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의 할슈타트 ②
호수 위에 떠 있고 싶었다. 할슈타터제의 수면에서 인간의 흔적들을 바라보고 싶었다. 다분히 독자적이고 싶은 욕구가 깔린 것은 물론이다. 나만의 구도를 창조하고자 하는 욕심. 그럼에도 물 위에서 마을의 전경을 훑어보는 것은 사소한 충동의 채움만은 아니었다. 시선이 반대 방향을 향하자 상념들도 역전하고 말았다. 호수를 가둔 절벽아래 늘어선 삶의 풍경은 왜 쓸데없이 애잔한 것일까. 발을 디디며 살고 노니는 곳에서는 실감하지 못하는 억척스러움은 저 멀리 떨어져야 보이는 법이다. 세상에서 가장 매혹적인 마을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할슈타트는 절대불변의 아름다움일까. 여행자가 뒤덮어버린 호숫가를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 그러나 최소한으로 보장된 삶의 연속성을 위해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 그들을 섣불리 부러워할 수 없는 여러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시선의 반전은 관찰자에게 객관과 비판의 감동을 동반한다.
억세게 서 있는 산 아래 가까스로 달라붙어 있는 미색의 집들은 호수 마을을 스스로 몽환으로 빠져들게 한다. 수면에 반사되어 유영하는 파스텔 톤의 군락은 묘하게 이국적이다. 호수의 진초록 물빛은 볼프강제의 청량함과 무게감이 다르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이 볼프강제라면 할슈타터제의 낮게 깔린 정서는 베토벤 <월광 소나타>의 감성에 가깝다. 베토벤의 사후 한 음악평론가가 이 곡을 듣고 마치 스위스 루체른 호수에 떠 있는 배가 달빛을 받고 있는 느낌이라고 해 월광소나타로 불리게 되었다는데, 해석하기 나름이다. 달이 뜬 할슈타터제의 밤 또한 월광소나타가 시각화된 이미지라 해도 어색할 것은 없어 보인다. 허나 이는 가곡의 왕 프란츠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1797~1828)가 들었다면 코웃음 칠 일. 할슈타트의 음식점과 호텔 내 식당들은 거의 송어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곳이 많을 정도로 송어는 할슈타터제의 특산이다. 할슈타터제와 송어를 묘사한 독일의 시인, 슈바르트(C.F.D.Schubart, 1739~1791)의 시를 바탕으로 슈베르트는 피아노 5 중주곡 <송어(Die Forelle)>를 창작해 낸다. 그러니까 할슈타터제와 슈베르트의 송어는 시적 공간과 그 배경음악으로서 꽤나 밀접한 사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중요한 것은 그러나 관찰자의 정서다. 나에게 할슈타터제는 슈베르트의 <송어>라기보다는 역시 베토벤의 <월광>이다. 누가 뭐라 할 수 있나. 더구나 슈베르트 선생님은 할슈타트에 머물며 <송어>를 작곡하지 않았다. 지금 글을 읽어주시는 당신이 할슈타터제를 바라본다면 더 멋진 조합을 자랑하는 곡이 떠오르겠지. 음악은 듣는 사람의 것. 가곡의 왕께서도 이해하실 것이다.
넉넉한 할슈타터제의 장관이지만 은둔지에 감춰진 호수의 감성이 지배적이다. 볼프강제가 원경으로 산을 조망하는 탁 트인 전망이라면, 할슈타터제는 산들이 병풍처럼 겹겹이 둘러싼 구조가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문득 떠올려보면 호위무사처럼 버티고 서 있는 절벽들 덕분에 마을에 적당한 고립감이 연출되었고, 그것이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에서 아렌델의 원형으로 할슈타트가 선택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할슈타트의 우울하고도 신비스러운 이미지는 그냥 놔둘 수 없는 영상의 재료인가 보다. 우리의 웹툰 기반 드라마인 <마녀>에서 여주인공이 이상향으로 그리던 곳이자 결말의 공간으로 선택된 장소 역시 할슈타트다. 마녀로 상정된 여주인공을 사랑하는 남자들마다 죽음을 당하고야 마는 가련한 운명의 굴레. 할슈타트는 사랑은 곧 죽음이라는 회귀의 근원을 모색하기에 알맞은 풍경인 것인가. 단체 관광객들로 몸살을 앓고 있는 마을이 안쓰럽지만, 할슈타트 광풍이 잦아든 뒤에도 소리 없이 찾아드는 진정한 팬들은 이곳의 상념을 끝까지 지켜낼 것이다.
