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츠캄머구트의 결정판, 볼프강제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세상은 압축되어 개인의 삶으로 들이닥쳤다. 물결은 쌍방향이어서 우리의 민낯 또한 세계인들의 인상에 침투하며, 우리의 이곳과 그들의 저곳은 손쉬운 비교 대상이 되었다. 그 비교란 것은 사진 속에 담긴 이국적인 경치를 바탕으로 출발해 제각기의 삶으로까지 확장되었다. 찰나에 연결되는 세상의 인상들은 복잡다단한 가치가 더해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설레는 여행은 인정투쟁의 장이 된 지 오래다. 아무런 세공 없이 먼 유럽을 다녀온 사람들에게는 그래서 오해가 따르는 법이다. 낯선 땅의 문화를 비판 없이 찬양하며 이국의 낭만에 빠지기라도 할라치면, 별 것 없이 유럽 문화에 경도된 사람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돈과 시간에 여유가 넘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흔치 않을 반대편 대륙으로의 여행일 텐데, 그렇다고 얄팍한 탐방객이 되기는 죽어라고 싫은 게 사실이다. 스냅숏만 남겨 퍼뜨리는 겉핥기는 되지 않겠다. 단전에 무게중심을 단단히 잡아두고 살아있는 시선으로 찬란한 그들의 업적을 돌아보되, 남들과 다른 각도와 깊이로 비평도 마다하지 않겠다. 너무도 부끄러워 뒤춤에 감추고 싶은 것이 많은 게 그들의 역사이기도 하니까.
참으로 어렵다. 깃털같이 가벼운 나들이가 되고자 하는 본능을 억지로 벗어던지고는 자꾸 뭘 파헤치고, 분석하고, 비교해보려고 하는 심보가 이 귀한 순례에 납덩이를 달아놓은 것만 같다. 청아한 여행객의 경지까지는 한참 멀고도 또 멀었다. 이런 까닭으로 호수의 풍경은 더 간절했다. 망자들과의 와이파이 연결은 잠시 끊고, 현생의 화려함에 몸을 던져 넣어야겠다. 보고 감탄만 하고픈 본능이 스멀거리고 꿈틀거린다. 납덩이쯤은 내던져야 어울릴 공간이다. 그곳으로 간다.
잘츠부르크의 동쪽, 호수와 산맥이 요동치면서 중부 유럽 풍광의 끝판왕을 자처하는 이 넓은 구역 일대를 잘츠캄머구트(Salzkammergut)라고 하더라. 경계가 명확한 행정구역은 아니다. '서해안 갯벌 지대', '미 오대호 지대'처럼, 땅의 특성은 분명하지만 범위는 두루뭉술한 집합이다. 알프스 빙하가 녹아내려 형성된 옥색 호수들과 소금광산을 품은 산자락들은 차분하게 말하면 안식의 나라, 들떠서 표현하면 감탄을 위해 빚어진 신의 작품이다. 이름에서 엿볼 수 있듯이 이 일대는 합스부르크 왕조를 위한 소금 공급처가 산재했던 광활한 구역이다. 'Salz(소금)+Kammer(창고, 영지)+Gut(재산)', '왕립 소금 자산 영지'니까 함부로 들어오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가 전제되어 있다. 국토를 채찍질해 뭐라도 박박 긁어내려는 심보가 지명에 녹아있는 것이다. 천국과도 같은 풍광에 누가 될 수 있는 이름이 아닌가. 그래서 불만스럽다. 잘츠캄머구트의 백미는 누가 뭐라 해도 호수다. 독일어 'See'는 호수를 뜻하는데, 대표적인 호수로는 북서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몬트제(Mondsee), 아터제(Attersee), 트라운제(Traunsee), 할슈타터제(Hallstättersee), 그리고 볼프강제(Wolfgangsee)가 있다. 이 모든 호숫가에서 유유자적할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지 모르지만, 과욕이란 걸 인정한다. 이번 여정은 동화 속에 나올 법한 두 마을을 끼고 있는 볼프강제에 집중하려 한다. 잘츠캄머구트의 비현실적인 호수는 '봐야(See)'만 한다. 그래서 호수는 See가 된 것일까.
