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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tal Eclipse May 02. 2024

Noir - Ⅰ

-태백시






  '그저 그런'은 이럴 때 딱 들어맞는 수식어다.


 그러 그런.

 아나운서다.

 나는 그저 그런 KBS 아나운서다.


 특별히 목소리가 좋은 것도 아니고 외모 역시 자랑스럽지 못하다. 설상가상으로 지방에 아나운서가 따로 있는 줄도 몰랐을 정도로 한심하고 또 무지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나를 합격시켜 준 면접관을 탓할 수는 없다. 얼마나 고마운 분들인가. 곧 닥쳐올 외환위기를 눈치채지 못한 채 호경기라 착각했던 때라 공채의 규모가 컸기 때문이다. 운도 좋았고 궁합이 맞는 면접관을 만난 덕이라고 결론짓는다. 그리고 지금까지 어떻게든 꾸역꾸역 일을 하고 있다. '그저 그런 아나운서'는 이럴 때 딱 들어맞는 설명이다. 자기비하할 생각은 없다. 모자란 것 투성이지만 특정 장르의 방송만큼은 누구 앞에서라도 고분고분 고개 숙이기 싫으니까.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따라잡기 벅찬 방송환경과 더 자랑스럽지 못해지는 외모는 작지 않은 부담임에 틀림없다. 갱생이 필요하다.   

 첫 발령지가 정해졌다. 지금은 없어진 KBS 태백방송국이란다. '태백', 들어는 봤어도 가보지는 못했던 곳. 아나운서가 된 게 어딘데, 강원의 깊은 산 속이어도 상관없었다. 아랫동네에서 산 과자봉지가 어느새 빵빵하게 부풀어버리는 해발 700미터의 감춰진 마을. 그 후 1년 반 동안, 나는 하늘아래 가장 순수한 고장의 품에서 꿈을 꾸었다.  


 고향을 찾을 땐 연어의 뇌가 이식된 느낌이다. 몸이 태어난 물리적 고향이 아닌데도 연어는 그곳으로 향한다. 의자 위에 올라가서도 뒤꿈치를 들어야 가까스로 손에 닿는 소중한 그것. 나만의 은밀한 장롱 위의 보물상자가 곧 하늘아래 첫 동네다. 태양과 가까워 지극히 희고 밝았던 그 '太白'으로 다시 거슬러 오른다.    


 발전이 더디거나 후퇴하고 있는 도시에서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위안은 예전 기억 그대로를 소환하기 쉽다는 것. 도로와 건물이 수 십 년 전과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신입 시절 매일같이 걷던 그때 그 길이 생생하다. 한때 10만 명을 넘던 인구가 4만 명 미만으로 떨어질 정도로 쪼그라들었으니, 황지동의 번화가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다. 심지어 옛 방송국 터에는 고층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이 시점에 분양이나 잘 될 수 있을까... 오지랖이 넓어진다.     

 

   태백시 황지동 


 검은 황금, 석탄의 채굴 붐으로 각지에서 사람들이 자석에 철가루 달라붙듯 모여들었다. 그 결과 삼척군이었던 황지읍과 장성읍이 합쳐져 1981년 태백시로 승격되었다. 승격 당시 인구는 11만 4천여 명. 지금의 네 배에 달했으니 석탄산업의 파괴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전 세계적인 에너지원은 각 시대에 개발 가능한 그 무엇일 수밖에 없다. 오염과 폐해를 불러오는 자원이라며, 검댕이 묻어 나오는 구시대의 자원이라며 석탄을 폄훼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렇게 따지면 석유라고 다를 게 없다. 액체의 형태로 존재하는 석탄 아닌가. 어차피 탄소의 집합체니까. 먼 미래 완벽히 청정한 에너지원만을 생산하는 시대가 되더라도, 조상들로 하여금 번성하게 했던 물질에는 경외감을 표해야 마땅하다. 쇠락하고 있는, 쇠락해야만 하는 자원임엔 분명하지만 석탄 생산의 현장만큼은 길이 남기고 활용하자는 소리다.  

