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n Apr 17. 2024

일 년에 생일이 세 번이라니...

70년대 생인 나는 당연히 집에서 음력 생일을 챙긴다.

그러다가 대학 졸업 후 중국에 어학연수 가서 영국인 남편을 만났다. 사귀게 된 뒤 생일을 묻는데 나의 대답은 "every year different day!"  남편은 도대체 무슨 소리냐고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우린 음력 생일을 챙긴다고 설명하고는 인터넷으로 내가 태어난 날 양력일을 찾아 알려주었다. 자신은 음력생일을 해마다 찾아서 챙겨줄 자신이 없다고 했다. 그 뒤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굳이 생일을 공개해야 하는 경우는 양력생일을  쓰게 되었다. 친정가족들은 여전히 음력으로 생일을 챙긴다.


하지만 나에게는 또 다른 생일이 있다. 바로 오래전에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의 늑장이 부른 사단이다. 내가 태어난 날 보다도 한 참 뒤에 면사무소에 가서 나의 생일을 등록하는 바람에 내가 태어난 날보다 2달이나 늦게 생년월일이 등록되고 말았다. 그래서 내 서류상의 생일은 또 다른 날이다.


얼마 전에 내 양력생일날 어쩌다가 직원 휴게실에서 생일 얘기를 하게 되었다. 그걸 우연히 들은 동료가 내 매니저에게 오늘이 내 생일이라고 알리니, 매니저는 그럴 리가 없다며 본인이 모든 생일을 달력에 입력해 놨는데 오늘은 절대 아니라고 했다고 했다. 그리곤 며칠 뒤 직원 연수가 있어 팀끼리 앉게 되었는데 나의 매니저가 나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매니저: "너 아직 생일 안 지났지?"

나: "음... 사실 얼마 전에 내 생일이었어."

동료: "거봐~ 내가 그렇다고 했잖아!"

매니저: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내가 인사과에 전화해서 다시 한번 생일 확인했는데.."

나: "미안, 사실 우리 아버지가 출생신고를 늦게 하는 바람에 내 서류상 생일이 실제 생일과 다르게 되었어"

매니저: "그럼 도대체 너의 진짜 생일이 언제야? 내가 인사과에도 말해서 고쳐놓도록 할게"

나: "아니야 아니야. 내버려 둬. 그리고 나한테 미안해하지 마. 다 우리 아버지 잘못이야. "

매니저: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 암튼 생일이 두 개나 되고 좋겠다."

나: "사실 고백하자면 나 생일이 하나 더 있어..."

매니저: "오 마이 갓! 뭐라고?"

나: "우리 엄마는 아직도 음력생일로 챙겨줘"

매니저: "세상에 생일이 너처럼 많은 사람은 처음 본다"


우린 이런 대화를 나누며 오랜만에 팀끼리 한바탕 웃었다. 사실 우리 팀은 서로 말을 자주 섞지 않는다. 매니저가 제일 어린데 아주 퉁명스럽고 거칠다. 친절하지가 않다. 그런데 자기가 필요한 일이 있으면 목소리에 애교가 좔좔 흐른다. 그래서 난 가능하면 그녀와의 접촉을 피한다. 일과 시간표는 이메일로 받으니 굳이 사무실에 갈 필요는 없다. 그리고 일과가 끝나면 바로 출퇴근 입력 시스템에 퇴근을 찍고 집으로 오면 그만이다. 그리고 다른 동료 한 명은 본인이 원할 때만 말을 한다. 그리고 누군가 자식에 대해 물으면 신나게 본인 자식 얘기만 한다. 그래서 이래저래 팀원들끼리 다 같이 모여서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눌 일은 거의 없다.  그러나 그날은 아버지 덕분에 우리 모두 한바탕 신나게 웃을 수 있어서 좋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복도에 울려 퍼지는 안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