잘츠부르크에서 자동차로 불과 40분 거리에 잘츠캄머구트 풍경의 백미, 볼프강제가 놓여 있다. 실은 볼프강제 도착을 10분쯤 앞두고, 차창으로 작은 덩치의 푸슐제(Fuschlsee)를 목격하는 순간부터 여행객의 정수리는 간질간질하다. 빙하수의 증거인 옥빛 수면이 안전운전을 위협할 정도로 명징하다. 별개로 존재하는 자연으로서의 호수가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는 오스트리아의 마을 속 호수가 보여서 더 매혹적인 것이다. 각각의 풍광마다 호들갑을 떨다 보면 어느 하나도 제대로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한눈팔지 않고 내비게이션에 찍어놓은 목적지에만 집중하기로 한다. 볼프강제가 눈앞이다. 주차장에 진입하면서부터는 심장소리마저 들킬 지경이다. 설명하기 어려운 긍정의 스트레스를 느낀다. 하늘과 알프스와 호수가 작당모의를 하는 것이 틀림없다. 자태를 보여주기 전 너의 애를 바짝 태우겠다는 심산이다.
잘츠캄머구트행 설렘으로 잠을 설쳤다. 덕분에 볼프강제를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은 늘어났다. 오전 9시를 갓 넘긴 볼프강제 북서쪽의 장크트 길겐(Sankt Gilgen) 마을은 한산했다. 여름의 끝자락이지만 물놀이를 하기에 충분히 높은 기온이니 태양의 고도가 높아지면 피서객들이 호수로 몰려들 것이 분명했다. 독일문화권의 작은 마을은 성인의 이름을 따서 작명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장크트 길겐은 마을의 교회가 성 길레스에게 헌정된 것을 바탕으로 지은 이름이다. 볼프강제에서는 유람선 승선을 권하는 선배 여행자들이 많았으나 못내 아쉬운 건 머무는 시간이다. 볼프강제의 또 다른 관광 마을, 장크트 볼프강(Sankt Wolfgang)에서 산악열차를 타기 위해선 배는 포기해야 했다. 호수가 크긴 한가 보다. 호수를 발치에 둔 마을이 둘레를 따라 서너 곳이 있을 정도다. 열차 예약 시간에 맞추려면 부산을 떨어야 한다. 그러나 장크트 길겐에서 장크트 볼프강으로의 이동은 급할수록 돌아가야 한다. 최단 거리 방향으로는 도로가 끊겨 있어, 멀리 반 시계 방향으로 우회하는 수밖에 없다. 가는 길 역시 입을 다물지 못할 경치의 연속이지만, 산악열차 탑승장 주변 주차공간이 빠듯할 수 있다고 하니 감동은 도착 후로 미룬다. 주차는 국제적으로도 성가신 과제임에 틀림없다.
햇살이 만만치 않다. 지상의 모든 것들이 순도 백 퍼센트로 보일 것 같은 투명한 빛이 내리쬐고 있어 환호성을 지르고 싶다가도, 저 알프스 자락의 중턱에선 눈이 시리다 못해 펑펑 울어버릴까 봐 걱정이 되는 것이다. 인터넷으로 예약할 때 보긴 했어도 열차는 역시 자비 없는 빨간색이다. 적당히란 없는 순 빨강과 순 파랑의 대비. 그들이 섞인 초록은 열차의 운행 고도가 올라갈수록 시야를 채우며 삼색의 구도로 파노라마를 구성한다. 가파른 사면을 타고 열차는 1,783미터 정상을 향해 묵묵히 전진한다. 볼프강제의 장관은 왼쪽에서 나타났다가 굽이를 돌아 오른쪽에서 출몰한다. 객차의 어느 방향에 앉아도 무방한 이유다.
날씨의 축복을 받은 열차 이용객들은 어쩔 줄 모른다. 뻥 뚫린 사방인데 도대체 어디에 초점을 두고 사진을 찍어야 하는 건지 허둥대는 모습이다. 확신이 서지 않으면 무차별적으로 난사하는 수밖에. 감탄과 행복의 미소는 사진 속 조미료가 된다.
