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생산의 역사, 할슈타트 잘츠벨텐
망막으로 밀려오는 시야의 충격이 압도적이어서 할슈타트를 차분히 곱씹는 작업은 만 이틀이 지나서야 가능했다. 사전 지식은 호수 마을의 풍경에 아무런 보탬도 되지 못한다. 일단은 침잠한 뒤, 머리와 가슴이 스스로 냉각되기를 기다리면 될 뿐이다. 그렇게 해서 벌어진 생각의 틈에 비로소 할슈타트의 실체를 슬쩍 밀어 넣는다. 대체 이곳은 어떻게 생겨먹었길래 세상사람들을 이토록 홀려왔던 것일까.
잘츠캄머구트의 남쪽 경계에 있는 마을의 기능은 본디 소금 생산이었다. 잘츠캄머구트라는 지명의 해석을 다시 떠올리면 당연한 도시의 임무다. 기원전 800년부터 소금을 채굴했다고 하니 거의 3천 년에 육박하는 소금 도시의 위엄이다. 그런데 산속에서는 석탄이나 금을 캐는 게 정상 아닌가. 비밀은 쉽게 풀린다. 고대에 바다였던 이곳이 지각변동으로 솟아오르며 육지가 되어버린 것. 고여있던 바닷물은 그대로 증발해 소금이 되었고, 융기된 땅 속 곳곳에 저장되었던 것이다. 천일염이 햇빛과 바람으로 증발된 바닷소금이라면 할슈타트의 소금은 유구한 세월을 암석에 갇혀 결정지어진 흔치 않은 암반염이다.
할슈타트로 들어오는 터널 부근의 소금 광부 석상은 마을의 역사와 정체성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구멍이 숭숭 뚫린 질감에다 무게를 견디려 구부정해진 상체의 각도가 마치 물허벅을 짊어진 제주 여인 석상의 그것들과 흡사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긴 무거운 짐을 지고 나아가는데 동양과 서양사람들의 자세가 다를 리 만무하다. 조각가는 인류 공통인 삶의 부담을 광부의 자세와 표정으로 재현하는데 능숙했다. 부담(負擔)이라는 뜻 자체가 '지고 메는 것'이 아니던가. 거친 바람을 조우하며 귀했던 물을 길어 날랐던 탐라의 여인도, 가파른 산을 올라 금맥보다 귀한 염맥을 찾아 헤맸던 할슈타트의 광부도, 날 것 그대로인 생의 부담은 운명이었을 것이다.
잘츠부르크, 잘츠캄머구트의 잘츠가 소금이라는 뜻이므로 이 호수 마을의 이름도 '잘츠'슈타트(Salzstatt)가 되었어야 할 것 같은데 '할'슈타트다. 할(Hal)의 정체 또한 켈트어로 '소금'이다. 기원전 500~1,000년 이 지역에 거주하던 고대 켈트족이 소금 채굴과 무역으로 번성했다는 역사가 마을의 이름에 오롯이 담겨 있다. 소금을 캐듯 지명의 연원을 캐면 역사도 따라오는 법이다. 청동기와 철기 시대부터 이어진 소금 채굴은 중세에 이르러 왕가 직할의 산업으로 관리되며 할슈타트의 발전을 견인했다. 한없는 낭만만을 풍기던 노트북 액정 속 할슈타트는 수 천년의 고뇌와 부담을 지불해 마침내 빚은 진주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숙소를 오가며 보았던 푸니쿨라는 이제 체험시설로 거듭난 소금광산으로 관광객들을 안내한다. 놀이동산의 롤러코스터 이상으로 직각에 가까운 경사를 거뜬히 극복하는 푸니쿨라는 그 자체로 할슈타트의 명물이다. 서두르는 게 싫어 투어 예정 시각 20여 분 전 탑승장에 도착했으나 웬걸, 대기줄은 굴절에 굴절을 거듭하며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대도시에서도 경험할 수 없었던 줄 서기의 고충. 예약해 둔 시각은 형식일 뿐이었고, 그저 오는 순서대로 투어에 참가하면 될 일이었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푸니쿨라를 타고, 승천하듯 절벽의 등을 타고 올랐다. 저 높은 곳엔 또 다른 세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낮게 깔린 구름이 절경에 신비를 입혔다. 푸니쿨라 역에서 10여 분을 걸어가야 하는 여정이 없다면 광산의 매력은 뭉텅 깎여나갔을 것이다. 잘츠캄머구트 품속 알프스 산맥의 진면목이다. 응축된 초록의 산소는 분자 알갱이 하나조차 놓쳐선 안된다. 완만한 오르막은 큰 숨을 쉬게 만들어, 그것을 핑계로 두 볼 가득 투명한 기운을 머금는다. 두 다리가 살짝 뻐근해질 때쯤 광산 내부로 인도하는 건물이 보인다. 체험 공간의 정식 명칭은 '잘츠벨텐 할슈타트(Salzwelten Hallstatt)', 그러니까 '할슈타트 소금 세상'이다.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안전한 이동을 위해 체험 복장으로 갈아입고 투어가이드를 따라 탐방에 나선다. 요지경의 시작이다.
조명이 켜진 옛 소금 갱도 안으로 체험객들이 들어가면 가이드는 독일어와 영어로 번갈아 광산 내부의 구조와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순로를 따라 광부들이 암반 속 소금을 캐낸 방식을 알려준다. 폐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이 이 투어 신청을 할지 모르겠지만, 입출구 통로를 제외하면 비좁은 곳은 없다고 봐도 좋다. 널찍한 공간에 조명도 비교적 밝은 편이라 최소한의 개방감이 보장된다.
