들과 마침내 서로의 인사를 나누고 간단한 자기소개를 마쳤다. 내가 면접을 할 당시 직접 만났었던 기관 대표는 휴가 중이었고, 같이 있었던 다른 한 직원은 지난달 말 기관을 떠난 상태였다. 그래서 첫 출근 날, 나를 맞아준 직원들은 모두 새로운 얼굴에 누가 누구인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서로에 대해 아직 잘 알지 못한 채, 한 직원이 내게 와서 업무에 관한 설명을 해주려고 했다. 하지만 그전에 다른 조언을 먼저 전해주려고 한다. 


‘우리 사무실은 모두 반말을 사용해요. 말 편히 하면 돼요.’


프랑스어에도 분명 상대방에 대한 예의로 존칭 표현이 존재한다. 반말을 사용하기에는 아직 서로의 나이와 직책을 모르는데 바로 반말을 사용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잠시 두려운 호기심도 들었지만 이미 반말로 나에게 편하게 다가온 그들에게 나 또한 자연스럽게 마음을 열고 ‘당신’ 대신 ‘너’로 호칭을 바꾸어 보았다. 서로의 호칭을 친구처럼 편하게 시작한 후, 전반적인 업무 내용을 소개받았다. 기관 내 현재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 소개와 함께 이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는 직원 구성을 간략하게 알려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또 놀라웠던 사실은 조직 내 직책 서열을 굳이 강조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부장님, 팀장님, 대리님 등 서로의 직책을 부르며 서열이 정해지는 형태보다 각자가 지닌 업무의 내용으로 소개되는 것이었다. 나이가 많아도 나이가 너무 어려도, 직책이 높아도 직책이 낮아도,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우리’라는 공동의 목적으로 괜한 허례허식을 생략하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조금은 색다른 첫 출근길을 잘 마치고 다음날들을 기다려 보기로 했다.




작가의 이전글 21세기 레 미제라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