샤프베르크(Schafberg) 정상을 오가는 산악 열차(SchafbergBahn)는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가파른 구간을 지나는 톱니바퀴 열차다. 첨단 공학과 과학의 결정체라야 안전을 담보할 것만 같은데 1893년부터 운행을 시작했다고 한다. 호수의 윤슬에 정신이 팔린 여행자를 불과 30여 분만에 알프스의 정복자로 만들어버리는 빨간 네모상자는 잘츠캄머구트에서 포기할 수 없는 천국으로의 이동수단이다. 열차는 해발 1,364미터에 있는 샤프베르갈름(Schafbergalm) 역에 먼저 정차하는데, 여기서 하차하는 사람들은 등산화와 스틱을 장착하고 정상까지의 트래킹에 만전을 기하는 모습이라 저 아래 탑승장에서부터 구별이 쉽다. 대부분의 승객들은 종착역에서 내린다. 가까워진 태양을 확인하며 오른쪽으로 고개를 들면 보이는 하우스 샤프베르크슈피체(Haus Schafbergspitze)는 잘츠캄머구트 고지대의 랜드마크다. 이곳의 정체는 호텔. 그것도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산악 호텔이라고 한다. 도통 실감이 나지 않는다. 이런 위치에 호텔이라니. 전설에 나올 법한 천국의 성이 아닌가. 숙박객이 아니라도 하우스 샤프베르크슈피체의 테라스 카페는 앉아보는 것이 여행 후일담을 적립하기에 유리할 것이다. 하행 열차 탑승 직전엔 마음이 급해지니 주변 산책 전 카페부터 들르는 게 낫지 않을까. 다만 자리 쟁탈전이 치열한 편이다.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마땅히 갖춰야 할 빈자리 예측력과 착석용 순발력을 총동원해서라도 인생 최고의 경치 앞에서 맥주 한 잔은 마셔야 제격이다. 감자 한 조각 적선하라며 쉴 새 없이 날아드는 새들의 습격은 처음엔 당황스럽겠지만 결국엔 반려 조류의 재롱처럼 느껴질 것이다.
360도 조망인 정상에서 보이는 호수는 여러 개지만 볼프강제 감상이 우선이다. 장크트 길겐에서 산악열차 탑승장까지 차로 20여 분이나 걸릴 정도로 호수의 경계는 길게 이어지는데, 북서에서 남동쪽으로 길게 10.5킬로미터가량 뻗어 있는 볼프강제의 면적은 13제곱킬로미터에 달한다. 덩치가 큰 호수는 중간에 움푹 들어가 오목해진 부분이 있다. 폭이 200미터가 채 안 되는 이 지점을 기준으로 서쪽, 그러니까 장크트 길겐 쪽의 호수를 아버제(Abersee)라는 이름으로 따로 취급하기도 한다.
정상의 능선을 따라 풍경의 기울기는 변화무쌍하다. 청(靑)과 옥(玉)의 압박이다. 코발트 빛이 눈동자를 염색시킬 찰나, 고지대의 초록 들판이 물감이 되어 육신으로 침투한다. 사진으로 재현하지 못할 광활함을 조금이라도 더 걸쭉하게 흡수하고 가야 한다. 잘츠캄머구트의 진주와 다름없는 볼프강제의 환상은 샤프베르크의 어깨가 책임지고 있다.
오후 세 시를 넘어가면서 해는 하향하는 산악열차를 비스듬하지만 따갑게 조준한다. 달구어진 차량의 실내는 사우나와 같아 견디기 힘들 정도다. 공기엔 조금의 불순물도 함유되어 있지 않아, 자외선을 오롯이 감내해야 할 것만 같은 투명한 날씨가 원인이겠다.
탑승동을 나와 길을 건너 다시 호수와 지근거리의 눈 맞춤을 한다. 자연스럽게 시선은 왼쪽의 산책로를 따라 마을로 이동한다. 장크트 볼프강 마을이다. 볼프강제의 북쪽에 놓인 동화 속 마을이다. 오래전 tvN에서 함박웃음을 짓던 꽃할배들은 샤프베르크 산악열차를 탔고, 장크트 볼프강의 펜션에서 1박을 했다. 꽃은 포기해도 걷고 감탄하고 기록하는 할배는 꼭 되고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뭉쳐본다. 고맙습니다. 꽃할배님들.
장크트 볼프강의 상징, 장크트 볼프강 성당이 뚜렷하다. 아이보리의 몸체는 하늘과 호수와 구름과 세트 메뉴를 구성한다. 976년 성(聖) 볼프강은 산으로 올라가 도끼를 던졌고, 도끼가 굴러 떨어진 곳에 성당을 지었다고 한다. 그 자리에 성당의 이름은 곧 마을의 이름이 되었다.
