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의 할슈타트 ①
때로는 잡지 속 색 바랜 풍경 사진이나 그림 하나가 던진 추파가 한 사람의 일생을 좌우하기도 한다. 감성의 세포벽이 흐물거리는 누군가에겐 더욱더. 인상주의 화가가 창조해 낸 빛의 유혹에 속수무책으로 빠진 사람은 프로방스를 평생의 이상향으로 동경하게 되며, 삶이 던지는 흔적들에 직관적인 자세를 취하게 되기도 한다. 겸재 산수화에 순간적으로 스며든 이들에게 국토의 명승은 언젠가 은둔해야 할 보금자리이자 낙원이 되는 것이다.
이국의 사진으로 한정한다면 어떨까. 타히티의 열대 해변을 휴대폰의 배경 화면으로 삼고 있다면 그는 아무래도 평온한 쉼이 누구보다 필요한 사람이리라. 맨해튼 마천루의 야경을 PC에 띄워놓은 그녀는 아직까지는 세속의 쳇바퀴가 버틸 만한지도 모른다. 조금 더 열정을 품고 나아가도 좋겠다는 긍정적 의지의 표현. 여행사 사무실 통유리에 붙어있는 뻔하고 허섭한 사진이라 해도 상관없다. 무엇이든 생의 의욕을 고취할 수 있다면 되는 것 아닌가. 다분히 이런 목적이 있는 이미지는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겠다. 갔다 와보니 반할 수밖에 없었던 곳의 풍경 사진. 그리고 가보지 못했지만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고 싶은 곳의 이미지.
동경만 했던 시간이 길어지며 이제는 모두와 공유하게 된 전형적인 구도의 사진이 있다. 건물과 호수의 윤곽을 스케치해 색연필로 정성스레 여백을 채워 넣기까지 했던 풍경은 그 사진 안에 있었다. 가고 싶었던 곳에서, 갔다 와보니 더욱 그리워진 곳이 된 호수 마을의 여왕. 할슈타트가 가까워진다.
할슈타트는 접근이 편하지 않아 더 매력적이다. 과거에 진압할 수단은 배뿐이었다. 지금도 기차역은 마을이 있는 호숫가의 건너편에 있어, 열차에서 내리면 페리로 갈아타야 할슈타트로 들어올 수 있다. 여행사의 깃발 아래 전 세계의 패키지 여행객이 이 아담한 도시의 거리를 걸을 수 있게 된 일등공신이자 원흉은 자동차 도로의 건설이었다. 이동의 편의와 오버투어리즘을 맞바꾼 셈이 되었지만 나 역시 편의의 시혜를 받은 입장이라 할 말은 없는 것이다. 지도의 'Hallstättersee Landesstraße'라는 도로가 위쪽에서 내려오며 두 개의 터널로 갈라지는데, 터널의 남쪽으로 빠져나오면 할슈타트의 중심으로 바로 들어선다. 물론 잘츠부르크나 볼프강제 쪽에서 접근하는 기준에서 그렇다는 거다. 남쪽에서 올라올 때에는 터널 진입 전에 아름다운 호수마을의 원경을 오른편으로 감상하며 올 수 있겠다.
백반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반찬을 언제 먹느냐는 문제는 생각보다 흥미롭다. 누구는 가장 배가 고플 때인 밥의 첫 술과 함께 곁들이고, 다른 이는 마지막 순간의 감미로운 피날레를 위해 아껴두기도 한다. 물론 그러다 짓궂은 옆자리 동료가 능숙한 젓가락질로 냉큼 집어갈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나는 밥이 삼분의 일쯤 남았을 때 좋아하는 달걀프라이를 먹는다. 왜 하필 그즈음인가. 포만감이 극에 달하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 배가 찬 시점에서야 느긋하게, 백 퍼센트 반찬의 맛을 음미할 수 있을 거란 자체 판단에서다. 그러니 난 꽤 신중한 편에 속하지 않을까.
호수에서 적어도 2킬로미터는 떨어진 현지인 마을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나서의 느낌은, 잔뜩 허기진 상태에서 백반 한 상차림을 받아놓은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 짐을 던져 넣기가 무섭게 길을 나선다. 눈앞의 달걀프라이와 달리 숙소에서 최고의 호수 뷰는 보이지 않아도, 절정을 향해 밥을 한 술 한 술 떠가는 것처럼 마을의 정경을 한 걸음 한 걸음 밟아가며 인생 뷰포인트로 시나브로 다가서는 짜릿함은 그만이다. 내딛는 한 발자국은 피아노를 타건하는 손가락의 마찰과도 같다. 경쾌하게 할슈타터제로 흘러 들어가는 시냇물은 현악기의 리듬이 되어 여행자를 둥실 띄워놓는다.