겨우 두 살 형님인데 존경스럽기 그지없는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의 글은 술술 읽힌다. 술술 읽힌다는 것은 쉽다는 의미 뒤켠에 재미있다는 전제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는 뜻이다. 저 아래 깊숙하고 진중하게 파고들어 가야 할 심오한 주제를 다룰 때도 그의 문장은 팔랑팔랑, 사뿐하고 경쾌하게 핵심을 모조리 건드리며 나아간다. 그런 능력의 그가 쓴 <여행의 기술>이라니. 가장 닮고 싶은 사람이 가장 두근거리는 주제를 담아낸 책이라면 흔치 않은 선물임에 틀림없다. 여행의 대가이기도 한 알랭 드 보통은 책에서 '여행지에서 이국적'으로 느낀다는 것의 정의를 두 겹으로 내린다. 자동차가 있을 곳에 낙타가 있는 모습이 일차원적인 이국적 감성이라면, 일상의 공간에서는 접하기 어렵지만 나의 정체성이나 신조에 좀 더 충실하게 맞닿아있는 새로운 공간에서 한 차원 높은 카타르시스를 접한다는 것. 즉 '이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했던 평소의 바람이나 불만이 느닷없이 해결되어 버린 곳을 마주치게 되면 우리는 극상의 이국적 감성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알랭 드 보통의 결론.
"우리가 외국에서 이국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고향에서 갈망했으나 얻지 못한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고향에서 갈망했으나 얻지 못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경치를 놓고 건조하게 이야기해 봐도 상관없을 것이다. 볼프강제의 평화로운 옥빛 수면과 할슈타터제 주변의 극적인 지형은 빙하에서 비롯된 매력이다. 동해안의 유려한 석호들을 빼고 대부분이 인공으로 채워진 우리의 호수 경관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어느 한쪽이 낫고 모자라고의 문제가 아니다. 좀 더 하늘색의 물빛이면 좋겠다, 깎아지른 협곡 속 고요한 호수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 호숫가에 자그마한 집들이 옹기종기 뿌려져 있으면 얼마나 사랑스러울 것인가. 결국 여행의 원동력은 경험해보지 못한 감정을 느낄 것이 분명한 낯선 곳에 대한 결핍이다.
그래서 할슈타트는 이국적이다. 진부한 표현인 것을 알아도 이국적이다.
은근한 마니아층들이 존재하는 EBS <세계테마기행>에 소개되어 한국인들의 발길이 제법 잦아진 레스토랑 'SIMPLE'이다. 피시버거가 주 메뉴인데 입구의 입간판에 수줍게 '아아'라는 한글이 쓰여있는 것이 귀엽다. 물론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준말이다. 사진작가였던 주인장은 사랑하는 아내를 모델 삼아 많은 작품을 남겼고, 레스토랑 내부 벽면에는 분위기 있는 흑백사진 패널이 걸려 있다. 부부는 교대로 카운터를 지키고 있으니 방송에 등장한 창작자와 모델 부부 중 한쪽은 영업시간 내라면 언제든 만날 수 있다. 방송에서 봤다고 인사를 건네면, 돌아오는 미소가 아름답다. 현실의 아렌델, 할슈타트에는 다행스럽게도 공주와 귀족만 살지 않는다. 동경의 공간 뒤란엔 넘어지고 일어서며 부딪히고 나아가는 우리가 있고, 보듬고 살아가는 나와 그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