독일문화권의 '볼프강(Wolfgang)'이란 이름이 주는 어감은 독특하다. 우리의 귀에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나 볼프강 에른스트 파울리,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등의 이름 덕에 익숙한 게 사실이다. 볼프강은 고대 게르만어로 늑대를 뜻하는 'Wulf'와 길(道, 路)을 의미하는 'Gang'의 합성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늑대라 하니 남자의 이름으로 쓰일 수밖에. 범접할 수 없는 기운으로 터프하게 울부짖는 테토남이 연상된다. 본래 귀족에게만 붙일 수 있었던 이름이었지만 그것도 옛날 일. 이젠 누구에게나 볼프강이란 작명을 할 수 있는 시대다. 그렇다 해도 산으로 둘러싸인 청정한 호수에선 여전히 귀티가 넘실댄다. 볼프강제는 귀족이다.
볼프강제에서의 마지막 여정은 다시 장크트 길겐이다. 저녁을 준비하는 마을엔 아침과는 달리 현지인과 관광객들이 뒤섞여 활기가 넘친다. 수중 액티비티를 즐기는 사람들, 수면에 둥실 떠 있는 오리와 대화를 나누는 주민들이 도시 풍경의 일부가 된다. 도시라고 했지만 장크트 길겐의 인구는 4천 명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러니 호숫가를 배회하는 이들의 상당수는 설렘 가득한 관광객일 것이다. 1839년 철도 노선이 건설되며 잘츠캄머구트의 중심으로 자리 잡은 마을은 200년 가까이 유럽인의 휴양지로 소홀해 본 적이 없다.
모차르트 가족의 대기권을 벗어날 수 있는 곳은 어디인가. 위축될 필요는 없다. 전 유럽을 순회하고 다닌 대륙의 스타 가문이므로 이 작은 도시에서조차 그들의 이름을 맞닥뜨리는 것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장크트 길겐은 스스로를 '모차르트 마을'이라 부른다. 호수와 지척인 곳에 모차르트의 외갓집이 있어서다. 모차르트의 외할아버지는 장크트 길겐의 치안 판사였고, 마을의 격조 있는 크림색 집에서 모차르트의 어머니를 낳았다. 이 모차르트 어머니의 생가는 '모차르트 하우스'가 되어 지금도 탐방객을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 집에서 오래 산 인물은 모차르트의 누이, 난네를이다. 기억하는가? 그녀는 걸출한 음악적 재능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주부로서의 삶을 살게 되는데, 난네를이 장크트 길겐 출신의 남편(그 역시 치안 판사였다)을 여의고 잘츠부르크로 돌아오기까지 오랜 시간 살았던 집도 바로 어머니가 태어난 이 건물이다. 모차르트의 조부모와 누이, 매형까지 살았던 집이 남아있다면, 장크트 길겐은 모차르트 마을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자외선의 노골적인 공습도 차라리 해맑았던 볼프강제에서의 한나절에 불감증이란 없었다. 바라보는 모든 자연물엔 감탄사가 더불어 실렸고, 호수의 투명하고 무해한 기운은 수증기가 되어 상승해 잘츠캄머구트의 구름 한 송이 한 송이가 되었다. 어쩔 것이냐, 이토록 천국과도 같은 곳에 사는 사람들은. 성스럽고 양명한 마을에 사는 이들에게 부러움보다는 안쓰러움이 앞선다. 거기서 나오지 말고 계시길. 지구상 어디라도 그대들이 사는 곳만큼 축복받은 곳은 드물 테니. 덕지덕지 때가 묻어 돌아가는 일이 없으려면 오직 그 자리에 머물러야 하는 천형(天刑)을 감수하셔야 합니다.
다행이다. 볼프강제의 마법을 벗어나는 건 나로선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아모르파티와 메멘토 모리가 합일이 되어 녹아버릴 공간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잘츠캄머구트의 지배를 받는 곳이다.
운전석에 앉는다. 깊은숨을 들이켠 뒤 구글 맵에 다음 목적지의 글자 하나하나를 찍어나간다.
누르는 검지가 떨릴 지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