 영국에서 비롯된 건 수상한 편지나 돌림 문자만이 아니다. 최초의 산업적 광산개발도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산업혁명의 원동력이었던 만큼 '혁명적'으로 생산이 이루어졌다. 광산의 소유주와 노동자 사이 갈등과 투쟁 등 영국에서도 아픈 역사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우리나라 석탄생산의 역사는 석탄의 깊은 검정만큼이나 어두웠고 처절했다. 일제의 자원수탈 야욕이 우리 광부의 폐 속을 검댕으로 가득 차게 만들었다는 억울함 때문일 것이다. 그들의 공장이 돌아가고 그들의 가택을 따뜻하게 덥혀주기 위해 피고름을 짜내고 목숨을 단축한 것은 우리라는 지독한 억울함. 일본이 아니었으면 석탄이라는 자원을 개발하지 못했을 거라는 무지한 의견엔 빙긋이 웃어넘길 뿐이다. 대한제국 시절 탄광개발의 잠재력이 있는 곳을 조사해 강원도 삼척과 정선, 경상도 경주와 울산, 함경도 영흥, 길주 등을 광산 개발 적지로 점찍었다는 1905년 1월 23일 자 황성신문의 보도를 비롯해, 우리 국토자원의 개발의지는 우리가 갖고 있었다는 분명한 증거들이 차고 넘친다. 그 말인즉슨, 굳이 일본이 아니었더라도 탄광은 어차피 우리 손으로 개발될 운명이었다는 이야기다. 석탄의 귀중함도 모른 채 일제가 광산을 찾아내는 것을 넋 놓고 앉아 지켜본 것은 아니라는 소리다. 

   그럼에도 을사늑약 이후 일제의 착취와 수탈은 씻을 수 없는 비극이다. 자원을 강탈당한 비극보다 수탈한 자의 논리와 언어가 수탈당한 자의 뇌리에 주입되기에 진정한 비극인 것이다. 함마(망치), 노미(정), 노보리(경사진 상승 갱도)와 같이 단순히 탄광에서 사용한 용어들이 문제가 아니다. 광부를 일컬을 때와 추켜세울 때 주로 표현되었지만, 분야를 막론하고 쓰였던 '산업전사'란 무시무시한 말이 대표적이다. '각 분야에서 힘껏 일하는 사람을 비유하는 말'이라고 정의되어 있는데, 일상적으로 종사하는 산업의 '일꾼'도 아닌 무려 산업 '전사(戰士)'라니. 오버도 이런 오버가 없다. 산업전사는 일본 제국주의가 태평양전쟁 시 각 분야에서 필요한 노동자를 동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용어다. 승전을 위해 거룩한 노동을 바쳐라! 군인은 물론 농부도 광부도, 심지어는 위안부도 전투를 치르듯 전사의 심장으로 각자의 일에 분투하라!  

 치가 떨리는 것은 오히려 해방 이후다. 쓰레기통에 처박았어야 할 '산업전사' 호칭은 좀비처럼 살아남아 오히려 위세를 떨쳤다. 그것도 우리 정부의 의지로. '당신들은 일제가 시켜서 하던 그대로, 아니 나라가 발전해야 하니 지금보다 더 뼈 빠지게 일하면 되는 거다. 전투를 치르듯.' 국민을 억압하던 제국주의 용어를 산업발전의 명목으로 도용하다니, 비겁해도 너무 비겁하다. 전쟁은 끝났어도 우리 산업의 역사는 노동자가 아닌 전사들의 역사인 것이다. 동해에서 태백시내로 들어오는 초입에 서 있는 산업전사 위령탑은 탄광사고와 작업의 후유증으로 숨진 영혼들의 정체성을 숨김없이 나타낸다. "당신들은 노동자로 일하다 숨진 사람들이 아닙니다. 후퇴할 도리 없이 암흑을 파고 살아간 전사로서 덧없이 희생되었을 뿐입니다."   

      

 태백 산업전사 위령탑


 2024년 6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석탄공사 산하 장성광업소를 폐광 직전에 찾았다. 장성동과 굴착으로 이어진 철암동의 갱 입구와 선탄시설을 둘러볼 수 있었다. 36년을 광부로 일했다는 해설사 분의 안내만큼 생생한 현장의 안내가 세상 그 어디에 있을까. 시설 위주의 설명이 아니었다. 몸소 경험했던 광부들의 일과를 풀어내는 '이야기'였다. 코스가 진행될수록 운동화는 검어졌고 눌러쓴 안전모는 이상하리만치 중력을 가중시켰다. 적당히 내리는 비는 땅에 닿자마자 검은 시냇물로 변해버렸다. 수 십 년간의 채굴로 자연스레 얻은 진폐증 탓에 해설사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고도가 높아질수록 걸걸해졌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간격은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광부의 입장이 되어 보려는 시건방진 태도를 취해보려 하다가도 이내 고개가 떨구어졌다. 공감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정서가 아닌 것을. 검은 뱀이 되어 흘러내려가는 빗물 속에 내가 있었다.  

