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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엄마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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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Mar 31. 2024

엄마와 수선화

작년 이맘때즈음 엄마가 영국에 와서 한 달간 계시다 가셨다.

엄마가 오셨을 때 앞마당 동백꽃이 엄마를 맞이했고, 장시간 비행기 타고 오신 80세 엄만 동백꽃을 보고 기운을 얻으신 건지 어쩐 건지 현관문으로 들어오자마자 손녀딸들과 끌어안고 인사를 나누고는 바로 뒷 정원으로 직행하셨다. 남편은 엄마를 보자마자 배꼽을 잡고 웃었다. "역시 우리 장모님이야!" 자기보다 체력이 더 좋다며 한참을 웃어댔다.


그렇게 정원으로 가셔서는 수선화를 보시며 너무 소담하게 피었다고 좋아하셨고, 명자나무 꽃을 보며 한국에도 있는 나무라고, 벚꽃을 보시며 이건 매실인지 뭔지 모르겠다 하시고, 모르는 나무는 한참 동안 가지를 만지며 바라보셨다.


그렇게 엄마가 계신 안 거실에 있을 때면 늘 시선이 정원의 수선화와 나무들에게 향했다.

"수선화가 참 좋은 꽃이다. 저렇게 예쁜 색으로 오래도 피어있잖아. 참 소담하고 예쁘다"라고 몇 번을 말하셨다. 정말 엄마가 계신 한 달 동안 수선화는 지지 않고 피어있었다.


정원 끝에는 나의 텃밭이 있다. 들깻잎, 오이, 부추, 파, 파슬리등을 길러서 먹는다. 텃밭 가장자리 둑에 수선화가 마구 피어있는데 그늘이다 보니 꽃을 못 피우는 것 같다며 엄마는 구근을 다 캐서 앞마당에 옮겨 심으셨다. 이때도 나의 둘째는 할머니가 떠준 벙거지 모자를 쓰고 할머니와 같이했다.


올해 2월에 엄마가 쪼르륵 마치 자로 줄을 맞춰 심은 것처럼 옮겨 심은 수선화의 싹이 대파처럼 쑥쑥 올라왔다. 옮겨 심은 해에 꽃대는 올라오지 않는다. 내년 봄에는 아주 노랗고 하얀 수선화가 우리 앞마당에 흐드러지게 피어날 것이다.


엄마가 한국으로 돌아기시는 나의 큰딸이 할머니를 안으며,

"할머니가 심어놓은 앞마당 수선화 보면서 할머니 생각할게요'라고 했다고 엄마가 나중에 얘기해 주었다.


우리 세 모녀는 그렇게 엄마와 수선화를 사이에 두고 추억을 쌓았다.


엄만 80세이고, 허리도 아프고, 오래 걷질 못하시고, 영어 알파벳도 하나 모르시지만 혼자서 비행기를 타고 영국까지 오셨다. 그리고 또 오실 수 있다고 했다.  엄만 지금까지도 나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불가능이란 없다. 열심히 찾고 하면 된다. 그래서 알파벳도 하나 모르시고 그 흔한 헬로와 쌩큐도 모르는데 영국에 혼자 비행기 타고 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신다. 언제까지나 그렇게 사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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