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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tal Eclipse Jul 02. 2024

다시 그날이군요

-강릉단오제






  아직도 사무실 벽엔 커다란 종이 달력이 못에 걸려 있다. 제2금융권에서 매년 보내주는 단순미 넘치는 달력. 시력의 차이가 무색하게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숫자가 통쾌하다. 탁상 캘린더는 날짜 아래 이것저것 채워 넣을 스케줄이 많아 쓸모가 상당한데, 벽걸이 달력은 통쾌하지만 장식용일 뿐이다. 그 자리에 없으면 서운해서, 왠지 그게 있어야 일하는 공간인 듯해서 그냥 거기 걸어놓는 것이다. 

 한 달에 한 번 달력을 찢는다. 탁상용에선 느낄 수 없는 짜릿함이다. 지난달을 찢어야만 새 달이 찾아온다는 전능한 기운이 마치 닥터 스트레인지가 된 듯하다. 규칙이 있다. 절대 미리 뜯지 않는다. 31일이라도 금물이다. 정확히 매달 1일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과거가 되어버린 전달의 달력 한 장을 "쫘~~ 악!"  날려버린다. 징크스까지는 아닐지라도 매달 초하루 그렇게 해 왔다. 누군가 미리 달력을 뜯어 다음 달 숫자들이 보이는 날엔 그래서 썩 기분이 좋지 않다. 깐깐한 사람이라는 눈총을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고백을 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남아있는 시간들에 대한 존중. 5월이 막을 내리는 순간은 자정이 되어 31일과 1일이 교차하는 바로 그 찰나일 텐데, 31일 아침에 5월의 사망을 선고할 수 없는 일이다. 버젓이 살아있는 31일이라는 생명에 더해 하루하루를 담고 있는 5월 한 달의 명예에 먹칠을 하는 짓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나. 과거와 과거가 달려온 현재에 예의를! Please be polite to your days!

 매달 1일 달력 뜯기의 철칙은 굳건하지만, 유독 벽걸이 달력 앞을 수차례 오가며 다가올 무언가를 확인하는 부산스러운 철이 있다. 1년 중 꼭 이맘때, 4월에서 5월이 그렇다. 단오가 음력 5월 5일이니 양력으로는 보통 5월 말에서 6월에 찾아오기 때문이다. '이번 단오제는 언제부터지?' 무서운 것은 이렇게 매년 늦봄 달력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습관을 모든 강릉시민들이 갖고 있다는 사실. 단오제와 얽히고설킨 집단 무의식은 축제 한참 전부터 슬그머니 피어오르는 것이다.

신주미 봉정 자루와 신주교환권


 강릉 하면 단오제. 너무 뻔하다. 뻔하다는 것은 도리어 막강하다는 뜻이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정도로. 뻔해서 더 알릴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 무려 유네스코가 인정한 강릉단오제는 쌀독에 쌀을 채움으로써 시작된다. 음력 4월 5일, 그러니까 단오 한 달 전 신주(神酒) 빚기에 쓸 원료를 모으는 작업이다. 신주미 봉정 자루에 쌀을 꽉 채워(3kg) 가족의 기원을 적는 동봉된 양식과 함께 동 주민센터 등에 접수하면 신주교환권을 받을 수 있다. 한 자루에 한 장. 교환권 두장을 얻으려 집의 쌀을 거덜내고 말았다. 신주 두 통을 받을 수 있는 6kg의 쌀은 엄청난 양이었다. 그래도 한 통은 정이 없다는 걸 우리는 안다. 섭섭하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다. 모두의 정성으로 모인 쌀은 강원 영동지역의 막걸리 시장을 압살하는 '사임당 막걸리'로 보내져 매년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출하된다. 주당들의 군침은 출시 한 달 전부터 입 안을 돌고 돈다. "작년보다 생산이 조금 더 된다는데?", "올해 신주는 목 넘김이 끝내줄 거라는데?"... 근거 없는 추측과 분석이 난무하는 단오 직전 강릉시내의 풍경이다. 축제가 시작돼야 비밀의 맛이 밝혀지는 법. 섣부른 예상은 접어두고 그저 기다리는 것만이 미덕이다.  

                   신주 빚기가 진행되는 칠사당


 강원도 유형문화재인 조선시대의 관청, 칠사당에서 신주 빚기가 진행된다. 솔잎을 넣고 물을 끓인 후 항아리를 거꾸로 세워놓는다. 가마솥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로 항아리 안을 소독하기 위해서다. 정갈하면서도 솔향이 은은하게 밴 술독으로의 변신이다. 더욱 기다려지는 신주의 풍미! 신주 빚는 날의 백미는 무녀와 제관들의 부정굿이다. 사진에서 굿을 하는 제관들이 입에 하얀 물체를 물고 있는 것이 보인다. 막간 퀴즈. 그들은 무엇을, 어째서 입에 물고 있는 걸까?  