   

 

태백 장성광업소 산하 철암탄광의 갱도입구와 선탄시설


 태백의 여름은 별다르다.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되고 있다지만 아직까지는 여전히 상쾌하다. 시내에 에어컨을 파는 곳이 없을 정도였으니까.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가전사들의 공습과 상관없이 누구나 청량한 여름을 체감할 수 있다. 태백의 겨울은 계절의 지배종이다. 일 년 중 거의 절반을 뒤덮는 느낌이다. 다행스럽게도 가차없음의 겨울이 아니다. 얼어붙을 것 같은 공기조차도 사납지 않고, 산골 도시에 내리는 눈은 두꺼운 이불의 감성이다. 눈이 그치고 나면 하늘의 별들은 왜 그리 야구공만 한 지. 겨울 태백은 동화 속 작은 나라와도 같다. 공기가 차가운 것도, 눈의 이불이 두꺼운 것도, 하늘의 별이 야구공인 것도 결국은 천상과 맞닿은 고장이기 때문이다. 하늘아래 첫 동네는 태백이다.  

 황지공원 황지연못


 태백 하면 황지연못이다. 시내 어디를 구경할지, 무얼 먹을지 모르겠다면 무조건 목적지는 황지연못. 헤맬 필요가 없다. 깔끔하게 조성된 공원이 못을 감싸고 있다. 하늘아래 첫 동네 선민들의 휴식처이자 방랑객들의 탐방처. 표지석에서 볼 수 있듯 천 삼백리 낙동강의 물길이 이곳 황지에서 솟아 나와 생애를 시작한다. 1천2백만 경상도민들이여 태백에 경의를 표하라. 근원으로서의 태백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시내의 북서쪽 창죽동에는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가 금대봉 자락에서 힘차게 물길을 쏟아내고 있다.  2천3백만 수도권 주민들이여 태백에 영광의 기도를 올려라.


  기나긴 설국의 터널에 들어선 1996년 초겨울, 입사 4개월의 넘긴 신입 아나운서는 모든 것이 그저 아름다울 뿐이었다. 직장인의 때가 제대로 묻기 전 무해한 태백의 기운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일찌감치 퇴근해 자취방의 TV를 켜자마자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하고 물을 새도 없다. "영재야 비상이다. 탄광 매몰사고가 나서 구조대들이 모조기 통보광업소로 가고 있거든, 미안한데 나 좀 도와주라." 동기 기자의 절박한 외침이었다. 취재기자, 촬영기자 한 명씩에 어두워진 갱도 속을 비추려면 누군가 조명을 비추어야 하는 상황. 부리나케 현관을 뛰쳐나가 지금은 폐광된 태백 통보광업소로 '출동'했다. 한 시간여쯤 지났을까. 잠잠하던 갱도 입구 쪽에서 웅성대는 소리가 들렸다. 구조대가 매몰됐던 광부 한 명을 발견해 나오고 있다는 속보 중 속보. 부디 무사하기만을 바라며 서둘러 조명을 켰다. 최대한 갱의 입구를 비출 수 있도록 팔을 높이 치켜들었다. 구급대와 취재진들이 뒤엉켜 불빛이 어지럽게 나풀거렸다. 사람들이 어깨를 밀치는 소리가 이렇게 크게 들렸던 적은 없었다. 무언가 보였다. 검은 막장 속 흰색의 물체가 둥둥 떠 있었다. 들것을 덮은 하얀 천이었다. 덮인 것은

  

 시신이었다.  


 검정 속 흰 빛. 색의 극한 대비가 생과 사를 가르는 오묘한 경계가 된다. 이게 뭔가. 밝은 빛에 덮여 왔으면 살아남아야 하는 게 아닌가? 막장의 고뇌를 이렇게라도 벗어났기에 이제는 영혼이라도 편히 쉬라는 뜻의 밝음인 것인가. 크게 밝은 태백에서 순진한 신입은 처음으로 고통의 검정을 맞닥뜨렸다. 온통 백색뿐인 아련한 겨울왕국은 흑색 막장의 고통 위에 세워진 세상이었다. 태백이라는 이름의 아이러니라니. 

 살아가야 한다, 그래도. 검디 검은 연탄으로 우리는 따습게 방구들을 덥히지 않았던가. 아프고 괴로운 검정이 바탕에 깔려있어도 세상 밝은 희망으로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장차 그저 그런 아나운서가 될 신입 아나운서 녀석은 순간 예감한다. 언젠가 연어가 되돌아가듯 검어서 더 환한 이곳을 다시 거슬러 올라오게 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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