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한국쌀은 비싸다. 그래서 농협쌀과 여기 사람들이 흔히 먹는 바스마티쌀을 번갈아가며 해 먹는다. 바스마티쌀은 처음 해서는 끈기도 조금 있고 먹을 만 한데 남은 밥을 데우면 그 조금이나마 있던 끈기는 온데간데없고 볶음밥을 하지 않는 한 다시 데워 먹기는 좀 그렇다. 그래서 남은 밥이 있으면 정원에 뿌려새들 먹이로 써먹는다. 빵보다야 새들 뱃속에서 소화가 잘 될 것 같아 더욱 아낌없이 남은 밥을 새들과 나눠먹는다.
오늘 아침에도 그렇게 정원에 밥을 뿌리고 집에 들어와 지켜보는데 TV보다 더 재미난 풍경이 펼쳐졌다. 제일 먼저 달려든 것은 비둘기보다 큰 까만 새들이었다. 그리고 옆 정원에 있던 작은 새들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하나 둘 우리 집 정원으로 몰려들어 매달릴 수 있는 나무 가지마다 매달려서는 까만 새들이 가기만을 기다렸다. 밥알이 까만 새들에게는 그리 성찬은 아닌지 곧 까만 새들이 날아갔다. 그 자리를 작은 새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는데 왠지 작은 새들에게도 흔히 먹는 빵이나 씨앗 종류가 아니라 탐탁지 않은 모양인듯했다. 역시 영국 새들은 영국 사람들처럼 밥보다는 빵이 맛이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마지막 희망인 비둘기들이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비둘기 떼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밥알이 모두 없어졌다.
엄마가 작년 이맘때쯤 영국에 오셨을 때 정원에 나가 새 먹이 주는 것을 즐겨하셨다. 그래서 빵이랑 밥이 남으면 엄마에게 드렸고 엄마는 바로 정원에 나가 먹기 좋도록 잘게 잘게 손으로 부숴 새들에게 나눠 주었다. 4남매 홀로 키우시며 먹고살기에만 급급했던 엄마에게 평생 새들과 먹을 것을 나눠먹는 즐거움을 느낀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을 듯하다.
엄마가 한국으로 돌아가신 뒤 정원 뒤 텃밭에 심은 모종을 새들이 모조리 파헤쳤다고이르니
"내가 거기 있을 때 지네들 먹이를 얼마나 정성껏 챙겼는데 배은망덕한 것들을 보았나..." 그 말에 나는 그만 빵 터지고 말았다. 내가 웃으니 엄마도 함께 웃었다. 엄마가 영국에 다녀가시고 좋은 것은 내가 여기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전에 막연하게나마 상상하던 것이 이제 구체적인 그림으로 엄마에게 그려진다는 것이다. 올해 팔순이고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고 알파벳도 모르는엄만 또 영국에 오고 싶어 하신다. 여행이 즐거우신 것도 있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엄마를 쏙 빼닮은 둘째를 보고 싶으신 것도 있고, 엄마 생애 꿈도 못 꿨던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첫째의 연주회를 보고 싶은 것도 있고, 무엇보다 나를 보고 싶어서 그러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