 하얀 것의 정체는 '하미'라고 하는 접힌 한지. 입에 하미를 물고 있는 까닭은 대형마트 식품 코너에서 유추해 보자. 그렇다. 술을 담그는 동안에 침이나 부정한 물질이 섞이지 않기 위해서다. 조리용 위생마스크의 원조이자 클래식 버전. 다른 점은 입 안에 물고 있으니 말 한마디도 할 수 없다는 거다. 시식 가판대에서 소시지에 이쑤시개를 꽂으며 구사하는 아주머니(with 마스크)의 현란한 말솜씨를, 제관들에게서는 도무지 바랄 길이 없다.    

대관령 숲 속의 산신각과 국사성황사


  신주 빚기 열흘 뒤인 음력 4월 15일에는 대관령 자락이 시끌벅적하다. 강릉단오제의 호스트인 국사성황에게 제를 올려야 하니까. 여기에도 순서가 있다. 서열상 한 끝 위인 산신각의 산신에게 먼저 제를 올린다. 천신과 산신이 우선이고, 그 아래가 인격신인 국사성황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전각의 규모가 거꾸로 된 것 아닌가. 성황사에 비해 지나치게 단출한 산신각의 모습이다. 멀리서 줌아웃으로 바라본다. 왼쪽 아래에 있는 성황사보다는 산신각이 십여 미터 위에 돋아 있다. 그래, 덩치보다는 높이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대관령 국사성황은 범일국사다. 선종의 구루이자 굴산사의 창건자. 그렇다면 이 위대하신 범일국사가 경례를 올려붙여야 할 산신의 정체가 궁금하다. 강릉시민 외의 많은 분들은 화들짝 놀랄 수도 있다. 그 역시 실존인물. 바로 삼국시대의 슈퍼스타, 김유신 장군이다. 그분이라면 제사 먼저 지낼만하겠다. 오케이, 인정. 그런데 참 뜬금없다. 김유신 장군이 왜 서라벌이 아닌 대관령의 신이 되어 있는 걸까? 역사기록을 보니 김유신은 어려서 명주(溟州-강릉지역의 옛 지명)에 와 산신에게 검술을 배웠고, 무공을 쌓아 삼국통일을 이루어냈다고 한다. 그러니까 강원도의 깊은 산골로 무술 유학을 온 셈이다. 대관령은 삼국통일의 씨앗을 잉태한 공간이었고, 김유신은 세계 최초의 유학생 산신령이 되어버렸다. 역사와 신화의 예상치 못한 콜라보! 

 산신령님은 고이 모셔 두고 국사성황인 범일국사를 모시고 대관령을 내려온다. 국사성황행차다. 강릉시내로 내려온 성황은 외롭다. 호랑이에게 물려가 뜻하지 않게 여성황이 되었다는 정 씨의 딸과 1년 만의 해후는 견우와 직녀의 운명과도 같다. 여성황사에서 만난 두 분은 올해도 단오제를 흐뭇하게 지켜보시겠지. 마음이 바쁘다. 얼른 축제 속으로 뛰어들고 싶다. 영신제를 시작으로 강릉단오제는 막이 오른다. 시민들이 성황신들에게 홀리는 시간이 왔다. 

남대천 둔치 강릉단오제 현장


 음력 5월 5일은 덥다. 온난화가 점증되는 까닭에 해가 갈수록 이른 더위도 기승이다. 음력이 아닌 양력 5월 5일이었으면 딱 좋았을 것을. 아니다. 하늘 같은 어린이들을 생각하면 망발이다. 어쨌든 단오제를 즐기기 위해서는 주르륵 흐르는 땀쯤은 각오해야 한다. 도리어 덥지 않게 단오제를 보냈다면 강릉에서는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단오는 더워야 제맛이다! 

 올해도 남대천 변을 걷고 있지만 신기함은 매년 되풀이된다. 전국의 그 많은 곳 중 왜 강릉에서만 이렇게 단오에 집착하는 걸까. 설과 추석이면 충분할 것도 같은데. 지역에 따라 단오제를 규모 있게 치르는 도시도 있다고 하지만 이건 오버가 아닌가. 유네스코도 혀를 내두르며 무형문화유산으로 인정할 정도였다니 오버를 해도 정도를 넘은 셈이다. 전문가들은 강원도의 혹독한 겨울 추위에 주목했다. 이상고온이 적었을 그 옛날, 세찬 칼바람과 폭설로 목숨까지 위태로웠던 강원도민들은 간절히 봄날을 기원했다. 수확의 계절, 추석이 문제가 아니었다. 땡스기빙도 사람이 살고 봐야 하는 거니까. 궁핍과 움츠림으로 어느 지역보다 따뜻함이 그리웠던 강릉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했던 건 충천하는 태양의 기운이었다. 단옷날이 반가웠을 수밖에.  