길이 조금씩 넓어지면서 푸니쿨라가 오르내리는 소금광산을 왼편으로 지나고 나면 다시 터널 앞 간선도로와 주차장들이 보인다. 세계 각지에서 온 여행자들은 이 근처에서 집결해 할슈타터제의 비경 속으로 들어간다. 유럽 작은 도시에서 좀체 볼 수 없는 여행사 로고가 그려진 삼각깃발이 부표에 달린 것처럼 여기저기 둥둥 떠다닌다. 오랜만에 목격한 터라 단체 관광객들의 이열종대가 귀엽다. 할슈타터제와 밀착해 놓인 호숫길, 제슈트라세(Seestraße)를 놓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개를 좌우로 돌려가며 할슈타트의 모든 걸 두 눈에 담으려는 사람들을 홀리듯 따라가면 잘츠캄머구트 구석의 내밀한 자태가 시야에 들어온다. 서둘러 다시 버스에 탑승해야 하는 당일 여행객들이 안쓰럽다가도 한편으로 우쭐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변하는 하늘의 색이 호수에 반사되는 과정을 여유 있게 지켜보리라. 난 할슈타트의 밤을 목격할 사람이니까.
사무실 PC 배경화면의 현장으로 가는 길, 심장이 달떠 불규칙한 박동을 만들어낸다. 동경을 한 것은 나만이 아니기에 연인을 만난다기보다는 만인의 연예인을 실물영접하러 가는 기분이다. '할슈타트 뷰포인트'로 공식화된 지점을 찾아가는 길은 꿈결과도 같다. 마르크트 광장(Marktplatz)과 교차해 슈타트의 비경 속 진주 같은 포인트가 되고 있는 루터 교회가 날렵한 자태로 서 있다. 연한 베이지 톤의 유려함으로 160년의 역사에 비해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할슈타트의 랜드마크다. 종교개혁에 앞장선 마르틴 루터를 기리고 있으니 개신교의 성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산 쪽으로 길게 파인 형상의 마르크트 광장은 관광객 대상 레스토랑이 밀집해 있다. 입간판엔 피자와 파스타 메뉴가 나열되어 있다. 맛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비쌀 수밖에 없다. 지구별 최고의 관광지 할슈타트의 금싸라기 땅이다. 자릿세는 넘사벽일 것이다. 노천 테이블에서 피맥을 하는 여행자들의 낭만에 가성비를 따질 수 없는 노릇이다. 마르크트 광장의 중심엔 1750년 할슈타트를 덮친 대화재를 극복하자는 의미로 세워진 성 삼위일체 상이 서 있다. 투박하지 않아 부담이 없다.
광장과 루터교회를 지나면 좌상향으로 완만한 오르막이 기다린다. 호수를 바라보며 평행으로 나아가지만 뷰포인트에 도달하면 뒤를 돌아보게 되리라. PC배경화면의 절경은 다가가면서 저절로 보이는 경치가 아니라 숨을 크게 들이쉬고 뒤돌아서 마주쳐야 하는 광경이다. 그러므로 극적인 연출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입을 벌린 사람들이 셔터를 눌러대는 모습이 보이면 그때부터 계산을 해야 한다. 완벽한 구도를 포착하려면 몇 걸음을 가서 돌아보면 좋을지, 극한의 감동을 위해서는 어느 타이밍에서 돌아봐야 하는 건지. 뒤를 도는 움직임의 속도도 관건이다. 되도록 천천히, 미끄러지듯 돌아 드라마의 슬로 장면을 재현할 것인지, 단박에 돌아 느닷없이 부닥치는 풍경에 압살을 당할 것인지 확실한 결정을 해야 한다.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몰려 있는 자리를 피해 적당한 위치를 점찍고 난간을 잡는다. 이젠 속도의 결단을 내릴 차례다. 너무 느리게 뒤돌게 되면 오른쪽 눈의 잔상이 왼쪽 눈에 맺힐 것 같다. 그럼 첫인상이 뚜렷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고속의 회전은 무언가 감동의 격이 떨어지는 듯하다. 언제나 그렇듯 결론은 '적당하게'.
돌아본다. 어디서 많이 보던 장면이라는 감각이 고맙다. 그건 예상했던 대로 감탄할 만한 경치란 소리가 아닌가. 이걸 달걀프라이에 비교했다니. 달걀프라이가 될 수밖에 없다면 난각번호 1번의 도장을 찍어야 가책이 덜할 것이다. 이곳에 선 누구라도 사진작가로 만들어 줄 색의 조화와 구도가 눈앞에 실존하고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알 만한 것이 되어서, 그래서 익숙해져 버린 것들은 어느 순간 평가절하하는 습관이 있다. 그것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뛰어나다는 사실이 당연해지고 나면 매력의 정점에서 끌어내리는 본능이 있다고 해야 할까. 호수와 어우러지는 작은 마을의 아름다움을 최선의 구도로 박제해 놓은 할슈타트의 전형적 이미지도 그런 인간 본능의 희생양이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애써 외면해 봐도 부인할 수 없는 존재감은 어쩔 수 없는 것. 구석구석이 피안의 공간인 할슈타트라 할지라도 묘사에 장광설은 필요치 않다. 칭송받다가 내리막을 걷는 것들 중에도 우열이 있다. 뷰포인트에서 건져낸 파노라마 한 장이면 충분하다. 배경화면으로 보아온 할슈타트의 옆모습이 눈앞에 드러난 순간, 감동은 시각적 익숙함으로 인해 오히려 배가된다. 전형적인 구도의 호수마을은 그렇게 현실이 되었다. 시간의 밀도가 급상승한다. 추억하고 기억해야 할 순간이란 걸 직감적으로 알아차린 순간, 겨울이 아닌데도 난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