투어의 하이라이트는 백이면 백 의견 일치할 나무 미끄럼틀이다. 비스듬한 대각 방향으로 이어지는 채굴 공간들은 계단도 갱차도 아닌 미끄럼틀로 연결되어 있다. 밝은 야외가 아니어서 공포심을 완전히 떨칠 수는 없으나 꼬마체험객들도 안전하고 수월하게 미끄러져 내려갈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도착 지점 상부에 속도 측정 모니터가 있어, 누가 더 빠른 속도로 질주했는지 모두의 경쟁을 부추긴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멈추고 나서야 자신의 하강 속도가 매겨진다는 걸 깨닫게 되니, 스피드를 낼 각오를 하고 출발할 일 없는 깜깜이 경쟁이다. 물론 압도적인 스피드 제왕은 가이드였다. 거의 자기 부상 열차처럼 날아서 착지하는 느낌이다. 엉덩이와 허벅지 부위가 덧대어진 체험복은 이 구간을 위한 배려였다. 두 번의 미끄럼틀 구간에서는 모두의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여기가 놀이동산인지 폐쇄된 광산인지 헷갈릴 정도다.
폐 광산이라는 유산을 활용하는 방식이 기발하다. 그래서 부러웠다. 지금은 폐광된 광업소가 있던 강원도의 도시에서 20대 후반의 2년을 보낸 나로서는 잘츠벨텐의 코스와 운영 방식이 깊은 인상으로 새겨질 수밖에 없었다. 한때 산업화의 땔감이었던 석탄의 채굴을 위해 우리나라 곳곳의 산허리는 파헤져졌고, 일자리를 찾아 전국에서 몰려든 광부들로 신흥 산업도시들은 호황의 시기를 맞았다. 캐낸 석탄의 운반을 위해 철도가 깔리고 항만이 건설되었으며, 대한민국의 중공업은 자원과 물류의 집중으로 확고한 위치를 잡았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탄소중립의 강조와 함께 석탄에서 석유로, 석유에서 천연가스와 친환경 에너지로 힘의 기반이 이동하면서 전국의 탄광들은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고, 1980년대 후반 정부의 석탄산업합리화정책으로 구체적인 폐광의 단계로 접어들게 되었다. 여기서 '합리화'란 '폐쇄'와 동의어로 해석하면 될 일이다.
국내 대부분의 광업소를 산하에 두었던 대한석탄공사는 단계적 폐광에 들어갔고, 마지막 광업소였던 삼척 도계광업소가 2025년 6월 말 문을 닫으며, 현재는 민영 탄광인 도계 경동상덕광업소가 유일한 탄광으로 희미한 명맥을 부여잡고 있다. 에너지 변화의 추세가 그렇고 석탄 자원은 한정적이니 폐광은 절대다수가 받아들이는 결론이다. 문제는 폐광 이후의 대책이다. 한 걸음씩 나아가도 좋을 것은 폐 광산의 활용이다. 국내에도 폐 광산의 일부였던 동굴을 개방해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곳이 많지만, 채탄 과정의 유산을 체험하는 공간이라기보다는 주변을 차단하고 지극히 한정된 구역을 잇는 일방통행식 동굴 걷기 관광지일 뿐이다. 최근에 폐광된 태백의 장성광업소나 삼척의 도계광업소는 갱도와 수갱, 선탄 작업장과 광차 등 석탄산업의 증거와 유산이 충분히 남아있다. 폐업한 석탄 광업소를 체험 관광지로 완전히 탈바꿈시킨 독일 루르의 사례 등 참고할 선례들은 차고 넘친다. 보강된 안전관리와 신박한 아이디어가 더해진다면 세계 최고의 체험 시설이 될 여지가 충분한 과거의 유산임에도, 정부에선 갱도의 침하를 막기 위해 폐광에 물을 채워 넣겠다는 계획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니까 침하를 수몰로 막겠다는 것이다. 수장(水葬)이란 것은 얼마나 간편한 멸절의 방식인가. 사람이 살고만 있던 곳도 문화재가 되는 마당에, 일제 수탈의 장소로 파헤쳐진 치욕의 현장이자 중공업시대 경제발전을 위한 볼모의 공간은 기억을 위해 바로 그곳에, 원형에 가깝게 남아있어야 한다.
소금 채굴 장비와 지각, 지질의 변동에 대한 가이드의 설명이 끝난 뒤 체험용 광차를 타고 밖으로 나온다. 체험복은 따로 챙기고 싶을 만큼 마음에 들었지만 두고 오는 수밖에. 잘츠벨텐의 체험을 마치고 푸니쿨라 역으로 내려오다 보면 좌측에 전망대로 가는 길이 나온다. 먹구름이 짙어지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할슈타터제의 표면은 회색으로 둔갑했다. 무채색이 덮인 할슈타트는 아렌델에 근접해 간다. 전 유럽으로 소금을 공급하던 광산마을은 유네스코가 인정하는 세계유산으로 탈바꿈했다. 캐내려 머물던 광부의 거처는 동화 속 호숫가 집으로 거듭나 풍경의 장식이 되었다. 절벽 위에서 내려다본 마을 속 루터 교회의 뾰족 첨탑은 이곳이 의심할 여지없이 할슈타트라고 주장하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꿈꾸는 듯한 마을에도 삶과 죽음은 교차한다. 현실감 떨어지는 할슈타트에서 추모의 공간은 어떤 모습일까. 다른 건 몰라도 그곳의 영혼마저 고요한 호수를 닮았을 것이다. 여기는 호수 마을, 할슈타트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