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운전을 하면 일단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 사람들이 걸어오는 것만을 보고도 차들은 멈춘다. 사람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 영국인들은 자신들이 길을 건너도록 기다리고 있는 차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고마움을 표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그렇다고 빨리 건너려 하지는 않는다. 그냥 평소대로 걷는다. 하지만 아시아인들은 얼른 뛰어서 건너거나 최소한 뛰는 시늉이라도 하며 걷는다. 자신을 위해 멈춘 차들에게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맘이 더해진 행동인 듯하다.
점심시간에 대부분 각자 싸 온 도시락을 먹는다. 영국인들은 자신이 싸 온 도시락에 누군가 흥미를 보여도 절대 한 번 먹어볼래?라고 권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와 같은 이방인들은 누군가 나의 음식에 흥미를 보이면 먹어보라고 권한다. 혹시 부족하면 다음번에 더 싸가지고 와서 같이 먹으려 한다. 같이 먹는 즐거움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기에 그런 것 같다.
맑은 하늘에 갑자기 비가 떨어지면 동분서주 뛰어다니며 비 피할 곳을 찾는 사람들은 이방인들이다. 영국 사람들은 비가 와도 거의 뛰어다니지 않는다. 아주 많이 와도 그냥 맞는다. 예측불허의 영국 날씨에 익숙해져서 그런 듯하다. 그렇게 비가 내리다가도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비가 멈추고 해가 뜨고 또 비가 오기를 반복할 것이라는 것을 모두 알기 때문이다.
펍에 술을 마시러 가면 영국 사람들은 안주를 시키지 않는다. 식사 시간에 모이면 식사가 위주이고 술은 한잔 정도만 시킨다. 식사 모임이 아닌 그냥 술을 마시기 위해 모이게 되면 그냥 정말 술만 마신다. 그 간단한 땅콩도 시키지 않는다. 그렇게 두 번 정도 모임에 나갔다가 얼마 마시지도 않아 취기가 돌았다. 한국에서 오래 살았던 영국인 남편도 안주 없이 술만 마시는 것에는 영 적응이 안 되는지 다음에 이런 모임이 있으면 감자칩이라도 시켜서 먹어야겠다고 할 정도이다.
이곳에 산지 6년이 다 되어간다. 어느 순간 영국인이 하지 않는 행동들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면 이곳에 완전히 적응하고 있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