 우리말로 단오는 '수릿날'이다. '수리'는 높다는 의미라고 하니 높게 뜬 태양이 양기를 내뿜는 날이 곧 수릿날이다. 겨우내 땅속에 뿌리를 박고 있다가 5월이 되어 잎을 띄운다는 수리취 나물은 단오의 상징. 그래서 단오장에선 무료로 나누어주는 수리취떡을 반드시 먹어야 한다. 

 그러고 보니... 높게 떠서 독'수리'인가? '수리수리 마수리'는?              

줄을 서서 맛보는 단오장의 수리취떡

                

강릉 단오장에선 이불 쇼핑


 계절의 교차점인 단오 즈음에 침구를 바꾸는 습관이 굳어져 그렇다고 하지만 단오장엔 전국의 이불도매상들이 단합대회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모여든다. 헤아릴 수 없는 여름 이불과 침구세트가 꽤 저렴한 가격에 주인을 기다리고 있고, 단오장에서 이불을 사면 대박이 난다는 믿음으로 인근 숙박업소들의 큰 손이 위력을 발휘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믿거나 말거나. 팁 하나! 단오제가 끝나고 막 철수를 앞둔 점포로 가 보자. 파격 라스트 세일의 기회다. 

교환권으로 신주를 받을 수 있는 강릉단오제 전수교육관


 떨린다. 족히 서른 끼는 될 고봉밥을 포기하고 쌀통을 박박 긁어 고이 바친 정성은 오직 이 순간을 위한 것이다. 교환권 없이 그해의 신주를 맛볼 수 있는 사람은 셀럽들 뿐이다. 셀럽은 될 수 없으니 쌀을 바칠 수밖에. 단오제가 열리는 남대천 둔치 길 건너 단오제 전수교육관 앞 천막으로 간다. 드디어 올해 단오제의 한정판, '솟아라, 단오' 리미티드 에디션의 실물 영접이다. 신주 두 통을 감사히 받고 고이 모셔 다리를 건넌다. 세상을 가진 기분이다. 크하하. 이런 축제가 지구상에 또 있을까? 프랑스 보르도에서 농민들이 수확한 포도를 한데 섞어 와인을 만들어내거나 스코틀랜드의 싱글몰트 주산지에서 여러 양조장들이 발효시킨 맥아를 혼합해 위스키를 제조하는 축제가 있다는 건 들어보지 못했다. 물론 그랬다간 천인공노할 짓이라며 손가락질받을 것이 뻔하다. 거듭된 선별을 거친 재료만이 보르도 와인이나 스카치 싱글몰트 위스키의 명성을 보증할 테니까. 증류를 거치지 않고 '막' 걸러내는 막걸리여서 가능한 과감한 십시일반이다. 어우러짐의 통쾌함이다.

 허나 침대에서 떨어져 단잠을 깨듯 단박에 몰아치는 충격적 반전.

  뿌듯함으로 신주를 받아오니 누군가 그런다. 단오 신주는 품질관리가 중요해 별도의 균질한 쌀로 만든다고. 시민들이 모은 쌀은 사실 단오장에서 공짜로 나눠주는 수리취떡 재료로 쓰이는 거라고. 이게 무슨 소리인가? 우리가 모은 쌀로 만든 술이라 맛이 일품이었던 건데, 그게 아니었다고? 여기저기 하소연하듯 진실을 캐묻고 다녀도 판단이 서질 않았다. 누구는 그 말이 맞다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단오의 취지가 그러니 우리가 모은 쌀로 만든 게 맞다고 했다. '난 정말 다리 밑에서 주워온 존재인가...' 태어나 처음 맞닥뜨린 혼란에 비견할 정도. 당황스러움을 억누르고 생각해 본다.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내 손에 들린 이것이 신주라는 건 변함이 없지 않은가. 돌아가신 신영복 선생은 그런 말을 하셨다. 문사철(文史哲)은 이성과 사실, 추상력의 추구이고, 시서화(詩書畵)는 감성과 진실, 상상력을 키우는 발로라고. 그러면서 사실이란 작은 레고 조각에 불과하고 그 조각들을 모으면 비로소 진실이 된다고 할 수 있으며, 시는 언어를 뛰어넘고 사실을 뛰어넘는 진실의 창조인 셈이라고. 그러니 한 사람 한 사람이 전달하는 봉정미는 파편적 사실에 가깝고, 집단의식의 결정체인 신주는 곧 절대적 진실이 아닐까. 사실은 진실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적어도 신주를 받아 든 이는 시를 짓는 상상의 날개를 달아야만 한다. 뚜껑을 열어 은하수같이 아름다운 신주의 물줄기를 탁주잔에 받아 든다. 오소소한 긴장감과 함께 이어지는 서늘한 목 넘김.


"캬하~~~~~~~"


 달보드레.

 웅숭깊다.  


 무수한 내가 모은 쌀로 만든, 무수한 내가 빚어낸 술이 맞다. 잔 속에도 은하수, 저 하늘에도 은하수.

 이게 진실이다.


 경건한 마음으로 축제를 열었으니 됐다. 이것저것 고민하지 말고 모여 놀아야 한다. 강릉 남대천의 밤은 누구도 말릴 수 없다. 한낮의 더위도 어둠 속으로 꼬리를 내리고 둔치에는 선선한 바람마저 불어온다. 극소수만이 즐길 수 있는 신주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취기가 돌고 나면 어차피 위장의 명주 판별능력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커다란 웃음소리가 들리는 곳을 돌아보면 어김없다. 단오장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의 반갑기 그지없는 회포의 터짐이다. 강릉단오제에서 아는 사람을 마주치지 못했다면 인생을 헛 살아온 사람이라는 소리가 있다. 물론 관광객은 제외하고. 그래서 주변의 인싸들과 단오장을 거닐기라도 하면 걸음은 자꾸 단속적이 된다. 전진이 이렇게 힘든 일이었다니. 아싸의 부러움을 감지한 인싸는 괜스레 미안한지 막걸리와 감자전 세트를 사겠다고 선언한다. 마다할 이유 없다. 인싸는 인싸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이다. 어울렁더울렁 단오장은 별천지가 된다. 모두의 사연이 하나씩 반짝이며 어두운 밤하늘로 둥실 떠오른다. 

     

 변방의 열등감 따위는 없다. 1년에 한 번. 강릉시민들의 무의식 속에는 언제나 단오가 깔려 있다.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축제는 될 수 없을지라도, 세상에서 시민들이 개막만을 기다리는 축제로 따지면 2등도 억울하다. 강릉단오제의 완벽에 가까운 시민 전승 이유는 두 가지라고 본다. 첫째, 제례의 신화 공간이 현재에도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산신과 성황신을 모시는 대관령 산신각과 국사성황사가 건재하다. 더구나 실존 인물을 신격화했으니 뜬구름 잡는 허구의 공간이 아니다. 비록 높이 솟은 아파트 숲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여국사성황당도 현존하며, 성황신인 범일국사의 본거지, 학산의 서낭당도 굴산사지의 영광과 함께 하고 있다. 명백한 제례의 배경과 실제인 축제의 현장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한 치의 오차 없이 서로를 지탱한다. 두 번째 이유도 어찌 보면 첫 번째 이유의 확장판이다. 우리는 수평으로 1km를 가야 한다 하면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슬슬 걸어가도 금방 닿을 거리니까. 고작 그 정도 걸어봤자 살이 빠질 리도 없다. 만약 그 1km를 수직으로 세워놓는다면 어떨까? 해발 천 미터. 까마득하다. 게다가 꼬불꼬불한 산길로 가야 한다면 사람이고 자동차고 고생깨나 해야 하는 거리다. 중력을 거스르는 압력은 고스란히 무릎 연골조직에 좋지 않은 징후를 가져올게 뻔하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수직의 끝은 고매하고, 그곳에 올라 내려다보는 사바세계의 보잘것없는 모습은 가련하기만 하다. 그래서 전설과 신화의 세계는 무릇 저 높은 곳에 있어야 한다. 신의 보살핌을 받는 우리는 마땅히 저 아래 평지에서 단오를 맞아야 한다. 수직의 숭엄과 수평의 범속. 십자수를 뜨듯 교차하는 성속(聖俗) 합일의 스토리텔링. 그것의 구현이 곧 강릉단오제 존속의 비결이 아닐까.


 두 통의 신주로는 택도 없다.

 열심히 벌어 내년엔 곳간에 쌀을 더 많이 남겨둬야지.

 박박 긁어내 두 손 무겁게 바치고 나면

 농민들 좋고 나도 좋고.

 소중한 사람들의 술잔에도 넉넉하게 은하수를 채워줘야지.


 대관령 자락이 남대천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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